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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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교원 ‘여초’ 현상 심화… “의무 할당 필요” vs “여성 역차별” [뉴스인사이드-남성교원 할당제 논란]

2022년 전국 초중고 男 교사 비율 30.3%
초등학교는 22.8%… 고교 절반 수준
학부모 男 교사 선호에 유치경쟁 촌극
임용합격자 男 비율 확대 주장 이어져

일각선 ‘임용 할당제는 이중차별’ 지적
“男 교사 필요한 이유·효과 등 분석 필요”
박봉에 일 부담 커 떠나는 교사 나오자
“할당제 대신 업무 환경 개선” 목소리도

2023년 초등교사 선발인원 총 3561명
2022년보다 5.2%↓… 서울은 반토막
합격해도 자리 없어 미발령 수 증가

교총 “초등학교 31% 과밀학급 문제
교원 정원 줄이며 열악한 교육 방치”

서울에서 초등학교 5학년 아들을 키우는 A씨의 올해 초 관심사는 아이의 담임교사였다. 학부모가 된 뒤 매년 궁금해하던 사안이지만, 올해는 조금 달랐다. ‘어떤 선생님인지’보다 ‘어떤 성별인지’에 더 신경이 쓰였기 때문이다. A씨는 “아이가 어릴 땐 별생각이 없었지만 계속 여자 선생님 반이었어서 남자 선생님도 만나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이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A씨 아들의 담임은 올해에도 여교사다. 교사 40여명 중 남교사는 5명뿐이다. A씨는 “내년에도 여자 선생님이면 6년 내내 남자 선생님 반은 못해보고 졸업하는 것”이라며 “다양한 경험을 위해 남자 선생님 반도 해보면 좋을 것 같은데 남자 선생님이 적어 아쉽다. 비슷한 또래 아들 키우는 집들은 남자 담임을 만나면 ‘로또 당첨’이라고도 한다”고 했다.

 

학교에서 남교사가 사라지고 있다. 20여년 전 절반 수준이던 남교사 비율은 올해 10명 중 3명으로 줄었다. 특히 초등학교는 남교사 비율이 더 낮고, 남교사가 한 명도 없는 학교도 있다. 최근 신규 임용 교사 중 남성 비율도 줄고 있어 앞으로 남교사 비율은 더 낮아질 것으로 보인다.

◆대전·서울 초등교사 8명 중 1명만 남자

30일 한국교육개발원 교육통계서비스에 따르면 올해 4월 기준 전국 초·중·고 교사 중 남성 비율은 30.3%로 20년 전보다 14.3%포인트나 줄었다. 1999년 50.8%에 달하던 남교사 비율은 △2002년 44.6% △2007년 39.5% △2012년 35.1% △2017년 33% 등으로 급감했다. 최근에는 매년 0.5%포인트가량씩 줄고 있어 이런 추세라면 내년쯤엔 20%대로 내려앉을 것으로 보인다. 교장, 교감 등을 제외한 남교사가 한 명도 없는 학교는 올해 기준 107개교에 달한다.

서울의 한 초등학교에 아이들이 등교하고 있는 모습. 뉴스1

특히 초등학교에서 남교사는 더욱 ‘귀한 몸’이다. 초등학교 남교사 비율은 2005년(29%) 이미 20%대를 기록했고 최근에는 20%대 초반까지 떨어졌다. 올해 남교사 비율은 초등학교 22.8%, 중학교 28.4%, 고등학교 42.9%다. 지역별로는 대전(11.8%)과 서울(12.9%)의 비율이 낮았다. 대전은 20년 전(28.9%)과 비교하면 절반 이하로 뚝 떨어졌다. 이 밖에 △대구(18.7%) △부산(19.5%) △광주(19.6%)도 초등학교 남교사 비율이 20%도 되지 않았다. 서울의 한 초등학교 교장은 “고학년 남학생 학부모들은 남교사를 선호해서 매년 남교사 모셔오기 경쟁이 일어난다”고 말했다.

이런 현상은 더욱 가속화될 전망이다. 올해 서울시교육청의 공립 초등학교 임용시험 합격자(216명) 중 남성 비율은 전년(13.2%)보다 2.6%포인트 줄어든 10.6%(23명)에 그쳤다. 남성 지원자 비율은 2019년 15.8%였지만 2020년 이후 13%대로 감소했다. 지원자 자체가 줄면서 합격자 비율도 줄고 있는 것이다.

