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초꽃향 나는 흐엉강따라 베트남 마지막 왕조 응우옌 역사 가득/아오자이 입고 인증샷 찍는 응오문 지나면 ‘타임슬립’/연못이 아름다운 뜨득 황제릉 등 유적 가득/도심속 자연 즐기는 필그리미지 리조트선 스파 즐기며 편안한 휴식/리조트 식당에선 ‘찐’ 베트남 중부 전통음식 즐겨/CNN ‘세계에서 가장 맛있는 만두 35선’ 선정 반봇록 꼭 먹어봐야
칠이 벗겨진 처마. 빛바랜 나무 기둥. 무너져 내린 성벽. 그리고 오랜 세월 비바람에 깎이고 깎여 표정마저 흐릿해진 석상까지. 흐르는 세월 어찌 막을까. 사람도 권력도 잠시 왔다 떠나가는 것일 뿐. 이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다. 베트남 마지막 왕조 응우옌(Nguyen)의 수도 후에(Hue). 여기 저기 난초 꽃잎 떨어져 향기 피어나는 흐엉강가에 서서 한때는 넘치도록 화려했을 왕조의 시간들을 떠올린다.
◆흐엉강에서 옛 왕조를 추억하다
베트남 중부 투어티엔후에(Thua Thien Hue)성 후에시를 관통하는 흐엉강은 한자로 ‘향강(香江)’이라 쓴다. 말 그대로 향이 나는 강이란 뜻이다. 가을이 되면 흐엉강은 난초 꽃이 떨어져 흐르면서 향이 나기에 이런 이름을 얻었다니 참 낭만적이다. 후에시를 굽이굽이 흐르는 흐엉강은 동남아시아 최대 석호 땀장라군을 거쳐 베트남 동쪽 바다로 빠져 나간다. 이런 흐엉강을 끼고 있는 후에 랜드마크가 200년 넘은 세월을 한자리에 지키고 있는 후에성이다.
흐엉강을 가로지르는 응오문(Ngọ Môn) 앞 돌다리에는 베트남 전통의상 아오자이를 곱게 차려입은 베트남 여자가 자신의 예쁜 모습을 담느라 바쁘다. 고풍스러운 풍경 덕분에 전통 의상으로 한껏 멋을 낸 현지인들이 전문 포토그래퍼까지 동원해 프로필 사진을 찍는 곳으로 인기가 높은 곳이다. 응오문 위에는 한자로 ‘오문(午門)’이라 적혀 있는데 남문이란 뜻이지만 정오가 되면 태양이 문 위로 떠오른 뜻도 담겼다.
응오문을 지나면 한때 찬란했던 베트남 최초 통일 왕국, 응우옌 왕조의 시간속으로 점프한다. 가장 먼저 만나는 건물은 디엔타이호아(Điện Thái Hòa), 태화전(太和殿)으로 건물 지붕과 외벽이 온통 주황색으로 칠해져 강렬한 인상을 풍긴다. 응우옌 왕 13명의 즉위식이 열리던 곳으로 3년동안의 복원 공사를 마치고 지난달부터 다시 여행자를 맞고 있다. 왕은 이곳에서 관료를 접견하고 국사를 논의했다. 태화전안에는 웅장한 용상이 놓여 져 한때 인도차이나 반도를 호령했던 응우옌 왕조의 옛 영화를 추억하게 만든다.
1802~1945년 존속한 응우옌 왕조는 남진 정책을 펼쳐 한때 베트남 국경을 캄보디아, 라오스까지 확장했을 정도로 동남아시아에서 가장 강력한 국가였다. 하지만 프랑스와 스페인의 코친차이나 원정(1858~1862년)에서 패한 뒤 1862년 ‘사이공 조약’으로 프랑스가 직접 프랑스령 코친차이나를 세우고 통치하기 시작했다. 이어 여러 조약을 통해 응우옌 왕조는 베트남의 항구를 뺏기고 외교권도 강탈당했다. 결국 1883년 ‘후에 조약’으로 프랑스가 베트남을 완전히 지배하면서 응우옌은 껍데기뿐인 왕조로 전락하고 말았다. 또 공산 혁명으로 호치민이 베트남민주공화국을 세우면서 143년에 걸친 응우옌 왕조의 역사는 막을 내린다.
