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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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태계 바로미터, 꿀벌을 보호하라”… 정부, 머리 맞대고 보호책 추진 [농어촌이 미래다-그린라이프]

관계 부처 합동 꿀벌대책 마련 착수

지난 겨울 이상 기온으로 78억마리 폐사
전체 사육농가 17.6% 피해… 생산량 급감

농진청·산림청·환경부·기상청 등 총가동
8년간 484억 들여 꿀벌 생태계 보전사업
병해충 관리?밀원 단지화 모델 개발 모색
“모든 역량 총집결 양봉산업 회복에 최선”

“생태계 바로미터, 꿀벌을 보호하라.”

지난겨울 78억마리에 달하는 꿀벌이 사라진 사건을 계기로, 관계 부처가 합동으로 꿀벌 보호를 위한 대책 마련에 착수했다. 이처럼 관계 기관이 총동원돼 꿀벌 지키기에 나선 것은 꿀벌이 농업 생산뿐만 아니라 건강한 생태계의 척도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꿀벌 등 꽃가루 매개체에 대한 세계 식량생산 의존도를 경제적 가치로 환산하면 5800억달러에 달한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또 유엔식량농업기구(FAO)에 따르면 세계 먹거리의 90%를 차지하는 100대 농작물 가운데 70% 이상이 꿀벌의 수분으로 생산되고 있다. 이 같은 꿀벌의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전망은 비관적이다. 일부 전문가들은 2035년 꿀벌이 완전히 멸종될 가능성을 제기하고 있다.

16일 농촌진흥청 등에 따르면 꿀벌 집단 폐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관계 기관 합동으로 ‘꿀벌 보호를 위한 밀원수종 개발 및 생태계 보전’ 연구개발 사업이 추진된다. 농진청 외에 산림청, 농림축산검역본부, 환경부, 기상청 등이 참여하는 이번 사업에는 2023년부터 8년 동안 총 484억원의 예산이 투입된다.

<세계일보 2022년 3월26일 5면 참조>

이번 사업은 최근 들어 심각한 문제로 대두된 꿀벌 집단 폐사 사건에서 시작됐다. 지난봄 한국양봉협회가 월동 봉군(벌무리) 소멸피해 전국 현황을 조사한 결과, 전체 회원 농가(2만3697가구) 중 17.6%에 달하는 4173농가에 피해가 발생했다. 이를 전체 사육 봉군(227만6593군)으로 계산하면 39만517군에서 벌이 사라진 것으로 나타났다. 봉군 1개당 약 2만마리 꿀벌이 사는 것을 감안하면 약 78억마리가 월동기간 사라졌다.

월동 봉군 폐사의 주요 원인 중 하나는 ‘이상 기온’ 때문이다. 특히 꿀벌의 주요 먹이원인 아까시나무의 분포면적이 최근 수십 년 동안 급감하면서 먹이 공급에 차질을 빚고 있다는 분석이다. 아까시나무의 분포면적은 1980년대에만 해도 32만㏊에 달했지만, 2010년대 들어서는 3만6000㏊로 줄어들었다. 30년 사이 10분의 1 수준으로 줄어든 셈이다.

이 같은 환경변화는 꿀벌의 활동을 어렵게 하고, 벌꿀 생산 감소 및 꿀벌의 면역력 약화로 이어진다. 전문가들은 꿀벌 생태계 파괴로 인한 피해와 경제적 손실이 점차 가중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벌꿀 생산량은 2020년 2322t, 2021년 1만3123t에 머물렀다. 이는 평년 대비 각각 8%, 45% 줄어든 규모다. 뿐만 아니라 꿀벌이 이상기후 등으로 적응하지 못하고 감소하면 해마다 세계 인구의 0.05% 이상 사망할 수 있다는 보고도 나와 있다.

양봉 산업을 위한 지원 체계도 미미한 상황이다. 2019년 ‘양봉산업의 육성 및 지원에 관한 법률’이 통과됐지만 세부사항은 여전히 마련 중이다. 양봉산업 육성법에는 △양봉업의 구조 개선 및 사양관리 기술 향상 △벌꿀 품질 향상과 유통구조 개선 △소비 홍보 등 벌꿀제품의 수요 확대 △양봉산업 관련 실태조사 △전문인력 양성 등 내용이 포함될 계획이다.

이번 사업은 이 같은 상황에서 이상 기온 등 다양한 환경변화로 인한 꿀벌 생태계 파괴 문제를 해결할 목적으로 추진된다. 구체적으로 꿀벌의 강건성 증진과 밀원 단지화 모델 개발, 생태계 서비스 연구 등을 수행할 계획이다.

기관별 연구과제를 살펴보면 농진청은 꿀벌 사육과 병해충 관리 등 강건성 향상과 화분 매개 생태계 서비스 강화기술 개발을 중점 추진한다. 산림청은 기후변화에 적합한 밀원수 선발과 밀원 단지 조성 모델을 개발한다. 산불 발생 지역을 비롯한 현장에 개발된 밀원 모델을 보급함으로써 산림생태계 회복을 돕는다.

농림축산검역본부는 꿀벌 질병 진단과 제어기술 개발을 담당하며, 기상청은 기상 상황에 따른 밀원수의 개화 예측 모델을 개발해 양봉 농업인에게 제공한다는 방침이다. 환경부는 등검은말벌과 같은 외래해충 관리와 생태계 서비스 평가 기술을 개발할 예정이다.

특히 연구개발을 1단계(기초 개발연구)와 2단계(현장 실증화)로 구분해 추진함으로써 개발된 기술의 현장 보급까지 연계해 나간다는 방침이다. 밀원 단지 기술개발 성과를 통해 안정적인 꿀벌 사육이 가능하면 꿀벌 생태계의 지속가능성을 확보할 수 있고, 꿀벌의 공익적 가치가 높아질 것으로 기대된다.

방혜선 농진청 연구정책국 과장은 “사회적 이슈로 떠오른 꿀벌 집단 폐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연구역량을 총집결하고 다부처공동연구사업을 성공적으로 추진하겠다”며 “아울러 생태계서비스 취약성을 극복하고, 양봉산업의 회복 탄력성을 높일 수 있도록 유관 부처가 적극 협력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세종=안용성 기자 ysahn@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