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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끊긴 인천~제주 뱃길… 언제 다시 열릴까 [김동환의 김기자와 만납시다]

재취항 2년여 만에 멈춘 ‘뱃고동’

2021년 세월호 참사 7년8개월 만에 재개
승객들 여유로운 바닷길 낭만 여행 기대
엔진 이상 등으로 운항 차질 파행의 연속
코로나19 장기화에 경영 악화까지 덮쳐
항로 연 선사, 결국 선박 매각·면허 반납

해수청, 후속사업자 공모 방식도 못 정해
엄격한 안전기준에 나서는 선사도 없어

흩뿌린 비로 아침 기온이 10도에 머무른 지난 16일 오전 10시쯤 인천 중구 인천항 연안여객터미널. 이날 오전 8시30분 예정이던 백령도행 배의 출항 지연에 대합실은 탑승객들로 꽉 찼다. 오전 11시쯤 배가 떠난 이곳에서 2014년 4월15일 세월호도 승객과 승무원 등 총 476명을 태우고 제주도로 출항했다. 세월호 참사로 한동안 끊겼던 제주 항로를 다시 연 유일한 선사가 최근 면허를 반납해 제주행 터미널이 문을 닫았다는 소식에 현장을 확인하러 연안여객터미널을 찾았다.

 

2021년 12월21일 제주로 향하는 하이덱스스토리지㈜의 ‘비욘드 트러스트(Beyond trust·2만7000t급)’호에서 바라본 일출.

◆문 잠긴 제주행 터미널… 선사 철수로 휴업

세월호 참사 후 한때 다시 열렸던 제주로의 뱃길 흔적은 연안여객터미널에서 도보 2분 거리에 있는 제주행 터미널에서만 겨우 찾을 수 있었다. 2000년 준공된 이곳은 애초 인천항 제1국제여객터미널로 쓰였지만, 2020년 6월 새로운 국제여객터미널이 인천 연수구 송도동에 문을 열면서 용도 폐기됐다.

 

참사 7년8개월 만의 ‘인천∼제주’ 뱃길 재개를 앞두고 리모델링을 거쳐 2021년 12월10일 다시 문을 열었는데, 지난 1월25일 제주 항로 선사 하이덱스스토리지㈜의 면허 반납에 따라 아무도 이곳을 찾지 않으면서 지금은 텅 빈 상태다.

 

건물 전체 불은 꺼져 휑했고 ‘관계자 외 출입금지’ 경고문이 붙은 출입문은 굳게 잠겼다. 밖에서 유리창으로 들여다본 대합실 내부는 어두워 제주 항로 광고판도 어렴풋했다. ‘안녕하세요, 어서오십시오’ 문구가 표출 중인 주차장에 들어오는 차도 없었다.

총 33억원을 들여 대합실과 개찰구·이동통로 등을 설치 후 사실상 제주 항로 여객선 전용 터미널로 운영해 왔는데 선사 철수 후 뾰족한 방도 없이 휴업 중이다.

 

세월호 참사 10주기인 지난 16일 인천 중구 인천항 제주행 연안여객터미널이 오가는 이 없이 휑하다.
세월호 참사 10주기인 지난 16일 인천 중구 인천항 제주행 연안여객터미널의 어두운 대합실로 제주 항로 광고판이 보인다.
세월호 참사 10주기인 지난 16일 인천 중구 인천항 제주행 연안여객터미널의 출입문이 굳게 잠겨 있다.

◆유일 선사는 파행 끝에 면허 반납

세월호 참사의 상처를 씻어내고 제주 항로 여객선을 운행한 신규 사업자였던 하이덱스스토리지는 기대와 달리 취항 후 2년간 엔진 이상 등으로 총 여섯 차례 운항 차질을 빚는 등 파행을 겪었다. 2022년 1월 엔진 부품 결함으로 3개월간 휴항했고, 제주로 향하던 중 배 엔진 결함이 확인돼 6개월 넘게 운항이 중단되기도 됐다. 잔고장 반복에 배를 투입하기 어렵다고 판단한 선사는 어쩔 수 없이 매각 계획을 꺼내 들었다.

