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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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종빈칼럼] ‘거대한 가속’ 시대의 정치혁명

기술발전으로 삶·환경 급속 변화
유독 정치만 과거 프레임에 갇혀
스마트폰 앱 투표 등 폭넓게 도입
플랫폼 형태 새 정치 시스템 필요

4차 산업혁명의 시대를 맞아 인류의 삶과 환경은 빠른 속도로 변하고 있다. 인공지능(AI), 빅데이터, 사물인터넷(IoT) 기술 등의 발전으로 우리 삶은 놀라울 정도로 편리해졌다. 트렌드 예측 전문가인 뉴욕대 경영대학원의 스콧 갤러웨이 교수에 따르면 ‘거대한 가속의 시대’는 ‘몇십 년 동안 일어날 일이 불과 몇 주 사이에 일어나는’ 엄청난 가속의 발전 상황을 일컫는다. 인류에게 큰 위기였던 코로나19 대유행은 과거 10년 치의 전자상거래 성장을 코로나19 상륙 8주 만에 달성하면서 온라인 플랫폼 정보기술(IT) 기업들의 급속한 성장을 촉진한 중요한 기회가 되었다.

플랫폼 경제의 급속한 발전으로 기업들은 AI와 빅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온라인 상거래에서 소비자 개인의 맞춤형 구매 추천으로 새로운 수익 창출 구조를 만들고 있다. 소비자들은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앱)을 이용해 기존에 경험하지 못한 편리한 방식으로 구매와 배송 서비스를 즐기게 되었다. 그야말로 오프라인 매장의 몰락과 온라인 거래의 폭증이라는 거대한 가속의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윤종빈 명지대 교수·정치학

하지만 안타깝게도 유독 우리의 정치는 거대한 가속의 시대에 발맞춰 나가지 못하고 있다. 기업이 새로운 마케팅 방식으로 소비자에 접근하듯이 정당 또한 새로운 소통 방식으로 유권자에게 다가서야 하지만 아직도 과거의 프레임에 갇혀 있다. 정당의 조직과 운영이 지나치게 소수의 지도부와 계파를 중심으로 이루어져 새로운 시대에 걸맞은 유권자 중심의 수평적 참여는 찾아보기 힘들다.

거대한 가속의 시대에 부응하는 새로운 거버넌스 모델의 핵심 요소는 일반 국민의 자발적인 쉬운 참여가 보장되는 것이다. 특히 주목할 만한 ‘스마트 민주주의’는 스마트폰 앱을 활용한 직접민주주의를 의미하는 것으로 국가적 정책 결정이나 정당의 내부 의사결정 등에서 적극적인 사용이 가능하다. 물론 지금도 당내 후보 선출에 일부 사용되고 있지만 좀 더 폭넓게 도입되어야 할 것이다. 지금은 대중화된 스마트폰 앱을 이용한 금융거래처럼, 보안이 강화된 블록체인 기술 기반의 스마트폰 투표는 참여의 편의성을 높여 대의제의 가장 큰 난제인 시민의 참여를 활성화할 것으로 기대된다.

한편 새로운 기술 발전으로 AI 정치인에 대한 세계적 관심이 커지고 있다. 대의제 민주주의에서 대표자들이 사익만을 추구하고 대표 기능에는 소홀한 것에 대한 실망으로 유권자들은 투명하고 공정한 AI 정치인의 시대를 고대하고 있다. 알려진 바와 같이 뉴질랜드에서는 2017년에 세계 최초의 AI 정치인 ‘샘’(SAM)을 개발했고 미국의 오픈코그재단에서는 2025년 완성을 목표로 ‘로바마’(ROBAMA)를 개발 중이다. 일본은 2018년 도쿄도 다마시 시장 선거에서 당선되면 AI에 주요 정책을 위임하겠다는 대리인이 출마해 놀랍게도 3위 득표를 기록했는데 실제 선거 포스터에는 로봇의 얼굴이 인쇄되었다는 점이 흥미롭다.

이처럼 AI 정치인이 주목을 받는 이유는 사리사욕을 앞세워 부정부패에 연루되는 선출직 대표자에 대한 실망감의 표출이다. 즉, 특정 계파나 조직으로부터 자유롭기에 공정한 예산 집행과 정책 결정이 가능하다고 본 것이다. 이는 우리 정치에 던져주는 중대한 경고로 대의제 민주주의의 위기를 극복하는 극약처방으로 볼 수 있다.

거대한 가속의 시대는 우리에게 새로운 위기와 기회를 던져주고 있다. 스마트폰 민주주의는 기술 발전에 소외되는 계층이 발생하는 양극화의 문제, AI 정치인은 알고리즘의 신뢰성 및 투명성 문제가 존재한다. 더욱 근본적인 도전은 기존의 법체계와 사회질서에서 이득을 보는 기득권의 저항을 막아내는 것이다.

새로운 시대의 정치혁명은 일반 국민의 적극적이고 자발적인 참여가 제도적으로 일상화되는 ‘민주적 혁신’(democratic innovation)에 있다. 거대한 가속의 시대에 도태되지 않는 우리의 정치 시스템을 만들기 위해서는 플랫폼 형태의 정치 공간에 유권자 누구나 언제라도 편리하게 정책 결정에 참여할 수 있는 제도를 구축해야 한다. 참여자들의 수평적인 권한과 책임이 공유되는 공간이다.


윤종빈 명지대 교수·정치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