1993년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선정됐을 정도로 원형을 잘 유지하고 있는 후에성은 성벽이 10㎞에 달할 정도로 워낙 방대한 요새여서 걸어 다니면서 관람하려면 반나절도 모자란다. 하지만 ‘버기’로 불리는 전동카트를 이용하면 주요 스팟을 편하게 관람할 수 있다. 태화전 서쪽에는 또미에유(Thế Tổ miếu) 사원이 자리 잡고 있다. 후에성에서 가장 높은 17m 높이 3층 건물 히엔람깍(Hien Lam Cac)을 통과하면 또 미유 사원 마당으로 들어선다. 역대 왕들의 위패를 모신 추모 공간으로 거대한 솥단지처럼 생긴 화로마다 하나의 왕조들 뜻한다. 바로 옆 따이안몬(Tây An Môn)을 통과하면 아담한 연못과 아기자기한 암석들로 꾸민 아름다운 정원이 등장하는데 태후들의 숙소다.
후에성의 하이라이트는 가장 북쪽 건물인 끼엔쭝궁(Kien Trung Palace). 왕의 숙소였던 이 건물은 프랑스와 베트남 건축양식이 절묘하게 어우러진 걸작으로 화려한 빨강, 노랑 등 각양각색 유리공예 장식이 건물 전체를 뒤덮고 있어 보는 순간 감탄이 쏟아진다. 여러 차례 전쟁으로 완전히 파괴됐던 건물을 최근에 복원했고 내부는 현재 박물관으로 꾸며져 있다. 응우옌 왕가 사람들이 입던 화려한 왕실 복장, 식기 등 다양한 유물이 전시돼 왕가의 문화와 생활을 엿볼 수 있다. 계단에서 포즈를 잡으면 화려한 끼엔쭝궁을 배경으로 멋진 인생샷을 얻을 수 있다. 끼엔쭝궁 앞의 드넓은 잔디 정원은 밤이면 멋진 칵테일파티 공간으로 변한다. 후에시에서 인기 높은 필그리미지 리조트가 투숙객 등을 대상으로 마련하는 파티로, 화려한 조명이 끼엔쭝궁을 더욱 환상적으로 색칠하는 풍경을 배경으로 샴페인과 맥주 등을 즐기며 잊지 못할 추억을 쌓을 수 있다.
◆연못이 아름다운 뜨득 황제릉
후에성을 주변으로 다양한 왕릉이 펼쳐진다. 유럽 건축의 영향을 받은 카이딘 황제릉은 건축기간이 11년이나 걸린 건물로 웅장하면서도 화려한 외관이 눈길을 끈다. 내부는 금박 동상과 모자이크 장식으로 아름답게 꾸며져 있고 왕릉 주변에는 실물 크기의 호위무사, 말, 코끼리 등의 조각상이 조성돼 있다. 민망 황제릉은 베트남에서 가장 큰 규모의 흙무덤으로 약 1.8km에 달하는 벽으로 둘러싸여 있다. 왕릉 양옆에 대규모 인공 호수와 소나무로 덮인 언덕이 조성됐고 황제의 공덕을 기린 비석과 함께 다양한 문무석, 동물 석상들이 황제릉을 지킨다.
남쪽 뜨득 황제릉은 아름다운 연못 덕분에 후에 여행자들이 황제릉중 1순위로 꼽는 곳이다. 매표소를 지나자 시원하게 펼쳐진 연못과 물 위에서 설치된 주황색 지붕의 정자들이 데칼코마니를 이루며 물에 반사된 모습이 한폭의 수채화를 보는 듯하다. 이곳에서도 남친은 아오자이를 입은 여친의 모습을 렌즈에 담느라 구슬땀을 흘린다.
후에성 응오문에서 흐엉강을 따라 동쪽으로 20분정도 걸으면 후에시의 대표적인 전통시장 동바마켓이 등장한다. 우리나라 남대문시장 같은 곳으로 생선, 생닭, 젓갈, 채소, 말린 과일 등 먹거리가 한가득 펼쳐진다. 특히 후에를 대표하는 소고기 편육 쌀국수인 분 보 후에(Bun BOo Hue)와 라이스 페이퍼에 야채와 고기를 넣어 피쉬 소스 등에 찍어 먹은 베트남 대표 먹거리 월남쌈, 양념한 돼지고기·녹두·찹쌀을 바나나잎으로 네모나게 싼 반쯩(Bánh chưng) 등 다양한 길거리 음식을 즐길 수 있다. 동바 마켓의 데뽀카페(De Fo Cafe)는 젊은층에게 인기있는 커피맛집. 부드러운 계란 크림과 구수한 커피향이 환상적으로 어우러지는 크림브륄레 커피와, ‘단짠’을 제대로 구현한 후에 솔티드 커피, 코코넛 커피를 꼭 먹어봐야 한다. 해바라기씨 한 봉지를 꼭 곁들이도록. 이로 “탁” 깨물면 고소한 씨앗이 “톡” 터져 나오면서 커피 맛을 더욱 돋운다.
