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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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팅방 다정한 오빠의 속삭임…'악마의 그루밍' 시작이었다 [S스토리]

대화로 친분 쌓은 후 신체영상 요구·유포·협박
피해 갈수록 늘어… 경각심 낮은 10대 주 타깃
10대 10명 중 1명 “온라인서 성적 침해 당해봤다”
학교 예방교육 연간 2시간… 매뉴얼조차 없어
전문가 “부모·교사까지 체계적 성교육 이뤄져야”

#1. 30대 남성 A씨는 메타버스(3차원 가상세계) 플랫폼 ‘제페토’에서 잘생긴 외모를 하고 화려하게 치장한 자신의 아바타로 10대 여성 청소년들에게 말을 걸었다. 제페토의 유료 아이템과 초콜릿 기프티콘 등을 선물하며 환심을 사고 메신저로 친분도 쌓았다. 상대는 초등학생부터 고교생까지 다양했다. 어느 정도 가까워지자 A씨는 성적 대화를 시작하고 자신의 신체를 찍은 영상을 보내면서 피해자들에게도 신체 영상 등을 달라고 했다. 이런 수법으로 A씨가 지난해 4월부터 최근 경찰에 잡히기 전까지 1년여간 신체 사진 등을 받아 제작한 성착취물의 피해자는 11명에 달한다.

 

#2. 태권도 사범 B씨는 2020년 한 애플리케이션에서 C(10)양이 올린 영상을 보고 C양을 채팅방에 초대해 대화를 나웠다. 어느 정도 친해지자 C양에게 신체 영상 등을 요구하며 성적으로 착취했다. B씨는 1심 재판에서 ‘청소년성보호법’ 등 위반 혐의로 징역 3년6개월을 선고받았다

 

아동·청소년들의 소셜미디어(SNS) 사용이 활발해지면서 미성년자에게 접근해 성적으로 착취하는 ‘온라인 그루밍’ 범죄가 늘고 있다. 문제는 피해 연령층은 점점 낮아지는데 온라인 성착취 범죄를 적발하기가 쉽지 않다는 점이다. 범죄를 예방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지만, 이들을 대상으로 한 디지털 성범죄 예방 교육은 여전히 미흡한 실정이다.

◆디지털 성범죄에 노출된 ‘디지털 네이티브’ 세대

보건복지부와 아동권리보장원이 시행한 ‘아동 디지털 성범죄 전문영향평가’에서는 온라인 아동 성착취를 정보통신기술을 매개로 온·오프라인에서 불법 촬영하거나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에 게시된 영상물 등을 동의 없이 합성한 ‘딥페이크’를 유통 또는 이를 이용해 협박하는 행위, 온라인에서 성적인 목적으로 아동을 그루밍하는 행위 등으로 정의한다.

디지털 성범죄 피해자는 매년 증가 추세를 보이는데 10대와 20대 등 저연령층에 피해가 집중된다. 지난달 4일 한국여성인권진흥원이 발간한 ‘2021 디지털 성범죄 피해자 지원 보고서’를 보면 지난해 ‘디지털 성범죄 피해자 지원센터’가 도와준 피해자는 6952명으로 전년(4973명)보다 40%가량 늘었다. 이 중 10대(21.3%)와 20대(21.0%) 피해자가 연령을 밝히지 않은 피해자(46.4%)를 제외하면 가장 많았다. 30대와 40대 이상 피해자가 각각 6.8%, 4.5%인 것을 고려하면 저연령층의 디지털 성범죄 피해가 크다는 것을 알 수 있다.

