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대문 은하곱창
어릴 적 집 근처에는 중학교가 없었다. 초등학교 졸업 후에 동네 친구들과 뿔뿔이 흩어지게 되었는데, 버스 정류장 3개 정도의 거리에 중학교를 중랑천 다리 건너다니던 기억은 지금까지도 기억에 남는다. 눈이 오든 비가 오든 만원 버스를 타고 건널목 긴 신호에 걸릴 때면 혹시 늦지는 않을까 노심초사하며 학교에 갔다. 한 해가 지나 그 거리가 익숙해질 때쯤엔 자전거를 장만하고 친구들과 삼삼오오 모여 ‘등교 크루’를 만들어 아침마다 경주하듯 등교했다. 그때는 학교 앞 자전거 매어 놓는 곳엔 왜 그렇게 자전거 도둑이 많았는지 자전거 안장부터 벨, 타이어 마개까지 하루도 얌전히 지나 본 적이 없었다. 그러다 친구들과 생각해 본 것이 조금 멀리에 자전거를 매어 두는 것이었는데 꽤 효과가 좋았다. 중학교 언덕을 넘어 조금만 더 가면 대학교가 하나 있었는데 그곳이 바로 지금의 시립대학교이다. 이 대학 근처에 자전거를 놓고 온 거리만큼을 뛰어서 학교에 갔다.
학교가 끝나고 다시 자전거를 타고 가는 길은 신나는 일과의 연장이었는데, 그 시절에 PC방이 막 생기기 시작해서 친구들과 대학교 인근까지 PC방을 찾아 놀다 해가 질 때면 근처에 전농로타리 시장에 들러 군것질을 했다. 그 당시에 중학생은 꽤 와일드했던 것 같다. 떡볶이 한 접시에 계란을 두어 개씩 넣고 먹으며 친구들과 서서 왁자지껄하게 놀았는데 자전거만 있으면 어디든 갈 수 있었다.
그런 추억이 서린 전농로타리 시장에 오랜만에 다시 발걸음을 했다. 날씨가 추워지니 회기동에 레스토랑을 했을 적 종종 찾던 곱창집이 생각나서다. 전농동 은하곱창은 40여년 전부터 이 거리를 지켜온 노포다. 창문에 입김이 서릴 때면 은하곱창의 찐득하고 뻘건 전골이 불현듯 떠오른다. 가게에 들어서니 신문지로 도배를 한 오래되고 정감 가는 느낌이 물씬 다가온다. 이른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주당들이 술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보글보글 끓고 있는 냄비를 보고 있자니 침이 꼴깍 넘어갔다. 정신을 차리고 자리에 앉아 주문을 했다. 돼지곱창 하면 으레 깻잎, 양배추 같은 것이 들어간 곱창볶음을 생각하기 마련인데, 은하곱창의 곱창은 충청도식으로 전골냄비에 자작하게 곱창을 낸다. 칼칼하고 자작하게 끓여낸 전골냄비 안에는 큼직하고 쫄깃한 돼지곱창과 당면, 야채들이 듬뿍 들어 있다. 식당의 한 구석에는 쑥갓과 깻잎을 덜어 먹을 수 있는 셀프바가 있다. 야채를 담는 플라스틱 소쿠리는 전골냄비에 녹아 영광의 상처를 안고 있는 듯 세월의 흔적이 가득하다.
◆은하곱창 곱창전골
동치미와 마늘, 들깻가루가 들어간 양념장이 나왔다. 기본 차림으로 소주잔을 주는 걸 보니 이곳에서의 반주는 당연한 것 같아 마음이 들떴다. 자글거리는 전골냄비 속의 큰 곱창들이 뻘건 국물을 마치 유니폼처럼 두른 채 춤을 추는 듯했다. 함께 주는 깻잎과 쑥갓은 곱창전골의 깊은 맛과 더불어 아작거리는 즐거운 식감까지 더해준다. 이 곱창전골의 매력은 무엇보다 셀프바에 마련되어 있는 깻잎과 쑥갓이라고 할 정도로 야채들은 곱창과 잘 어우러져 술술 들어간다.
큼지막한 곱창들을 들춰 보면 양념을 듬뿍 머금은 당면이 나오는데 앞접시에 옮겨 담아 당면 한입, 곱창 한입 먹는 재미가 쏠쏠하다. 전골에 들깻가루를 조금 더 추가하면 그 맛이 또 다채로워진다. 곁들여준 들깨가 들어간 양념장은 짜지 않아 곱창의 은은히 올라오는 향을 잡아준다. 곱창과 당면을 즐기다 보면 어느새 전골냄비가 비어간다. 하지만 서운해할 필요가 없다. 은하곱창의 볶음밥은 문화재감이다. 걸쭉해진 양념의 달큰한 맛이 탄수화물과 만나 위장 속 빈 공간을 마치 모래알처럼 가득 채워 포만감을 준다. 아직 어두워지지 않은 은하곱창의 골목길은 겨울을 준비하고 있었다. 눈이 내리는 날이면 또 방문해야지 마음을 먹어본다.
◆곱창요리
소의 곱창인 소장과는 다르게 돼지의 대장을 곱창이라 부른다. 특유의 누린내가 있기에 깨끗이 세척을 하고 먹어야 한다. 양념 없이 구워 먹으면 그 향이 극대화되기 때문에 깻잎, 쑥갓 같은 향이 센 야채와 매콤한 양념, 들깻가루 등을 섞어 맛과 향을 잡는 요리들이 발전했다. 충청도에서는 전골로 요리를 많이 해 먹는데 냉이와 깻잎을 넣어 향을 잡기에 전골의 맛이 진하고 깊은 맛이 난다.
유럽에서도 내장요리는 역사가 깊다. 소시지의 부속물로 사용되기도 하며 냄비에 커민, 펜넬, 마저럼 등 각종 향신료를 넣고 몽글몽글 끓여 스튜식으로 먹기도 한다. 이탈리아 피렌체에서는 간단하게 허기를 달랠 때 먹는 음식이 바로 소 내장 요리인 트리파(trippa)다. 소 위를 잘게 잘라 토마토소스에 졸여 빵과 빵 사이에 넣어 먹기도 하는데 이 요리를 람프레도토(lampredotto)라고 한다.
■트리파 만들기
<재료>
소곱창 1kg, 깐양 500g, 소스지 500g, 토마토소스 500ml, 물 2L, 간마늘 50g, 토마토 페이스트 50g, 다진 양파 100g, 다진 당근 50g, 소금 1티스푼, 후추 약간, 로즈메리 10g, 버터 100g, 화이트와인 150ml.
<조리법>
①소곱창과 깐양 스지는 끓는 물에 데쳐 준다.②냄비에 버터를 두르고 양파, 마늘, 당근을 볶아준다. ③토마토 페이스트를 더해준 후 화이트와인을 넣어 졸여준다.④물을 넣고 1번 재료들과 함께 1시간가량 삶아준다. ⑤로즈메리, 소금, 후추, 토마토소스를 넣고 30분 더 끓여 마무리해 준다.
김동기 다이닝 주연 오너 셰프 Paychey@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