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안건이 안 올라왔어요! 잠깐 좀 계세요. 국회의장도 마음은 급하지요. 그렇지만 절차를 틀리지는 않게 해야 될 것 아닙니까? 이런 사태는 절차가 잘못되면 그것도 문제입니다.”(12월 4일 새벽, ‘계엄군이 국회 내부에 진입했으니 빨리 비상계엄 해제 요구 안건을 상정하라’는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의 격앙된 감정을 진정시키며)
“국회 의결에 따라 대통령은 즉시 비상계엄을 해제해야 합니다. 이제 비상계엄 선포는 무효입니다.
국민 여러분께서는 안심하시기 바랍니다. 국회는 국민과 함께 민주주의를 지키겠습니다. 국회 경내에 들어와 있는 군경은 당장 국회 바깥으로 나가주시기 바랍니다.”(12월 4일 새벽, 국회 본회의에서 비상계엄해제요구 결의안 가결 직후)
“오늘 우리 국회는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가결했습니다.…비상계엄이 선포된 그 순간부터 오늘 이 시간까지 국민 여러분께서 보여준 민주주의에 대한 간절함, 용기와 헌신이 이 결정을 이끌었습니다.…민주주의는 국민의 삶으로 증명됩니다. 이제 함께 한 걸음 더 다음 단계로 나아갑시다. 국민의 생업과 일상이 빠르게 안정되고 경제, 외교, 국방 등 모든 면에서 대내외적 불안과 우려가 커지지 않도록 국회와 정부가 합심하고 협력하겠습니다. 정부 공직자들은 한 치의 흔들림 없이 맡은 소임을 다해 주십시오.…국민 여러분의 연말이 조금 더 행복하기를 바랍니다. 취소했던 송년회, 재개하시기를 당부드립니다. 자영업·소상공인·골목경제가 너무 어렵습니다. 대한민국의 미래는, 우리의 희망은 국민 속에 있습니다. 희망은 힘이 셉니다.”(12월 14일, 윤석열 대통령 2차 탄핵소추안 가결 직후)
◆비상계엄 해제 및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 과정 지도력 빛나
지난 3일 밤, 대한민국은 물론 전 세계를 경악하게 한 비상계엄이 선포된 후 국회가 계엄을 해제하고 윤석열 대통령의 직무를 정지시킬 때까지 우원식(67) 국회의장의 침착한 대응과 지도력이 빛난 순간이다. 계엄 선포로 국회 출입이 가로막히자 담을 넘어 국회에 들어간 우 의장은 “국회의원이 있는 모든 곳이 국회다. 곧장 본회의를 열겠다”면서 여야 의원들을 본회의장으로 불러 모았다. 이어 침착하게 절차적 정당성을 지키며 계엄 해제와 윤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 의결을 이끌어냈다. 이 과정에서 집무실에서 먹고 자며 민의의 전당인 국회를 지키는 우 의장의 모습은 국내외에 깊은 인상을 남겼다.
일각에선 우 의장이 22대 국회 전반기 국회의장 민주당 경선에서 친명(친이재명)계가 압도적으로 지지한 추미애 의원을 꺾는 이변을 일으킨 게 “결과적으로 다행”이란 반응까지 나온다. 강성 친명계로 ‘개딸(개혁의 딸)’ 등 민주당 극렬 지지층이 선호하는 추 의원보다 친명 계파색이 엷지만 균형감 있고 안정적인 우 의장의 지도력이 계엄 사태 및 탄핵 정국 상황에서 국민에게 신뢰감을 더 준다는 점에서다.
그야말로 ‘우원식의 재발견’이다. 5선 의원임에도 당내 비주류인 데다 지나치게 당파적 목소리를 내지 않는 성향으로 그동안 정치적 중량감과 대중 인지도가 낮았던 그를 국민들이 주목하기 시작한 것이다.
◆국민 신뢰도, 조사 대상 정치인 중 우원식 의장이 최고
실제 한국갤럽이 지난 10~12일 전국 만 18세 이상 1002명을 상대로 실시한 조사 결과(표본오차는 95% 신뢰 수준에 ±3.1%포인트, 응답률 15.8%. 세부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참고), 우 의장을 ‘신뢰한다’는 응답은 56%였다. ‘우 의장을 신뢰하지 않는다’는 답변은 26%에 그쳤다. 조사 대상 정치인 중 우 의장만 ‘신뢰’ 응답이 ‘불신’보다 많았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신뢰 41%, 불신 51%),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겸 국무총리(신뢰 21%, 불신 68%), 한동훈 국민의힘 전 대표(신뢰 15%, 불신 77%) 신뢰도와는 대조적이다.