10대의 경우 온라인 그루밍에 노출되거나 실제로 피해를 본 사례가 적지 않았다. 그루밍 가해자들은 대체로 ‘오픈·랜덤채팅’ 등을 통해 익명으로 활동하며 피해자를 물색하는 경우가 많다. ‘디지털 네이티브’(어릴 때부터 디지털 환경에서 자란 세대)인 아동·청소년들이 이런 매체에 익숙하기 때문이다. 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유행하면서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지자 온라인상에서 관계를 맺는 경우도 늘었다. 장근영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범죄자들이 아동·청소년에게 접근할 수 있는 경로가 많지 않은데 온라인에서는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며 “가해자의 그루밍 수법이 세밀해지고 경각심이 낮은 어린 피해자들이 범죄의 표적이 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교묘해진 온라인 그루밍 수법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이 지난 3월 발표한 ‘아동·청소년 대상 디지털 성범죄 현황 및 대응방안 연구’에 따르면 초등학교 5학년부터 고등학교 3학년까지 총 3798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10명 중 1명(11%)은 온라인에서 성적 침해를 당한 적이 있다고 답했다. 또 10명 중 2명(19.9%)은 오픈 채팅을 해본 적이 있었고, 여자 청소년의 약 10%가 온라인상에서 모르는 사람에게 이유 없이 선물을 받은 경험이 있었다.

그루밍 수법을 보면 가해자들은 온라인에서 피해자에게 접근해 개인정보를 파악하고 칭찬과 공감 등을 하며 이들의 신뢰를 얻는다. 피해자들과 처음에는 사소한 일상을 공유하다가 시간이 지날수록 무리한 성적 요구를 하고, 이를 거부하면 미리 파악하거나 획득한 정보를 빌미로 협박한다. 혹은 피해자의 신뢰와 의존을 강화해 성적 학대를 피해자가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관계를 형성하기도 한다. 연구진은 “초등학생 시기부터 많은 아동·청소년이 익명 채팅 등으로 온라인에서 낯선 이를 만나고 있다”며 “디지털 성범죄 예방 교육 연령대를 앞당겨야 한다”고 제언했다.

아동·청소년 디지털 성범죄를 막기 위해 지난해 9월부터 경찰의 위장수사가 허용됐지만, 검사의 청구를 거쳐 법원의 허가를 받아야 하는 등 수사 요건이 까다롭다. 가해자를 잡는 것 못지않게 피해 예방도 중요하다. 특히 아동·청소년들이 범죄의 대상이 되는 만큼 예방교육의 효과는 큰 것으로 분석된다. 앞선 조사에서도 예방교육을 받은 청소년들이 온라인 그루밍 위험에 노출될 확률이 낮은 것으로 확인됐다. 디지털 성폭력 예방교육을 받은 청소년은 온라인에서 알게 된 사람과 위험한 장소에서 만난 비율이 14.3%로 받지 않은 청소년(39.1%)의 3분의 1 수준이었다.

 

◆온라인 그루밍 관련 교육은 연 2시간 불과

하지만 교육 현장에서 이런 교육은 잘 이뤄지지 않고 있다. 학교에서 성교육은 보건교육에 포함돼 보건교사가 담당하거나 담임교사가 맡는 수업으로 나뉘는데, 학교 여건에 따라 교육시간·방식 등이 다를 수 있다. 학생건강증진계획에 따른 연간 성교육 시간은 권고지 의무는 아니다. 일례로 경기도의 한 초등학교에서는 보건교사가 학년별로 2∼7시간가량 성교육을 한다. 담임교사가 맡는 성교육 14시간 정도를 합하면 고학년의 경우 연간 약 20시간의 성교육을 받는다. 온라인 그루밍 관련 교육은 성교육보다는 성폭력예방교육에 포함되는 경우가 많은데, 교육시간은 전 학년이 동일하게 연 2시간에 불과하다.

한 초등학교 교사는 “성교육 시수만 정해져 있고 구체적인 매뉴얼은 없다. 가끔 교육청에서 강사를 보내기도 하는데 외부교육이 없으면 교사 재량으로 한다”며 “보건교사가 아닌 담임교사가 성교육을 자세히 하기 난감한 부분도 있다”고 했다. 장 선임연구위원은 “디지털 성범죄를 막으려면 수사와 처벌, 플랫폼의 적극적 참여, 예방교육이 모두 개선돼야 한다”며 “제대로 된 성교육이 이뤄져야 하고 아동·청소년뿐 아니라 부모와 교사까지도 교육이 확대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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