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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균 “편 가르기 나쁜 정치 발호… 정치인 부리려는 팬덤 낳아” [세계초대석]

기사입력 2025-02-12 06:00:00
기사수정 2025-02-12 20:5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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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노선으로 경쟁 정당정치 실종
다수 국민 외면, 소수 지지세력 의존

尹, 정치 대신 전쟁 선택… 국정 실패
대화·타협 없는 통합 외침은 사이비

친윤, 옳고 그름보다 尹 지키기 집중
與 의원들 장기판의 졸로 전락한 듯

거야는 탄핵 남발로 권위 상실 초래
李, 비명의 비판 포용 때 진정한 원팀

개헌 못해 국가의 미래 해쳐선 안돼
잠룡들에 확약… 정치협상위 띄워야

“윤석열 대통령이 정치를 했다면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만나자고 하기 전에 먼저 만나자고 해서 국정을 제대로 이끌었을 것입니다. 윤 대통령은 정치 대신 전쟁을 했어요.”

 

정세균 전 국무총리는 윤 대통령이 실패한 원인을 정치를 등한시한 태도에서 찾았다. 입법부 수장인 국회의장을 거쳐 총리를 지내며 정무·행정감각을 갈고 닦은 정 전 총리는 자신이 국정운영을 한다면 “정치를 잘할 것”이라며 “여야가 윈윈하는 정치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세균 전 국무총리가 지난 3일 서울 용산구 세계일보 사옥에서 진행한 인터뷰에서 1987년 체제 극복을 위한 개헌 시점,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비명(비이재명)계 포용 필요성 등 당 안팎 정치 현안에 대한 견해를 밝히고 있다. 이재문 기자

이 대표 일극체제를 겨냥한 비명(비이재명)계 잠룡들의 비판엔 “다양성이 존중돼야 한다”고 힘을 보탰다. 특히 22대 총선 때 ‘비명횡사’(비명계 공천 불이익) 공천으로 당에서 멀어진 이들을 위한 이 대표의 포용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하며 “그것을 쓸데없는 자존심 때문에 못하는 것은 소인배의 짓이라고 봐야 한다”고 했다.

 

정 전 총리는 이외에도 비상시국에서 대통령 권한대행이 해야 할 일, 팬덤 정치의 폐해와 정당 정치의 복원 방안, 경제 활력 회복을 위한 정부의 역할 등에 대한 견해를 거침없이 쏟아냈다. 인터뷰는 지난 3일 서울 용산구 세계일보 사옥에서 진행됐다.

 

―탄핵 정국 속 진영갈등이 극에 달하고 있다.

 

“대통령의 위헌적인 계엄령은 진영 논리보다 훨씬 심각한 국가적 문제다. 좌우 이념과 관계없이 바로잡아야 한다. 하지만 이런 사안에도 진영 논리가 개입되는 것은 매우 심각한 문제다. 우리나라에도 극우 세력이 등장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이러한 흐름은 정당 정치의 실패에서 비롯됐다고 본다. 정당 정치는 이념과 정책, 노선으로 경쟁하고 대화와 타협을 통해 합의안을 도출해야 한다. 하지만 지금은 다음 대선만을 생각하며 상대 정당을 악마화하고 지지 세력을 동원해 진영 대결을 부추기는 나쁜 정치가 발호하고 있다.”

 

―‘나쁜 정치’는 어떻게 바로잡아야 하나.

 

“팬덤정치의 폐해가 너무 크다. 그것을 바로잡아야 한다. 김대중(DJ)·노무현 전 대통령 시절에도 팬덤이 있었다. 지지하는 정치인이 잘하도록 응원하고 돕는 형태였다. 그런데 지금은 정치인을 ‘부리려고’ 하는 팬덤이다. 정치인들은 그런 팬덤의 눈치를 본다. 다수 국민은 뒷전에 두고 소수 팬덤에 적극적으로 의존한다. 거기서 벗어나면 공격을 받는다. 결국 정당의 책임이 가장 크다. 정당이 정책과 노선으로 경쟁하고 대화와 타협이 살아나는 정치를 복원해야 한다.”