◆남교사 지원 늘 수 있는 환경 필요

고질적인 남교사 가뭄 현상에 ‘남성교사 할당제’ 이야기도 나온다. 임용 합격자 중 남성 비율을 정해 남성의 합격문을 넓히자는 것이다. 서울의 한 초등학교 교감은 “초등학생 발달에 선생님이 큰 영향을 미치는 만큼 균형 있는 성장을 위해 남성과 여성 교사를 모두 만나보는 것이 좋다. 특히 고학년 남학생에게 남교사는 역할 모델이 될 수 있다”며 “공무원을 뽑을 때 한쪽 성(性)이 70%를 넘지 않게 하는 것처럼 교사도 남성을 일정 비율 확보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실제 2007년 전국 시·도교육감협의회는 교육부에 남교사 할당제를 건의했고, 이듬해 서울시교육청이 신규 교원 임용 시 남성 비율을 정원의 30% 이내에서 교육감이 정하는 방안을 추진했으나 모두 교육부의 반대로 시행되진 못했다. 정치권에서도 2011년 남교사 할당제 법률 개정안이 발의됐지만 국회 문턱은 못 넘었다. 교육계에선 남교사가 줄어드는 현상은 문제라고 보면서도 할당제는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시선이 많다. ‘여성 역차별’이란 사회적 반발이 크다는 것이다.

학교 교실. 게티이미지뱅크

현재 대부분의 교대에서 남성 입학생 비율을 25∼40%가량으로 정해둬 이미 대입에서 할당제가 적용되는데 임용 과정에서 또 할당제가 적용되면 이중 차별이란 지적도 있다. 박남기 광주교대 교수는 “여의사가 적다고 여의사 할당제를 이야기하지 않는 것처럼 교사도 마찬가지다. 할당제는 위헌 소지가 있다”고 밝혔다. 그는 “남교사를 늘려야 한다면 실제 학교에 남교사가 왜 필요한지, 기대할 수 있는 효과가 뭔지 세심히 분석해야 한다”고 말했다.

인위적인 할당제보다는 업무 환경을 개선해 남성 중 교사 지원자를 늘려야 한다는 목소리가 크다. 경기의 한 초등학교 남교사 B(33)씨는 “요즘 교사는 박봉인 데다가 교권 침해 사건도 많아 ‘힘든 일’이란 인식이 있다. 교사 처우가 좋아지면 자연스레 남교사도 늘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초등학교 남교사 C(35)씨는 “학교에서 행사 때 강당에 의자를 까는 일 등 궂은일은 암묵적으로 남교사가 해야 한다는 분위기”라며 “교육 외 업무 부담도 커 그만두는 남교사도 있다”고 말했다. 전제상 공주교대 교수는 “현재 한국 학교는 교사가 거의 모든 업무를 다 하는 시스템이다. 특히 행사 준비, 당직 등 물리력이 필요한 일이 남교사에게 몰린다”면서 “교육청에서 별도 예산으로 교육 외 업무에 필요 인력을 지원해주고, 학생에게 남교사가 해줘야 할 역할도 외부 인력이나 체험을 활용하는 식으로 문제를 해결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학령인구 줄면서 좁아지는 임용문… ‘교사준비는 불안정적’ 인식도

 

남교사가 줄어드는 것은 교사 임용이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는 상황과도 관련이 있다. 저출생 기조가 이어지면서 매년 교사 임용 규모가 줄어들어 “교사를 준비하는 것은 안정적이지 않다”는 인식이 퍼진 분위기다.

 

30일 교육부에 따르면 내년 공립 교원 정원(초·중·고 교과)은 29만3023명이 될 전망이다. 학령인구가 감소하면서 초·중·고 교과 교원 정원은 2020년 29만4350명에서 2021년 29만4121명 등으로 매년 소폭 줄고 있다.

세종시 어진동 정부세종청사 교육부. 뉴시스

신규 임용도 감소 추세다. 교육부에 따르면 내년에 17개 시·도 교육청에서 선발하는 초등 교사는 3561명으로 올해보다 5.2%(197명) 감소했다. 특히 서울은 올해(216명)의 절반 수준인 115명으로 급감했다. 10년 전(2013년 990명)과 비교하면 8분의 1로 줄어든 규모다. 대구(30명)도 올해 대비 선발 인원이 40% 감소하는 등 대부분의 지역에서 신규 임용 규모가 줄었다.

 

어렵게 시험에 합격하더라도 학교에 자리가 나지 않아 미발령된 이들이 증가하는 추세다. 경인교대 재학생 A씨는 “학교에서 은퇴 등으로 나가는 교사가 있어야 들어갈 수 있다 보니 임용고시에 합격해도 2년까지 대기하기도 한다”며 “어릴 때부터 교사가 되겠다는 꿈이 커 교대에 왔지만, 주변에서 ‘요즘 교사 되기 힘들고 교사가 돼도 일이 쉽지 않다’는 말을 많이 해 위축된다. 교대 인기도 줄어드는 것 같다”고 말했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교총)는 “학생 수는 줄었지만 여전히 초등학교 학급의 31%가 학생 수 26명 이상인 과밀학급”이라며 “정부가 ‘학생 수 감소’에 매몰돼 교원 정원을 줄이며 열악한 교육 현실을 방치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김유나 기자 yoo@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