우 의장이 국회 본회의에서 비상계엄 해제요구안과 윤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의결할 때 맨 연두색 넥타이에 담긴 사연도 화제가 됐다. 이 넥타이는 고(故) 김근태 전 민주통합당(민주당 전신) 상임고문의 유품이다. 민주화 운동의 상징적 인물인 김 전 고문은 우 의장의 ‘정치적 스승’이다. 우 의장은 지난 4일 계엄이 해제된 뒤 페이스북에 “오랜만에 김근태 형님의 유품인 연두색 넥타이를 맸다. 이 넥타이는 제가 큰 결정을 해야 할 때 꼭 매던 것이다. 넥타이를 맬 때마다 속으로 ‘김근태 형님 꼭 도와주세요, 용기를 주세요’라고 부탁과 다짐을 하곤 했다”고 소개했다.
또 14일 탄핵소추안 의결 직후 그가 국민들에게 “취소된 송년회를 다시 잡으시라” 하고, 12·3 계엄 사태로 고생한 국회 직원과 보좌진 등을 위해 커피를 선물(500만원어치 선결제)한 것도 따뜻한 면모를 부각시키며 많은 박수를 받았다.
◆우원식은 누구…독립운동가 김한 선생의 외손자
1957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연세대 토목공학과 재학 중 1978년 박정희 전 대통령 퇴진운동을 벌이다 강제징집됐다. 복학 후 1981년, 광주민주항쟁 1주년 기념 시위에 앞장서고 전두환 전 대통령 퇴진 운동을 하다 투옥됐다. 1심에서 징역 1년을 받았지만 최후진술에서 ‘광주에서 무고한 국민을 살상한 전두환 정권과 끝까지 싸우겠다’고 해 2심에서 징역 3년을 선고받았다. 강제징집과 복역, 제적 끝에 21년 만에 대학을 졸업했다.
국회의원 보좌관과 당직자, 서울시의원 등을 거쳐 2004년 17대 총선(서울 노원을)에서 열린우리당 후보로 출마해 처음 금배지를 달았다. 18대 총선에서 낙선했으나 19대부터 22대까지 내리 당선돼 5선 고지를 밟았다. 열린우리당 시절 원내부대표와 사무부총장을, 민주통합당 시절 원내수석부대표를 맡았다. 민주당에서 문재인정부 첫 해 원내대표를 지냈다. 2021년 민주당 대선 경선에서 중진 의원 중 처음으로 이재명 후보를 공개 지지했고, 이듬해 대선에서 민주당 선거대책위원회 공동위원장을 맡았다. 당내 ‘을지로위원회’(‘을’ 지키기 민생실천위원회의)를 오랫동안 이끌었고, 후쿠시마원전오염수 해양투기저지 총괄대책위원회 상임위원장, 국회 가습기살균제 사고 진상규명과 피해구제, 재발 방지 대책 마련을 위한 특별위원회 위원장 등을 맡으며 ‘말’이 앞서기보다 ‘민생 현장’부터 챙기는 행보로 ‘뚜벅이’란 별명도 얻었다.
독립운동가 김한(1888∼1938) 선생은 우 의장이 자랑스러워하는 외할아버지다. 김한은 1912년 만주로 망명한 뒤 1920년 대한민국임시정부 사법부 비서국장을 맡았다. 의열단에 가입해서 조선총독 암살을 계획하다 1923년 1월 김상옥의 종로경찰서 폭탄 투척 사건으로 검거돼 5년간 옥살이를 했다. 1930년 2월 소련으로 건너가 활동하던 중 스탈린의 숙청을 피하지 못하고 1938년 생을 마감했다. 2005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됐다.
독립운동가 후손으로 처음 국회의장에 당선된 후 우 의장은 “저는 나라를 구하고자 했던 독립운동가의 결기를 가슴속에 품고 민주주의를 수호하고자 했던 민주운동가의 정신으로 뚜벅뚜벅 민생현장으로 걸어갔다”며 “그때의 초심 그대로 22대 국회에서 오직 국민만 바라보고 나라를 나라답게 하는 개혁·민생 국회를 만들어내겠다”라고 다짐한 바 있다.
우 의장은 19일 서울 여의도 국회 사랑재에서 한 외신 기자회견에서 대권 도전 가능성을 묻는 질문이 나오자 “아직 생각해 본 적이 없다”고 밝혔다. 이어 “국회의장을 하고 싶어서 치열한 선거를 치러서 국회의장이 됐다. 임기가 2026년 5월 30일까지”라며 “민주주의의 최후 보루로서의 국회를 보다 제대로 만드는 것이 국회의장의 책임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개헌 필요성도 언급했다. 그는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일은 헌법이 부족해서 벌어진 일은 아니다”면서 “대통령의 권한을 자의적으로 해석하고 헌법과 법률의 요건과 절차를 따지지 않은 오판”이라고 진단했다. 아울러 “그러나 또 한편으로 개헌의 필요성은 분명하게 있다”며 “1987년 개헌 이후 40년 가까운 시기 (겪은) 큰 변화를 헌법에 담아내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꼬집었다.
우 의장은 “권력구조적으로 보면 대통령에게 집중되어 있는 권력 때문에 여러 가지 오판이 생길 수 있는 것을 이번에 반드시 바로 잡아야 된다”며 “대통령의 권력을 분산시켜서 국회의 권한을 강화시키는 일은 꼭 필요하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