―‘통합’을 외치는 정치권의 발언도 공허하다.

 

“말로만 통합하고 자신들의 지지 그룹을 동원하는 데 혈안이 돼 있는 정치권의 잘못이 횡행하고 있다. 그것이 보편화됐다고 봐야 한다. ‘나를 따르라’가 통합이 아니다. 대화와 타협을 하지 않으면서 통합을 이야기하는 것은 사이비다. 대화와 타협을 실천하는 리더가 진정한 국민통합의 리더다. 우리는 그런 리더를 갈망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12·3 비상계엄 때 야당은 국회로, 여당 대다수는 당사로 모였다.

 

“여당 의원들이 장기판의 졸로 전락한 듯한 느낌이다. 여당 대표의 말이 친윤(친윤석열)계에게 먹혀들지 않았다. 친윤계는 대통령과 자신들을 일체화하며 사안의 옳고 그름보다 대통령을 지키는 데 집중했다. 국가와 국민의 미래를 고민한 것이 아니라 기계적 관성에 따라 움직인 것이다. 친윤계의 이러한 행보가 계속되는 한 ‘아직도 내란이 진행 중’이라는 말이 나오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한덕수 국무총리 탄핵소추를 어떻게 보나.

 

“한 총리가 무리수를 뒀다고 본다. 대다수 헌법학자가 한 총리의 헌법재판관 임명은 가능하다고 보는 쪽이 우세했다. 재판관 임명을 하지 않으면 헌법재판소가 완전체로 갈 수 없는 것 아닌가. 헌재가 작동하지 않으면 대통령 탄핵심판은 어떻게 하는가. 재판관 임명은 불가피한 선택이 아니라 당연하다.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이 3명 중 2명은 임명했다. 국회 몫이기 때문에 사실 3명 다 임명해야 했다.

―헌재가 마은혁 재판관 임명보류를 위헌으로 판단하면 최 권한대행도 탄핵해야 하나.

 

“최 권한대행은 공직자 출신이다. 헌재에서 결정하면 따라야지 거부하면 안 된다. 한편으로 민주당이 그간 탄핵을 너무 남발했다. 탄핵은 대통령이나 한 총리 같은 경우에 하는 것인데 판사, 검사들도 탄핵하면서 희화화하고 권위를 상실한 측면이 있다.”

 

―지금 권한대행이 집중해야 할 일은.

 

“자신을 국민의힘 출신 대통령의 대행이 아닌 정파를 초월한 비상시국의 대행으로 생각해야 한다. 의회와의 협치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여야가 주요 입법안에 대한 합의를 도출하도록 해야 한다. 반도체특별법이나 전력망특별법, 고준위 방폐장법 등 중요 입법이 이뤄지도록 국회의 협력을 받고 지원을 얻는 일이 제일 시급하다.”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으로 경제·외교·안보 모두 비상이다.

 

“우리는 10대 선진국 반열에 오른 나라다. 한·미동맹을 굳건히 하는 가운데 미국과 터프하게 경쟁도 해야 한다. 결국 기술력과 경제적 능력을 확보해야 한다. 대한민국의 도움이 필요한 분야를 찾아내 미국에 보여줘야 한다. 조 바이든 전 미국 대통령이 방한해 삼성전자에 먼저 갔다. 시사하는 바가 크다. 우리가 미국에 필요하도록 만드는 것이 실질적으로 국익을 지키는 실용외교다.”