해상 인명 사고는 없으리라는 마음과 함께 ‘신뢰, 그 이상’의 의미를 담아 안전을 최우선 가치로 내세워 ‘비욘드 트러스트(Beyond trust·2만7000t급)’로 이름이 붙은 배는 지난해 11월 전남 목포의 한 선사로 넘겨졌고, 하이덱스스토리지는 올해 1월 면허를 반납했다.

인천지방해양수산청(해수청)은 “‘인천∼제주’ 항로의 정기 여객운송사업자인 하이덱스스토리지의 폐업 신고가 있었다”며 관련 법에 따른 폐업 신고 수리를 공지했다. 사유는 ‘경영 악화에 따른 선체 매각’이다. 다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장기화로 경영 환경이 나빠진 선사들의 폐업 사례가 이미 있었던 터라 경영 악화가 특정 선사만의 문제는 아니었다.

 

세월호 참사 7년8개월 만에 ‘인천∼제주’ 바닷길이 다시 열린 2021년 12월10일, 인천 중구 인천항 연안여객터미널에 운항 재개를 축하하는 현수막이 걸려 있다.
세월호 참사 후 인천과 제주를 잇는 바닷길이 다시 열린 2021년 12월20일 탑승한 하이덱스스토리지㈜의 ‘비욘드 트러스트(Beyond trust·2만7000t급)’호 승객 편의시설.
2021년 12월21일 제주항에 정박 중인 하이덱스스토리지㈜의 ‘비욘드 트러스트(Beyond trust·2만7000t급)’호 전경.

◆지워질지 모를 추억… 바닷길 다시 열릴까

공식 취항 열흘 후인 2021년 12월20일 제주행 터미널에서 만났던 승객들은 뱃길 여행에 기대감을 드러냈다. 비행기와 달리 여행의 여유를 만끽할 수 있고, 편리함을 뛰어넘는 더 큰 묘미를 준다는 반응이었다.

그래서일까. 바다를 가르며 제주로 향하는 낭만과 새로운 추억을 기대한다며 열두 살 아들과 여행을 떠났던 아빠가 끊긴 바닷길 소식을 접한다면 허탈해할 것도 같았다. 제주 항로 재개가 배편 선택에 영향을 줬다며 지방에서 인천항까지 올라왔던 여행을 좋아하는 노부부도 당분간은 비행기를 타야 할지 모른다.

이처럼 기존에 ‘인천∼제주’ 배편을 이용했던 이용객이나 화주는 전남 목포나 진도 등지까지 이동해 그곳에서 다시 제주행 배편을 이용하는 불편을 겪고 있다.

 

세월호 참사 후 인천과 제주를 잇는 바닷길이 다시 열린 2021년 12월20일 탑승한 하이덱스스토리지㈜의 ‘비욘드 트러스트(Beyond trust·2만7000t급)’호 내부.
세월호 참사 후 인천과 제주를 잇는 바닷길이 다시 열린 2021년 12월20일 탑승한 하이덱스스토리지㈜의 ‘비욘드 트러스트(Beyond trust·2만7000t급)’호 내부.
2021년 12월21일 제주로 향하는 하이덱스스토리지㈜의 ‘비욘드 트러스트(Beyond trust·2만7000t급)’호 갑판에 승객들이 올라와 아침 바다 풍경을 감상하고 있다.

각종 부침 끝에 결국 끊겨 버린 ‘인천∼제주’ 여객선 운항 재개는 난망하다. 해수청은 후속 사업자를 찾는 방안을 검토했지만 공모 일정이나 방식도 정하지 못했다. 세월호 참사로 엄격한 안전기준이 항로에 적용돼 선뜻 운항 의사 밝히는 선사도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항로 사업성을 검토 중인 해수청은 구체적인 안전관리 방안 마련을 위해 외부 전문 기관 연구용역 의뢰도 선택지에 뒀다. 철저한 안전관리 체계 구축 방안도 고민 중이다. 해수청 관계자는 통화에서 “구체적인 내용은 내부 논의를 거쳐야 한다”고 말했다.


김동환 기자 kimcharr@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