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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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론스타 투자 분쟁, 10년 만에 중재 결론 나나…“제도 자체 재검토 나서야”

22일 론스타 중재 의향서 접수 ‘10년’
중재 기구 판정 선고 전 단계 남아
패소 시 국민 1인당 12만원 배상

민변 전문가 김종우 변호사 인터뷰
“ISDS 제도 ‘재검토’ 세계적 추세”
지난 20일 정부과천청사에서 열린 ‘세계인의 날’ 기념식에서 기념사를 하고 있는 한동훈 법무부 장관. 과천=연합뉴스

미국계 사모펀드 론스타가 외환은행 매각 등과 관련해 우리 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약 6조원의 ‘투자자-국가 간 분쟁 해결 절차’(ISDS·Investor-State Dispute Settlement), 일명 국제투자분쟁은 2012년부터 10년 가까이 진행 중이다. 이제 판정 선고에 앞선 절차만을 남겨 둔 가운데, 판정이 나오면 돌이킬 수 없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참에 ISDS 제도 자체를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도 높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글로벌 스탠더드’(국제 기준)를 강조하면서 전향적 자세로 나설지 주목된다.

 

◆론스타, 약 6조원 손해배상 청구…“외환은행 매각 부당 지연”

 

21일 법무부 등에 따르면 ISDS는 외국인 투자자가 투자 유치국의 조치로 손해를 입은 경우 국제 중재를 통해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는 제도다. 우리나라가 체결한 자유무역협정(FTA)과 투자보장협정(BIT)에 들어 있다.

 

구체적인 중재 절차 등을 담은 규칙으로는 세계 양대 중재기구인 세계은행 국제투자분쟁해결센터(ICSID)와 유엔국제상거래법위원회(UNCITRAL)의 규칙 두 가지가 있다. 투자자가 이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는데 대부분 ICSID 규칙을 선택한다고 한다. ICSID가 대부분 ISDS 사건을 다룬다는 의미다. ICSID는 사무국이 있어 UNCITRAL와 달리 사건 관리를 해 주기 때문이다.

 

이달 초 기준으로 지금까지 우리 정부를 상대로 제기된 ISDS 사건은 총 10건이다. 그중 론스타 사건이 가장 규모가 크고 오래됐다.

 

22일이면 론스타가 정부에 중재 의향서를 보낸 지 꼭 10년이 된다. 그해 11월 론스타가 약 46억8000만달러(약 5조9389억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중재를 ICSID에 신청하며 사건이 본격화했다. ICSID 중재판정부가 절차 종료를 선언하면 120∼180일 이내에 판정이 선고된다.

 

론스타는 “한국 정부(금융위원회)가 외국자본의 ‘먹튀’(먹고 튄다)를 막아야 한다는 정치적 압력과 사회적 여론을 의식해 HSBC와 하나금융에 대한 외환은행 매각 승인을 부당하게 지연했다”고 주장한다. 2003년 외환은행을 인수한 론스타는 2007∼2008년 HSBC에 매각하려다 실패, 2012년 하나금융에 매각했다. 론스타는 국세청의 과세가 부당하다는 등의 주장도 펼친다.

 

2012∼2021년 법무부가 론스타 국제투자분쟁(ISDS) 대응에 쓴 연도별 예산. 법무부 제공

◆법무부 “관계 부처들과 철저 대비”…10년간 469억여원 써

 

법무부의 ISDS 주무 부서인 국제분쟁대응과는 론스타 사건에 대해 “관할과 금융, 조세, 손해액 산정이 쟁점인 매우 복잡한 사건으로, 현시점에서 판정 시기와 결과를 예측하긴 어렵다”며 “오래 진행돼 온 사건인 만큼 언제든 판정이 선고될 수 있다고 보고 관계 부처들과 철저히 대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법무부 국제투자분쟁대응단 회의와 관계 부처인 국무조정실·기획재정부·외교부·법무부·국세청·금융위원회 태스크포스(TF) 회의가 주기적으로 열려 대응 방안 등이 논의되고 있다.

 

만에 하나 정부가 질 경우 론스타에 최대 46억8000만달러란 천문학적 돈을 물어 줘야 한다. 올해 우리나라 총인구 중 내국인이 5003만명인 점을 감안하면 국민 1인당 94달러(약 12만원)를 부담해야 할 수 있다.

 

론스타 사건 대응엔 이미 상당한 예산이 투입됐다. 법무부는 2012∼2021년 ICSID 중재판정부와 사무국에 지급한 중재절차 비용, 정부 대리 로펌 법률 자문 비용, 심리기일 비용 등으로 469억2000만원을 썼다. 올해 책정된 예산은 약 11억3000만원이다. 중재판정부는 정부가 지명한 중재인, 론스타가 지명한 중재인, 의장 중재인 세 명으로 구성돼 있는데 이들에게 수당을 줘야 한다.

 

법무부는 “정부는 패소를 가정하고 있지 않다”면서 “결과에 따라 취소 절차 등 후속 조치와 합리적인 재원 마련 방안을 검토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중재 판정 ‘재심’ 가능성 거의 없어…책임 소재 논란될 듯

 

법조계에선 중재 판정이 이뤄지면 돌이킬 수 없다고 지적한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의 국제통상위원장인 김종우 법무법인 서상 변호사는 “중재는 단심제로, 판정문이 나오면 바로 강제집행이 가능하다”며 “확정력, 대법원 상고심에서 판결이 확정되는 것과 같은 효력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재심, 즉 판정 취소소송을 제기할 수 있는데 받아들여질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봐야 된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이란 다야니 가문이 대우일렉트로닉스(위니아전자 전신) 매각 무산과 관련해, UNCITRAL에 2015년 중재를 신청해 2018년 우리 정부가 약 730억원을 지급하라는 판정이 나왔다. 정부는 즉각 영국 고등법원에 취소소송을 냈으나 이듬해 기각됐다.

