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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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환기칼럼] 잊혀진 영웅들 하루빨리 송환 나서야

국군포로 7만여 명 北에 억류
멸시 속 탄광 등에서 고된 노동
90대 고령 100여명 생존 추정
尹정부, 해법 도출 지혜 모으길

윤석열 대통령이 국군포로들에게 남다른 관심을 보여 주목된다. 6·25전쟁 72주년을 맞아 지난달 24일 국군포로 탈북자 등과 오찬을 하고 호국헌신에 감사의 뜻을 표시했다. 윤 대통령은 “오늘 우리가 누리는 자유와 평화, 번영은 국군과 유엔군 참전용사의 희생과 헌신 위에 이룩된 것”이라고 했다. 지난 5월 10일 대통령 취임식에 처음으로 국군포로 탈북자 3명을 초청한 것의 연장선이다. 윤 대통령의 국군포로 예우는 만시지탄이지만 높이 평가할 만하다. 정권 홍보를 위한 일회성 이벤트에 그치지 말고 국군포로 송환 문제의 해결을 위한 출발점이 되기를 기대한다.

 

1953년 7월 27일 정전협정 체결 당시 유엔군사령부가 추산한 국군 실종자는 8만2000여 명이다. 유엔군은 반공포로를 제외한 7만6000여 명의 북한군 포로를 송환했지만 북한은 8833명의 국군포로만 돌려보냈다. 7만명 이상이 북한에 억류된 것이다. 그런데도 북한은 국군포로의 존재를 일축한다. 전쟁 중 붙잡혀 인민군이 된 ‘해방 전사’는 국군포로가 아니며 미귀환 포로들은 잔류의사를 표명했다는 말만 반복한다. 억지 주장이다.

김환기 논설실장

공산주의 세뇌교육에 넘어가 빨간 물이 든 국군포로가 없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대다수는 북한의 의도적인 송환 거부이거나 죽음의 공포 속에서 이뤄진 비자발적인 선택이었음이 귀환한 국군포로들의 증언으로 확인됐다.

 

“이북 출신과 반동분자로 분류된 사람은 남한으로 갈 수 없었다. 가족 때문에 남한에 가겠다고 한 사람은 보내 준 반면, 공산주의를 부정하고 남한 체제가 좋아서 가겠다는 사람은 반동분자로 찍혀 나오지 못했다.”(천마포로수용소 출신 국군포로)

 

“남조선으로 가고 싶은 사람은 일어나라”고 말하고는 일어선 사람들에게 기관총을 쏘았다는 증언도 있다. 이런 분위기에서 귀환의사를 표명할 용기를 낼 수 있었을까.

 

국군포로와 배우자, 자녀들은 갖은 멸시 속에 탄광 등에서 고된 노동을 하며 힘겹게 삶을 이어간다. 인도 카스트제도의 불가촉천민이 따로 없다. 이런데도 우리 정부가 국군포로 송환 요구를 제대로 하지 않으니 개탄스럽다. 김대중·노무현·문재인 전 대통령이 남북정상회담에서 국군포로 송환을 의제로 올리지 않은 것은 국가의 존재 이유를 묻게 한다. 종전선언에 집착한 문재인정부는 국군포로와 후손들에 대한 인권유린 문제가 처음으로 담긴 유엔 북한인권결의안의 공동제안국에서 빠지기까지 했으니 말해 무엇하랴.

 

1994년 조창호 소위를 시작으로 2010년까지 80명의 국군포로가 자력으로 탈출해 귀환한 것은 정부 입장에선 자성해야 할 일이다. 전쟁포로를 한국처럼 장기간 적진에 방치해 놓은 나라는 없다. ‘한 명의 병사도 적진에 버려두지 않는다. 그들이 집으로 돌아올 때까지.’ 미국 국방부 전쟁포로·실종자 확인국(DPAA)의 모토다. DPAA는 1996년부터 2018년까지 6·25전쟁 미군 실종자 유해 600여 구를 북한에서 수습해 가족에게 인계했다. 보상금 조로 2800만달러를 지불하고 얻은 성과다. 살아서든, 죽어서든 반드시 가족 품에 돌아갈 수 있다는 믿음은 참전군인들의 사기를 높인다. 미군이 세계 최강이 된 원동력이다. 2차 세계대전 후 서독은 소련과 끈질기게 협상한 끝에 1955년 포로 1만명을 데려왔다. 일본도 소련에 억류됐던 관동군 58만여명 중 생존자들을 1956년까지 송환하는 데 성공했다.

 

이제라도 돌아오지 못한 국군포로들의 눈물을 닦아줘야 한다. 90대 고령임을 감안하면 생존자는 100여명으로 추산된다. 남아있는 시간이 많지 않다. 윤정부는 송환을 위한 지혜를 모으면서 ‘조국은 영웅들을 잊지 않고 있다’는 희망의 메시지를 발신해야 한다. 사망한 국군포로들은 유해라도 조국 품으로 모셔오는 게 도리다. 그러려면 유엔과 남북회담에서 국제이슈화해 북한을 움직이는 게 중요하다. 현충원에 국군포로 추모공원과 추모탑을 세우는 것도 시급한 과제다. 또한 국군포로의 탈북 가족에 대한 배려에 인색해선 안 된다. 독립유공자 가족에 준하는 혜택을 주는 게 형평성에도 맞는다. 조국 수호를 위해 헌신한 영웅들을 홀대하는 국가는 국격을 말할 자격이 없다.


김환기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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