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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령 전투기 만들자”…앞다퉈 개발 나선 선진국, 한국만 뒤처진다 [박수찬의 軍]

세계 최강 전투기로 평가받는 F-22와 F-35A 스텔스기를 뛰어넘는 첨단 6세대 전투기 개발 움직임이 빨라지고 있다.

 

400억 달러(약 45조원)가 투입됐던 F-35 개발보다 더 큰 비용을 지출해야 하는 만큼 미국과 중국을 제외한 선진국애서는 6세대 전투기를 독자적으로 만드는 대신 공동개발을 통해 비용과 기술을 분담하는 방식이 두드러지는 모양새다.

 

이를 위해 선진국 간 ‘합종연횡’도 빨라지는 추세다. 일본은 영국, 이탈리아와의 합작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프랑스와 독일, 스페인도 공동개발을 본격화하는 상황이다. 

 

KF-21 시제기 비행시험에 나선 한국도 KF-21보다 우수한 6세대 전투기 연구개발과 해외 협력 가능성을 서둘러 타진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프랑스와 독일, 스페인이 공동개발하는 미래전투항공체계(FCAS)의 상상도. 세계일보 자료사진

◆모든 선진국이 6세대 전투기 개발 나서

 

미국이 스텔스 성능을 지닌 5세대 전투기 F-22, F-35를 개발하는 동안 유럽은 4세대인 라팔과 유로파이터를 개량하는 수준에 머물러 있었다. 

 

1980년대부터 스텔스 기술 등을 연구했지만, 비용 대비 효과 등을 고려해 스텔스 성능에 ‘올인’하는 것보다는 기존 기체 개량과 더불어 다양한 기술을 조합해 시너지를 내는 것을 염두에 뒀다.

 

그 결과 유럽은 5세대 전투기를 개발하지 않고, 4세대에서 6세대로 건너뛰는 방법을 선택했다.

 

대표적인 프로젝트가 미래전투항공체계(FCAS)다. 1000억 유로(약 139조원) 이상이 소요될 것으로 보이는 FCAS는 독일(에어버스), 프랑스(닷소), 스페인(인드라)이 참가하는 유럽 최대 방위 프로젝트다.

 

최근 3국은 FCAS 사업을 진전시키기 위한 정치적 합의에 도달했다. 독일 국방부는 18일(현지시간) 성명을 통해 FCAS 사업이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도록 3국이 동등한 입장에서 협조하기로 합의가 이뤄졌다고 밝혔다.

프랑스와 독일, 스페인이 공동개발하는 미래전투항공체계(FCAS) 모형들이 탁자 위에 놓여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에어버스도 “FCAS 사업에 참여하는 기업과 정부 간 합의에 도달했다”며 “계약을 이행하려면 먼저 각국에서 많은 조치가 필요하다”고 전했다.

 

지난 2017년 7월 프랑스와 독일은 라팔과 유로파이터를 대체할 6세대 전투기를 개발하기로 결정했다. 2019년 2월 스페인이 합류하면서 3국 공동개발 체제를 갖췄다.

 

FCAS는 6세대 전투기 더불어 신형 순항미사일, 군집 비행이 가능한 무인기, 차세대 통신위성 등을 함께 개발하는 프로젝트다. 공중전 개념을 완전히 바꾸는 대규모 사업인 셈이다. 핵추진항공모함을 운용하는 프랑스는 FCAS 함재기를 추가 개발, 차세대 항모에 탑재할 예정이다.

 

3개국은 2021년 8월 36억 유로(약 5조원)를 투입해 2025년부터 FCAS 초기 사업을 진행하기로 했으나, 분담률과 스텔스 등 핵심 기술의 지적 재산권 공유를 놓고 갈등을 빚었다.

 

프랑스와 닷소 측은 FCAS 개발 주도권을 주장하며 ‘플랜B’ 가능성까지 제기했다. 동등한 협력을 원한 독일과 에어버스는 강하게 반발했다. 