 

책임 소재도 논란이 될 전망이다. 김 변호사는 “국가는 고의 또는 중대한 과실이 있는 공무원에게 구상(상환 청구)을 할 수 있다”며 “‘구상권은 신의성실의 원칙상 상당하다고 인정되는 한도에서 행사할 수 있다’는 게 대법원 판례”라고 강조했다.

 

국가배상법 제2조에 따라 국가는 공무원이 직무를 집행하며 고의 또는 과실로 법령을 위반해 타인에게 손해를 입히면 배상해야 한다. 공무원에게 고의 또는 중대한 과실이 있으면 국가가 그 공무원에게 구상할 수 있다.

 

2022년 5월 기준 한국 정부를 상대로 제기된 국제투자분쟁(ISDS) 10건 목록. 법무부 제공

◆ISDS 대응 전문성 강화해야…“우수 인재 확보 등 노력”

 

론스타 사건을 계기로 ISDS 대응 능력과 전문성을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는다.

 

정부 차원의 노력은 이어지고 있다. 2018년 이후 제기된 ISDS 사건들의 주무 부처가 법무부로 일원화됐다. 또 국제투자분쟁의 예방 및 대응에 관한 규정을 개정해 법무부에 국제투자분쟁대응단이 설치됐다. 2020년엔 법무부 법무실 산하에 ISDS 사건을 전담하는 국제분쟁대응과가 신설됐다.

 

법무부는 “국제분쟁대응과의 변호사 자격자 10여명이 사건별로 팀을 꾸려 최선을 다해 대응하고 있다”면서 “우수 인재를 확보하고 전문성을 강화하기 위해 다양한 방안을 마련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업무 전문성을 높이기 위한 교육 기회를 확대하고 보수 체계를 개선하는 한편, 여러 부처에 산재된 국제 분쟁 대응 조직의 통합 등을 추진하겠다는 것이다. 통상 분쟁은 산업통상자원부가, 국제법 분쟁은 외교부가 대응하고 있다.

 

법무부는 또 외부 전문가가 참여하는 ‘국제투자분쟁 자문위원회’ 구성도 진행 중이다.

 

◆“토지수용 ISDS ‘위험’, 제도 바꿔야 할 수도…ISDS 존폐 논의를”

 

앞으로 이 같은 ISDS 사건은 늘어날 전망이다. 김종우 법무법인 서상 변호사는 “한국 사람들은 3심까지 지면 다 끝났나 보다 하는데, 외국인이나 외국계 회사들은 ISDS 하나가 더 있는 것”이라면서 “이를테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철수한 외국계 회사들이 ‘한국 정부 규제 때문에 망했다’며 ISDS를 제기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김 변호사는 특히 정부나 지자체 토지수용을 둘러싼 ISDS 사건의 위험성을 얘기했다.

 

“국제 투자 중재 세계에선 소액인 (청구액) 수십억 원짜리 ISDS를 교포들이 제기하고 있어요. 토지수용에 불만이 있어 행정소송을 다 하고, ‘한국에 투자했는데 한국 정부의 토지수용 제도로 이익이 침해당했다’면서요.

 

우리 정부가 질 확률이 그렇게 높지 않다고 생각되는데, 한 번이라도 지면 토지수용 제도를 바꿔야 합니다. (대법원 판례와 같아서) 앞으로 유사한 사건에서 다 지게 되거든요.”

 

법무부에 따르면 외국인 투자자가 부산시 지방토지수용위원회 등의 토지수용을 두고 537만달러(약 68억원)의 ISDS를 제기한 사건이 진행 중이다. 미국 투자자가 국토교통부 등의 토지수용에 대해 300만달러 손해배상을 주장한 사건에선 정부가 승소했다.

 

김 변호사는 정부가 세계적 흐름에 따라 ISDS 제도에 대한 재검토에 나서야 한다고 촉구했다.

 

“인도와 호주는 ISDS 제도가 너무 위험하다고 해서 투자 조약에서 빼기로 했습니다. 또 (ISDS를 중재하는) 중재인들이 다른 사건에선 중재 대리인을 하거든요. 이해관계가 상반된다고 볼 수 있는 거죠. 우리로 치면 판사인데 사건에 따라서는 변호사를 하는 거예요. 영미법은 원래 그런 식입니다.

 

그래서 유럽연합(EU)은 ISDS 제도가 위험하긴 한데 유지는 하겠다, 대신 투자 중재를 담당하는 ‘투자법원’을 만들자는 인식을 공유하고 있습니다. EU 회원국들이 중재인들을 아예 임명하고 갹출해서 이 사람들 수당을 줘야 중재를 중립적이고 공정하게 할 수 있지 않겠냐는 거죠.”

 

김 변호사는 “우리 정부는 ISDS 제도에 문제가 있다는 인식 자체가 없다”며 “론스타 사건이 터지면 감당할 수 없을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박진영 기자 jyp@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