 

―경제 상황이 무척 어렵다.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때 DJ가 어떻게 대처했는지 복기할 필요가 있다. DJ가 IT(정보기술)를 알았겠나. 그런데도 IT를 받아들였다. 벤처기업을 밀어줬다. 지금이야말로 그렇게 할 때다. 딥시크(Deepseek)가 한국에서 나왔어야 했다. 한국 벤처기업들이 새로운 아이디어들을 많이 냈다. 그걸 제대로 뒷받침해주지 못해 빼앗겼다. 지금이야말로 대기업에 자율권을 주고 스타트업들이 활발히 활동할 수 있도록 길을 터줘야 한다. 과거에 비해 대기업들의 역량이 굉장히 커졌다. 그러나 국회는 여전히 입법활동을 제대로 하지 않고 정부는 규제를 남발하고 있다. 대기업들의 족쇄를 풀어줘야 한다. 주 52시간 근로규제 유연화도 필요하다는 것 아닌가. 그런 것을 해줘야 한다.”

―탄핵 정국에서 개헌론이 분출하고 있다.

 

“개헌은 빠를수록 좋다. 지금도 너무 늦었다. 1987년에 하고 38년 차다. 정상국가 중에서 개헌의 필요성을 알면서도 합의가 이뤄지지 않아 못한 건 우리가 유일할 것이다. 다만 조기 대선 전에 개헌하는 것은 물리적으로 어려울 것이다. 대선 과정에서 후보들에게 구체적인 약속을 받아내야 한다. 내년 지방선거 때 개헌 국민투표를 동시에 실시하기 위한 정치협상위원회가 만들어져야 한다. 개헌 준비는 국회에서 여러 번 특위를 거치며 이미 다 돼 있다. 제가 국회의장을 할 때도 대규모 특위로 1년 동안 준비를 했다.”

 

―개헌의 키를 쥔 이재명 대표에게 제언한다면.

 

“옛날부터 국회의원들은 대부분 개헌에 찬성했다. 그러나 유력 대선 후보들 때문에 개헌이 안 되는 것이다. 후보일 때는 약속해 놓고 당선되고 나면 미룬다. 임기 말이 되면 다음 후보가 나온다. 그래서 임기 초에 개헌해야 한다. 모든 잠재 후보에게 확실한 약속을 받고 당장에라도 정치협상위원회를 띄워야 한다. 식언을 못하게 해야 한다. 개헌을 못해 국가의 미래 경쟁력을 좀먹는 상황을 방치해선 안 된다.”

 

―비명계의 이 대표 비판이 거세다.

 

“원래 정당은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서 이뤄진 결사체다. 다양성이 존중돼야 강력한 원팀이 된다. 그러지 않으면 정착이 안 된다. 과거에도 주류와 비주류가 공존했다. 비주류가 없는 것은 비정상이다. 제가 당대표 때는 마음대로 말하고 수염도 잡아당기게 했다. 뭘 하든 존중했다. 그게 정당이다. 이견이 표출되지 않으면 건강한 정당이 아니다. 오히려 위험하다고 봐야 한다.”

 

―대통령이 된다면 국정운영을 어떻게 하고 싶은가.

 

“대통령은 정치의 정점에 있는 자리다. 저라면 정치를 잘할 자신이 있다. 대화와 타협을 통해 합의를 이끌어내고, 야당과도 협력하며 국민 모두가 윈윈할 수 있는 정치를 하겠다. 대화와 타협이 살아 있는 정치로 국민을 편안하게 만들고 국정을 안정적으로 운영할 것이다. 공자 같은 소리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그것이 진정한 정치라고 믿는다.”

 

정세균 전 국무총리는……

 

●1950년 전북 진안 출생 ●전주신흥고, 고려대 법학 학사 졸업 ●미 페퍼다인대 경영학 석사, 경희대 경영학 박사, 전북대 정치학 명예박사, 부산대 공공정책학 명예박사 ●쌍용그룹 상무이사 ●15·16·17·18·19·20대 국회의원 ●열린우리당 원내대표 ●열린우리당 의장 ●민주당 대표 ●산업자원부 장관 ●20대 국회 전반기 국회의장 ●46대 국무총리 ●現 사람사는세상 노무현재단 이사장


대담=이천종 정치부장, 정리=배민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