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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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빛·물 끊기는 우크라…"러, 유럽 난민위기 유발 의도"

혹독한 겨울 맞은 우크라에 도움 손길…미·서방 "발전기 보내자"
젤렌스키, 유엔 안보리서 러 폭격 규탄…"단호한 반응" 촉구

우크라이나 전력 기간시설을 겨냥한 러시아군의 폭격이 한달반 가까이 집요하게 이어지면서 수백만명에 이르는 민간인이 열과 빛, 수도가 끊긴 채 영하의 추위에 시달리고 있다.

러시아는 가스 시설로까지 폭격 대상을 확대해 우크라이나를 말 그대로 '사람이 살 수 없는 곳'으로 만들려는 모양새다. 군사적 승리가 어려워지자 대규모 피란민을 발생시켜 유럽으로 밀어넣으려는 의도로 보인다.

지난 23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남부 헤르손의 한 버려진 검문소에서 한 우크라이나 어린이가 국기를 흔들며 놀고 있다. AP연합뉴스

미국 일간 워싱턴포스트(WP)는 우크라이나와 서방 당국자들이 경고성을 내고 있지만 당장은 러시아의 이런 전략에 대응할 자원이 충분하지 않은 실정이라고 23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옛 소련 시절 구축된 우크라이나 전력망은 한번 파괴되면 고치기가 쉽지 않은 까닭이다. 피해가 심각한 일부 도시의 경우 주민들에게 피란을 권고하는 외엔 딱히 할 수 있는 일이 없을 지경이다.

이런 상황이 장기화한다면 가뜩이나 한계 상황인 우크라이나 경제가 붕괴 위기에 몰리고 수백만명의 피란민이 국경을 넘어 인근 유럽 국가로 향할 수 있다고 WP는 진단했다.

세계보건기구(WHO)의 한스 헨리 클루게 유럽지역 국장은 21일 키이우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간단히 말해 이번 겨울은 생존에 관한 것이 될 것"이라면서 "수백만명의 우크라이나인의 생명이 위협받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우크라이나 대부분 지역에선 이미 영하의 날씨가 이어지고 있다. 클루게 국장은 이번 겨울 200만명에서 300만명의 우크라이나인이 '온기와 안전'을 찾아 고향을 떠나는 신세가 될 것으로 전망했다.

지난 23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키이우 외곽 비슈호로드 마을에서 소방대원들이 러시아군의 포격 현장의 화재를 진압하고 있다. AP뉴시스

러시아군은 지난주 이틀에 걸쳐 약 100발의 미사일과 자폭 무인기를 동원해 우크라이나 곳곳에 대규모 정전을 유발한 데 이어 23일에도 키이우와 르비우 등의 전력시설을 폭격하는 등 공세를 멈추지 않고 있다.

이와 관련해 데니스 슈미갈 우크라이나 총리는 이미 지난주 러시아의 미사일 공습으로 자국내 전력시설의 절반 정도가 가동 불능 상황에 놓였다고 밝힌 바 있다.

러시아군은 지난주에는 하르키우와 폴타바 등에 있는 천연가스 생산 시설 10곳에 대해서도 대규모 로켓 공격을 가했다. 빅토리아 보이치카 전 우크라이나 의회 의원은 천연가스 공급망마저 마비된다면 전국 도시와 마을이 '사람이 살 수 없는 곳'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현지 일각에선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주요 도시의 중앙난방설비에도 폭격을 퍼부을 수 있다는 우려마저 제기된다.

드미트리 페스코프 러시아 크렘린궁 대변인은 러시아의 미사일 공격은 군사적 목적을 위한 것으로 군사목표 달성시까지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로이드 오스틴 미 국방장관은 러시아군의 우크라이나 전력 기반시설 공격에는 "군사적 목적이 거의 혹은 아예 없다"면서 전쟁범죄에 해당한다고 비판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지난 23일(현지시간) 아르메니아 수도 예레반에서 열린 집단안보조약기구(CSTO) 정례회의에 참가하고 있다. AP연합뉴스

군사 전문가들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의도적으로 유럽에 난민 위기를 일으키려 한다고 분석했다.

혹독한 추위를 견디지 못한 우크라이나 주민들이 무더기로 국경을 넘으면 수백만명의 피란민을 추가로 감당할 처지가 되는 유럽 국가들이 우크라이나에 조기종전을 압박하길 기대했을 수 있다는 이야기다.

벤 호지스 전 유럽 주둔 미 육군사령관은 "이건 전부 난민 무기화에 관한 것"이라면서 "겨울 동안 우크라이나를 사람이 살 수 없는 곳으로 만들면 우크라이나인 수백만명을 유럽으로 보내는 결과가 초래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러시아군은 모든 곳에서 패배하고 있다"면서 현재로선 비군사 민간 시설을 겨냥한 공격이 "그들의 유일한 전술"이라고 덧붙였다.

다만, 익명을 요구한 유럽연합(EU) 고위 당국자는 언론 브리핑에서 또다시 대규모 난민이 발생하더라도 충분히 흡수할 여력이 있다고 강조했다고 WP는 전했다.

우크라이나를 방문한 리시 수낵 영국 총리(오른쪽)가 지난 19일(현지시간) 수도 키이우에서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과 함께 파괴된 러시아군 소속 군용 차량을 살펴보고 있다. 우크라이나 대통령 공보실 제공

서방 각국은 우크라이나에 첨단 대공방어체계를 제공하는 한편 전력망 복구를 위한 지원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미국 국제개발처(USAID)는 키이우와 하르키우 등 주요도시에 700만 달러(약 92억원) 상당의 수리장비를 지원하고 1천700여개의 발전기를 제공하기로 했다.

유럽 지방자치단체 협의체 수장인 이탈리아 피렌체시의 다리오 나르델라 시장은 유럽 전역 200여개 도시가 협력해 "대량의 전력을 생산할 수 있는 발전기 수백개를 전달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라고 밝히기도 했다고 AFP 통신은 전했다.

우크라이나 전력당국은 변전소를 정상 가동하기 위한 핵심 부품인 단권(單捲) 변압기가 특히 부족한 실정이라고 밝혔다.

이에 멀리는 한국에서까지 해당 부품을 구매하려 노력 중이지만, 재고가 부족한 까닭에 신규 생산 주문을 넣고 있다고 WP는 보도했다.

그런 가운데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23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기반시설 공격을 논의하기 위해 소집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긴급회의에서 즉각적인 행동에 나설 것을 촉구했다.

화상 연결을 통해 회의에 참석한 그는 "오늘 하루 70발의 미사일이 떨어졌다. 그것이 러시아의 테러 수법"이라면서 "매우 단호한 반응"이 나오길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러시아는 거부권을 지닌 안보리 상임이사국인 까닭에 실질적인 행동에 나설 가능성이 희박한 것으로 평가된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러시아는 당사국인 만큼 이 사안과 관련해선 투표권을 줘선 안 된다면서 "우리는 한 국제적 테러범의 인질이 될 수 없다"고 주장했다고 통신은 전했다.

<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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