프랑스 항공우주방위산업체 닷소가 공개한 미래전투항공체계(FCAS) 상상도. 닷소 제공

닷소는 6세대 전투기를 독자 개발할 능력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규모의 경제’가 충분치 않았던 라팔이 세계 전투기 시장에서 오랜 기간 어려움을 겪었던 점을 의식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프랑스 공군과 해군 소요에 독일과 스페인을 더하면, 개발 단계서부터 충분한 물량을 확보할 수 있다. 이는 비용 절감 및 경제성 향상으로 이어진다.

 

우크라이나 전쟁 직후 F-35A 도입을 결정한 독일은 자국 항공우주산업 연구개발 역량과 일자리를 유지하기 위해서라도 FCAS 사업을 중시할 수밖에 없었다. 

 

양국이 거듭된 갈등 속에서도 ‘헤어질 결심’을 하지 못했던 이유를 짐작하게 하는 대목이다.

 

이번 합의로 2040년대에 실전배치될 FCAS 개발이 제대로 추진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6세대 전투기 개발은 프랑스 닷소가 주도하고 엔진은 프랑스(사프란), 독일(MTU), 스페인(ITP)이 공동개발한다. 전투기와 함께할 무인기와 항공전자장비 개발은 에어버스가 주도한다.

영국이 이탈리아와 공동개발하는 템페스트 6세대 전투기 상상도. 일본도 참여할 예정이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다만 1980년대 유로파이터 개발 과정에서 유럽 국가간 내분으로 라팔과 유로파이터가 따로 개발됐다는 점에서 FCAS의 주도권을 놓고 갈등이 지속되면, 과거의 사례가 반복될 가능성도 있다.

 

일본은 영국이 주도하고 이탈리아가 참여하는 템페스트 6세대 전투기 개발 프로그램에 합류한다.

 

일본 아사히신문은 18일 일본이 항공자위대 F-2 전투기의 후속 기종인 차세대 전투기를 영국, 이탈리아와 공동 개발하기로 하고 다음 달 정식 합의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일본이 2035년 배치할 차세대 전투기는 미쓰비시중공업과 영국 BAE시스템이 체계개발을 맡는다. 이탈리아 레오나르도도 참가한다.

 

엔진은 일본 IHI와 영국 롤스로이스가 개발을 주도하고, 이탈리아 아비오가 참여한다.

영국이 이탈리아와 공동개발하는 템페스트 6세대 전투기가 활주로에 있는 모습을 그린 상상도. 세계일보 자료사진

일본은 미국 록히드마틴의 지원을 받아 미쓰비시중공업이 6세대 전투기를 개발하려 했다. 하지만 기술이전 등을 둘러싸고 협의가 난항을 겪었고, 비용부담도 크게 늘어났다. 

 

이에 요구성능이 비슷한 영국의 템페스트 프로그램에 합류하는 방식으로 전환했다. 이를 통해 양국은 비용과 리스크를 낮출 수 있게 됐다. 록히드마틴은 일본이 도입할 기체가 미군과의 상호운용성을 갖출 수 있도록 지원한다.

 

일본은 6세대 전투기 수출 가능성에 대비, 방위장비 수출 요건을 완화하도록 ‘방위장비 이전 3원칙’ 운용 지침도 개정할 예정이다. 안보와 경제를 모두 잡겠다는 의도다.

 

2018년 영국이 발표한 템페스트 프로그램은 기존 유로파이터를 대체하는 첨단 6세대 전투기를 만드는 것이다. 

 

인공지능(AI)을 갖추고 다수의 무인기를 통제하며, 고성능 엔진과 발전기를 탑재해 레이저와 극초음속미사일 등의 운용을 지원한다. 슈퍼컴퓨터 수준의 임무컴퓨터와 첨단 디지털 레이더로 막대한 양의 정보를 초고속으로 처리한다.

 

BAE 시스템스와 롤스로이스, MBDA 등 영국과 유럽을 대표하는 방산업체들이 대거 참여한다.

