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출금을 조기에 갚을 때 금융사가 부과하는 중도상환수수료는 ‘이자’로 볼 수 없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이자제한법상 최고이자율 규제를 적용할 수 없다는 입장이 처음으로 명확해진 것이다. 이번 판결로 금융권은 중도상환수수료를 관행대로 부과할 수 있게 됐지만, 과도한 경우 법원이 직권으로 감액할 수 있어 차주 보호 장치는 유지됐다.
대법원 전원합의체(재판장 대법원장 조희대, 주심 대법관 오경미)는 18일 중도상환수수료가 이자제한법 제4조 제1항에 따른 간주이자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이를 이자로 판단한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고등법원으로 돌려보냈다.

이 사건은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출을 받은 원고가 약 68억원을 빌린 뒤, 1년 이내에 전액 상환하면서 중도상환수수료 약 2800만원을 납부한 데서 시작됐다. 원고는 이 수수료가 이자제한법에서 정한 최고이자율인 연 20%를 초과했다며 초과분을 돌려달라고 소송을 제기했다.
1·2심 재판부는 수수료가 사실상 이자에 해당한다고 판단했고, 전액 부당이득 또는 손해배상 대상이라고 봤다. 그러나 대법원 다수의견(10명)은 “중도상환수수료는 채무자가 약정된 기한보다 빨리 돈을 갚음으로써 채권자가 입을 수 있는 손해를 보전하기 위한 것이며, 금전을 빌린 대가인 이자와는 다르다”며 “이 수수료까지 간주이자에 포함하면 최고이자율 초과로 형사처벌까지 이어질 수 있어 엄격한 해석이 필요하다”고 했다. 대법원은 “수수료가 지나치게 높아 불공정하다면 이자제한법 제6조에 따라 법원이 직권으로 금액을 줄일 수 있다”며 과도한 수수료에 대해서는 사법적 통제가 가능하다고 밝혔다.
다만 이흥구·오경미·박영재 대법관은 “중도상환수수료도 대출과 직접 연결된 금전으로 봐야 한다”며 “이를 이자에서 제외하면 금융사가 이자 대신 수수료 명목으로 최고이자율 규제를 피할 수 있다”는 반대 의견을 냈다.
이번 판결은 중도상환수수료에 대한 이자제한법 적용 여부를 처음으로 명확히 다뤘다. 과거에는 대부업법 판례만 있었고, 이자제한법상 해석은 분명치 않아 실무상 혼란이 많았다. 대법원은 “이자제한법과 대부업법은 입법 목적, 적용 대상, 규제 방식 등이 다르기 때문에 동일한 기준으로 해석할 수 없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