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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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정부, 안전운임제 품목추가 검토한다지만… 타결까진 ‘험로’

화물연대 교섭 난항 예상

적용대상 ‘확대 불가’ 입장서 선회
환적 컨테이너 등 추가 유력 검토
일몰제 폐지 ‘3년 연장’ 원칙 고수
화물연대 ‘영구화’ 요구와 간극 커

주유소 공급량 줄어 ‘기름난’ 우려
원희룡 “운송 방해로 피해 땐 보상”

정부가 총파업 중인 화물연대와 교섭을 앞두고 ‘안전운임제 일몰 폐지 및 적용 대상 확대 불가’라는 기존 입장에서 한 발 물러나 1∼2개 품목에 대해 안전운임제 추가 적용을 검토 중인 것으로 확인됐다. 화물연대의 안전운임제 일몰 폐지 요구에 대해선 ‘3년 연장’ 입장을 고수하는 대신, 적용 대상을 1개 정도 확대하는 타협안을 협상 카드로 제시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화물연대 요구 사항과 간극이 커 교섭 난항이 예상된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27일 통화에서 “(안전운임제가 적용되는) 기존의 컨테이너와 시멘트 말고, 레미콘과 철강에 대해서도 해달라고 하는데 무조건 다 적용해줄 수는 없다”며 “컨테이너를 연결해주는 작은 차들의 경우 (차주 처우가) 미흡한 면이 있어서 그 정도에 대해선 확대를 검토할 수 있어도 그 이상으로 확대하는 건 어렵다”고 말했다. 일몰제 폐지 요구에 대해선 절대 불가하다며 기존에 밝힌 ‘3년 연장안’에서 물러설 수 없다는 입장을 보였다. 정부가 안전운임제 적용을 검토 중인 대상은 환적 컨테이너 또는 간선 화물차 등이 유력한 것으로 알려졌다.

화물연대 총파업 나흘째인 27일 경기도 의왕시 내륙컨테이너기지(ICD)에 화물차들이 주차돼 있다. 연합뉴스

화물연대의 요구 사항인 △안전운임제 영구화 △적용 차종과 품목을 기존 컨테이너·시멘트 외 철강재, 자동차, 위험물, 사료·곡물, 택배 지·간선 등 5개 품목 확대 △안전운임제 개악안 폐기 등과 간극이 커 타협안 도출이 어려울 전망이다.

 

정부는 교섭 결렬에 대비해 업무개시명령 발동도 준비하고 있다. 화물연대 측의 업무 복귀를 압박하기 위한 엄포 성격이란 관측이 나오는 가운데 일각에선 지난 6월 파업 때처럼 산업계 전반에 물류 피해가 확산하는 것을 막기 위해 정부가 선제적으로 실력 행사에 나설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양측의 28일 협상이 업무개시명령 발동 여부의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

 

고용노동부는 적극적인 대화 참여를 촉구했다. 이정식 고용부 장관은 이날 서울지방고용노동청에서 개최한 제4차 노동 동향 점검 주요 기관장 회의에서 “화물연대와 철도·지하철 노조가 대화를 통한 해결을 위해 적극 노력한다면 정부도 해법 모색을 적극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정부가 안전운임제 일부 품목 확대를 검토하며 28일 총파업 이후 화물연대와 첫 협상에 나서는 만큼 당장 29일 국무회의에서 이를 통과시키기보다는 추후 논의를 더 지켜볼 것으로 관측된다.

 

이와 관련, 조승환 해양수산부 장관은 비상수송대책 점검회의를 갖고 화물연대 파업에 참여하지 않는 차주 중 파업으로 화물차량에 피해가 발생할 경우 부산항만공사, 인천항만공사, 여수광양항만공사, 울산항만공사 등 4개 항만공사를 통해 수리비를 선제적으로 지원하기로 했다.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도 “정부는 정상 운송 중 불법 방해 행위로 인한 차량 파손 등에 피해를 보상해드릴 것”이라며 “해당 화물차주의 피해가 복구될 수 있도록 즉시 조치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산업계 안팎에서는 이번 주부터 건설업계를 비롯해 철강·정유·완성차 업계 등 산업계 전반으로 피해가 확산할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우선 시멘트 운송 차질로 레미콘 품귀 현상이 발생하면서 건설 현장의 ‘셧다운’이 불가피해졌다. 한국시멘트협회에 따르면, 전날 예정된 시멘트 출하 물량은 10만3000t이었지만 실제 출하량은 9%(9000t)에 불과했다. 철강업계에서도 화물차를 이용한 출하가 거의 진행되지 않고 있다.

화물연대 총파업 이틀째인 지난 25일 광주 서구 기아 광주공장에서 임시번호판을 단 완성차들이 적치장으로 옮겨지고 있다. 파업으로 완성차를 옮기는 카캐리어 운송이 멈춰서면서 기아 측은 대체인력을 고용해 개별 운송하고 있다. 연합뉴스

완성차업계에도 물류난이 현실화하고 있다. 현대자동차의 경우 완성차를 출고센터로 탁송하는 ‘카 캐리어’ 조합원들이 파업에 참여하면서 배송센터 직원들이 직접 완성차를 몰고 이송하고 있다. 파업 사태가 장기화하면 차량 출고 뒤 고객들이 전달받는 시점이 늦어질 수밖에 없다.

 

일선 주유소에서 기름을 구하지 못하는 사태가 벌어질 수도 있다. 4대 정유사(SK, GS칼텍스, 에쓰오일, 현대오일뱅크)의 차량 중 70∼80%가 화물연대 소속이라 주유소의 휘발유와 경유 공급량도 급감하고 있다. 사전에 물량을 확보하지 못한 일부 주유소는 1주일 안에 재고가 모두 소진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이현미·박세준·김유나 기자, 세종=이희경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