한국형 전투기 KF-21 시제 2호기가 경남 사천 한국항공우주산업(KAI) 활주로에서 이륙하고 있다. 방위사업청 제공

◆한국은 KF-21에 만족할 것인가

 

6세대 전투기 독자 개발을 추진 중인 미국과 중국 외에 일본, 유럽 국가들도 공동개발에 나서는 상황에서 한국은 4.5세대인 KF-21 시험비행을 진행하고 있다.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이 개발한 KF-21은 지난 10일 시제2호기가 첫 시험비행에 나섰다. 지난 7월에 1호기가 첫 비행에 성공한 직후 수십여 차례에 걸쳐 시험비행이 진행중이다.

 

5세대 전투기는 F-35A 40대를 도입하고 20대를 추가로 들여오기로 하면서 소요를 충족했다. 반면 6세대 전투기는 수년 전부터 학술회의 등을 통해 필요성과 요구성능이 조금씩 제기되는 수준에 머물러 있다. 논란이 일 수 밖에 없는 대목이다.

 

한국군은 박근혜정부의 ‘창조국방’, 문재인정부의 ‘국방개혁 2.0’, 현 정부의 ‘국방혁신 4.0’을 추진하면서 4차 산업혁명 기술의 국방 적용을 강조해왔다.

 

AI와 빅데이터, 초고속 네트워크, 무인자율 등이 포함되는 4차 산업혁명 기술은 개별 분야의 기술만으로도 상당한 의미를 지닌다. 무인수색차량이나 유·무인복합체계(MUM-T) 등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하드웨어 또는 소프트웨어로 구성된 4차 산업혁명 기술들을 대규모로 체계통합하면 더 큰 시너지를 낼 수 있다. 6세대 전투기는 이러한 기술을 모두 반영하면서, 소재·장비·부품 산업 기술까지 높일 수 있는 플랫폼이다.

 

4차 산업혁명이 직면하게 될 제도적, 윤리적 문제를 풀어나가는 발판으로 활용하는 것도 가능하다. 실질적인 무기 개발 사업에서 이같은 문제를 논의하면, 보다 깊은 의견 교환을 할 수 있다.

국산 FA-50 경공격기가 경남 사천 한국항공우주산업(KAI) 고정익동에서 조립되고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실제로 프랑스와 독일에서는 FCAS의 핵심 시스템인 AI를 활용하는 과정에서 자율성을 부여하는 범위와 방법 등에 대한 전문가들의 논의가 활발하다. 

 

AI가 전투원과 민간인을 구별해야 하고, AI의 의사결정 과정에서 인간이 개입해야 하며, 인간의 존엄성은 존중되어야 한다는 등의 원칙들도 제안되는 모양새다. 이는 4차 산업혁명의 국방 적용 과정에서 반드시 검토되어야 하는 부분이다.

 

T-50과 KF-21을 개발하면서 구축된 군용기 생태계를 유지·발전시켜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국은 T-50과 KF-21을 개발하면서 상당한 수준의 연구개발 역량을 확보했다. 이같은 역량의 핵심은 엔지니어들이다. 수백명의 엔지니어가 축적한 경험은 숫자로 환산하기 어려운, 귀중한 자산이다.

 

KF-21을 만든 엔지니어들의 경험과 기술을 토대로 6세대 전투기 개념과 소요기술 등에 대한 탐색개발을 진행하면, 공군이 소요결정을 했을 때 큰 도움이 된다.

 

국내 개발 방식을 적용하면, 6세대 전투기 개발 속도를 가속화할 수 있다. 해외에도 도입할 때도 관련 지식을 토대로 획득절차를 진행하는 효과가 있다.

 

군사적 측면에서도 미국, 중국, 일본이 6세대 전투기를 실전배치하는 2030년대 한반도 정세에 대응하는 전략적 무기를 확보하는 계기가 된다.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러시아군이 고전하는 것처럼 현대전에서 제공권을 장악하지 못하면 전쟁에서 승리를 장담할 수 없다. 강력한 공군력을 만들려면 자체적인 항공우주 및 방위산업 기술의 지원이 필수다. 6세대를 비롯한 첨단 전투기 개발을 지속적으로 추진, 안보와 경제를 모두 챙기는 전략을 체계적으로 추진해야 하는 이유다.


박수찬 기자 psc@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