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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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선] 이상한 나라의 전기요금

‘기름 한 방울 안 나는 나라에서.’

어렸을 때부터 학교에서, 집에서, 방송에서 귀에 못이 박히게 들었던 표현이다. 언제부턴가는 ‘전기는 국산이지만 원료는 수입입니다’란 문구도 종종 눈에 띈다.

윤지로 환경팀장

둘 다 자원 빈국인 우리나라에서 에너지 절약을 생활화해야 한다는 구호다. 온 국민이 이런 ‘훈화말씀’을 듣고 자란 나라라면 전기 사용량이나 에너지 효율은 뭔가 남다른 면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결론부터 말하면, 전기 절약이라는 대대적인 구호는 대대적으로 실패했다.

전기 이야기를 하기 전에 잠깐 기름 쪽으로 넘어가 보자. 국제 에너지 가격이 뛰면서 기름값이 리터당 2000원에 육박하고 있다. 특히 ‘서민연료’ 경유 가격이 예사롭지 않다. 경유 수입가도 뛴 데다 세금 비중이 상대적으로 낮아 유류세 인하도 가격을 진정시키는 데 별 효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급기야 지난달 중순부터 경유가가 휘발유가를 뛰어넘는 역전 현상마저 벌어졌다. 18일 현재 경유 평균가격은 리터당 1985원, 휘발유보다 15원 비싸다.

이렇다보니 올 1분기 국내 경유차 판매량은 전년 같은 기간보다 34%나 줄었다고 한다. 디젤게이트와 미세먼지 논란, 요소수 대란에 이어 이번 가격 인상이 경유차 시대의 마침표를 찍는 모양새다. 반면, 하이브리드차와 전기차 판매량은 1분기에 각각 172%, 159% 늘었다.

시장경제에서 가격은 소비자를 움직이는 가장 확실한 신호다. 전 세계 전기차 보급률 1위라는 노르웨이도 전기차 확산을 위해 부가세 25% 전액 면제, 환경오염세금 면제라는 큼직한 당근을 걸었다. 무엇보다 노르웨이의 기름값은 살인적이다. 지난 16일 기준으로 리터당 2.547달러(약 3247원), 홍콩에 이어 세계 두 번째다.

다시 전기로 돌아와 보자. 한국전력이 1분기에 7조8000억원의 적자를 냈다고 난리다. 한전 영업비용 중 85%를 차지하는 전력구입비가 급등한 게 제일 큰 이유인데 전력구입비는 국제 유가 같은 연료가격에 큰 영향을 받는다. 지난해 봄과 올봄 사이 국제 유가는 거의 두 배 가까이 뛰었다. 당연히 전기를 만드는 비용도 올랐을 테고, 전기요금도 올라 전력 사용은 줄었어야 한다.

궁금해서 지난해와 올해 4월 우리 집 고지서를 봤다. 1년 전보다 더 낸 전기요금은 780원. 껌 한 통 값도 안 된다. 우리 집이 특이한가 하면 그런 것 같지는 않다. 올 1분기와 지난해 1분기 연료비가 2배 뛰는 동안 전력 판매단가, 그러니까 전기요금은 ㎾h당 2.4% 올랐다. 전력 판매량은 4.5% 늘었다.

우리나라 전력시장은 가격 신호가 작동하지 않는 이상한 시장이다. 전기요금은 원가에 연동돼야 하는데 정부가 오랜 기간 지지율·민심에 연동시킨 탓이다. 그 결과 ‘기름 한 방울 안 나는 나라’에서 열심히 절전 구호를 외쳤어도 1인당 전력 소비량 세계 7위, 전력 소비 증가율 세계 3위인 이상한 나라가 됐다.

윤석열정부는 전기요금에 연료비 원가를 반영하는 ‘원가주의’를 약속했다. 방향을 잡았으니 이제 국민을 설득해야 한다. 원가주의는 가격을 올리자는 게 아니라 가격을 바로잡자는 것이다.


윤지로 환경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