◆도심속 자연 즐기는 필그리미지 리조트
후에 공항에서 차로 10분 거리인 필그리미지 빌리지 리조트 앤 스파에선 편안한 휴식을 즐기며 베트남 중부 음식을 제대로 맛볼 수 있다. 더구나 후에성 등 주요 여행지와 차로 불과 10여분 거리여서 후에 여행에는 최적화된 리조트로 인기를 끌고 있다. 리조트 웰컴센터를 지나자 커다란 야자수와 어우러지는 아늑한 빌라가 등장한다. 리조트가 한적한 마을에 있는데다 거대한 숲속에 파묻혀 있고 작은 개울도 흘러 자연속에 푹 파묻혀 있는 느낌이다.
객실로 들어서자 마치 후에성의 황궁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인테리어와 박물관 같은 조각작품에 눈이 휘둥그레진다. 실제 베트남 중부의 오래된 가옥을 해체한 뒤 옮겨 객실을 꾸몄다. 테라스로 나서면 야외 주방과 식탁 옆으로 커다란 단독 풀이 펼쳐지며 나무 등으로 꼼꼼하게 담장을 쳐 프라이빗하게 온전한 쉼을 누릴 수 있다. 필그리미지 리조트는 2인부터 4인 가족이 묵을 수 있는 다양한 크기의 객실 173개를 보유하고 있고 레스토랑 2개, 카페&바 3개, 대형 온수풀 1개를 갖춰 리조트내에서 빈둥거리는 자유를 만끽하기 좋다. 특히 스파 프로그램이 인기가 높다. 60분과 90분짜리 마사지를 이용하면 여행의 피로는 순식간에 사라진다. 가성비도 뛰어나다. 비수기에 35㎡ 크기 객실은 조식 포함 12만원에 불과하고 대형 온수풀과 바로 연결되는 63㎡ 크기 객실도 20만원이면 충분하다.
무엇보다 레스토랑 슬로프, 준레이에서 고품질의 베트남 중부 음식을 착한 가격에 즐길 수 있다는 점이 매력이다. 새우를 좋아한다면 황실에서 즐기던 전통음식인 반봇록(Banh Bot Loc)을 꼭 먹어봐야 한다. CNN이 얼마전 ‘세계에서 가장 맛있는 만두 35선’에 이름을 올렸을 정도다. 반봇록은 타피오카 전분으로 만든 투명하고 쫄깃한 얇은 만두피에 통새우나 삼겹살로 속을 채운 뒤 바나나잎으로 덮어서 찐 만두로, 촉촉하면서 부드럽고 고소해 자꾸 손이 가게 만드는 중독성이 강하다.
작은 종지에 담겨 나오는 반베오(Banh Beo)는 후에와 다낭에서 쉽게 볼 수 있는 한숟가락 음식으로 주로 에피타이저로 많이 나온다. 굽거나 찐 흐물흐물한 쌀떡 위에 다진 새우나 돼지고기, 야채를 토핑하는데 느억맘 소스를 곁들여 먹으면 입맛을 돋운다. 넴루이(Nem Lui)는 돼지고기를 양념에 버무린 뒤 그릴에 구운 베트남식 소시지. 완자 형태여서 부드럽고 고소한 맛이 일품이다. 꽂이를 뺀 뒤 소스에 찍어 라이스 페이퍼에 야채와 함께 싸먹으면 한 끼 식사로도 든든하다. 직사각형 모양의 반남(Banh Nam)은 다진 새우와 돼지고기를 촉촉한 밀가루 전병 위에 얹고 바나나 잎으로 덮어 찐 음식으로 입에서 눈 녹듯 사라진다. 반코아이(Banh Khoai) 베트남식 빈대떡. 쌀가루 반죽을 바삭하게 튀기고 그 안에 숙주나물 등 각종 채소, 새우, 계란을 넣어 만든다. 입에서 “바사삭”하며 부서지는 식감과 고소한 맛을 함께 즐길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