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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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집안 물 다 못 빼… 앞날 막막” 서울 폭우 피해지역 가보니

반지하 60대 “몸만 겨우 빠져나와”
골목엔 쓰레기 된 살림살이 수북
구청직원·군인 수해 복구 ‘구슬땀’
서초 침수 아파트 토사 제거 한창
강남역선 실종자 수색작업 분주

“우리 아저씨 영정사진만 들고 뛰쳐나왔지 뭐예요.”

11일 서울 관악구 신림동에서 만난 최경실(62·여)씨는 폭우 이후 경기 시흥에 있는 동생 집에 머물다 돌아왔다고 했다. 최씨는 물에 젖은 집기 등을 밖으로 빼놓고 있었다.

 

11일 서울 관악구 신림동 골목에 주민들이 버린 가전도구 등이 널브러져 있다. 이날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에 따르면 기록적인 폭우로 인한 사망자와 실종자는 18명으로 늘었다. 이희진 기자

최씨 남편은 일주일 전인 지난 4일 지병을 앓다 세상을 떠났다. 지난 8일 남편 삼우제(장례를 치른 후 3일째가 되는 날 지내는 제례)를 준비하다 물난리를 만났다. 최씨는 “오후 11시에 제사를 지내려고 다 준비해뒀는데, 오후 9시쯤 갑작스레 빗물이 집에 흘러넘치면서 몸만 빠져나왔다”고 했다. 이어 “앞으로 어떻게 살아나가야 할지 잘 모르겠다”며 “대치동에서 청소 일을 하고 있는데, ‘비로 집이 침수됐다’고 말해도 업체에선 이를 안 믿고 일하러 나오지 않는다고 다그치기만 한다”고 눈물을 흘렸다.

115년 만의 기록적인 폭우로 큰 피해를 입은 서울 관악·동작·서초·강남구 등 폭우 피해 지역을 취재진이 이날 직접 돌아보니 주민들은 피해 복구에 총력을 기울이는 모습이었다. 구청직원들과 군인, 자원봉사자들도 수해 복구 작업에 투입돼 구슬땀을 흘렸다.

관악구에서는 구청직원 700명, 군인 500명 등이 동원됐다. 복구 작업의 첫 번째 단계는 물에 젖은 집기와 가전제품, 가구 등을 꺼내 버리는 것. 일가족 3명이 반지하에서 사망한 안타까운 사고가 발생한 신림동 일대 골목엔 주민들이 꺼내놓은 쓰레기들로 가득 차 있었다. 매트리스에서부터 냉장고, 세탁기, 가스레인지, 의류 등이 뒤엉켜 골목에 쌓였다.

아직 집에 들어온 물을 다 빼지 못해 양수기로 빗물을 빼는 주민들도 많았다. 신림동 한 빌라에서 임대업을 하는 80대 노부부는 지하 1층 집에서 물을 퍼나르다 한숨을 쉬었다. 노부부는 “지하 1층에 4가구가 살고 있었는데 네 집에 들어있던 모든 생활용품을 못 쓰게 됐다”며 “4가구 중 3가구는 집을 빼겠다고 하는데 당장 이들에게 줄 보증금도 없다”고 했다.

삼성전자 서비스센터 직원들이 11일 서울 관악구 남부초등학교에 마련된 '침수피해주민 가전제품 무료수리 서비스 부스'에서 가전제품을 수리하고 있다. 무상수리팀에는 삼성전자, LG전자, 위니아·위니아에이드 가전 3사가 참여한다. 뉴스1

지상에 있던 차들이 모두 잠길 정도로 피해가 컸던 서초구 진흥아파트도 군인 80명이 동원되는 등 복구 작업이 한창이었다. 해당 아파트는 아직도 전기가 끊겨 공급이 안 되는 상태다.

장병들은 지하에 위치한 전기·기계실에 토사물이 묻은 폐기물을 꺼내는 작업을 했다. 어두운 지하실을 오가다 넘어져 다리에 찰과상을 입었지만 내색 없이 꿋꿋하게 작업을 이어간 장병도 눈에 띄었다. 한 장병은 “지금 힘든 것은 폭우로 피해를 입으신 분들에 비하면 새 발의 피나 마찬가지”라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것에 뿌듯함이 앞선다”고 전했다.

11일 서울 송파구자원순환공원에 장지동 화훼마을 수해 지역에서 수거한 폐기물이 산더미처럼 쌓여가고 있다. 이번 집중호우로 서울 관악구에서만 4천t의 수해 폐기물이 발생하는 등 엄청난 양의 폐기물이 쏟아지자 인천 서구에 있는 수도권매립지공사에는 서울 수해 폐기물 반입을 허용했다. 연합뉴스

폭우로 도로가 마비되고 실종자가 발생했던 강남역에선 실종자 수색작업이 한창이었다. 지하주차장에서 실종자가 발생한 강남빌딩 뒤편엔 통합지원본부도 설치됐다. 소방인력 20여명과 구청 관계자 및 군인 10여명이 본부 자리를 지키며 분주히 움직였다. 소방당국은 실종자를 찾기 위해 강남빌딩에 차있는 물을 빼내는 작업을 진행했다. 이 남성 실종자는 이날 오후 숨진 채 발견됐다.

폭우로 피해를 입은 전통시장은 빠르게 일상을 회복하는 모습이었다. 관악구 관악신사시장엔 사람들로 활기를 띠었다. 문을 닫은 가게는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동작구 성대전통시장에서도 상인들이 평소처럼 손님들을 맞았다. 성대전통시장에서 30년째 과일장사를 해온 이영연(59)씨는 “지하창고에 보관해둔 과일이 물에 휩쓸려 수천만원의 손해를 봤다”면서도 “피해를 본 지하창고 정리는 어느 정도 끝낸 상태”라고 했다.


이희진·장한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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