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과 이란이 지난달 24일(현지시간) 휴전에 돌입하며 고조됐던 중동발 전운이 진정 국면에 접어들었다. 이스라엘의 선제타격과 미국의 참전으로 12일 동안 이어진 전쟁은 외견상 ‘힘을 통한 평화’가 성취된 것처럼 보인다. 전문가들 사이에선 “이번 휴전은 잠시 총성이 멈춘 것일 뿐”이라는 반응이 우세하다. “이란 핵 프로그램을 수십 년 후퇴시켰다”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주장과는 달리, 이란 핵 능력이 제대로 파괴되지 않았다는 분석이 이어진 탓이다. 국책연구기관인 통일연구원 조한범 석좌연구위원은 “이번 사태로 이란은 핵무기 개발에 더욱 강한 의지를 가질 것이며, 향후 중동 정세 역시 섣불리 예측하기 어려운 상황으로 전개될 수 있다”고 내다봤다. 북한이 이번 전쟁을 어떻게 봤을지에 대해 그는 “미국이 첨단 군사력을 동원, 핵 시설 파괴에 나서는 걸 목격해 북한도 어느 정도는 미국과 협상은 해야 되겠다는 판단을 했을 수 있다”면서 “이번 전쟁이 북한의 비핵화에는 별다른 영향을 주지 못하겠지만 북·미 대화에는 긍정적일 수 있다. 트럼프는 지금 적극적”이라고 진단했다. 조 연구위원은 1994년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대학에서 사회주의체제 전환을 주제로 박사 학위를 취득한 남다른 이력의 소유자다. 통일과 북한 문제에 오랫동안 천착했다. 또 북한과 한반도 주변 정세를 소개하는 ‘대동강 TV’를 운영 중인 유튜버다. 그의 방송은 꾸밈없다. 외교·안보 전문 분야를 다루면서도 아주 쉽게 설명하는 재주를 지녔다. 위트와 유머는 기본이다. 보다 보면 시간 가는 줄 모를 정도로 빠져든다. 지난달 25일 통일연구원에서 진행된 그와의 인터뷰 역시 그랬다.

―트럼프 대통령이 언급한 ‘12일 전쟁’이 일단락됐다.
“이스라엘과 미국이 이란 핵 시설을 공격하며 압도적인 힘을 과시했다. 그런데 왠지 불안하다. 전쟁의 원인이 분명 이란 핵이었는데 이란은 휴전에만 동의했지, 아직 비핵화에는 동의하지 않았다.”
―개입을 꺼렸던 트럼프가 군사적 행동에 나선 까닭이 궁금하다.
“일종의 약속대련이다. 지난달 21일 미국의 이란 핵 시설 공습 이후 이란이 사전 통보하며 미군기지에 미사일 보복을 감행한 것에서도 알 수 있다. 트럼프는 이란이 더는 핵 개발을 하지 않는다면 추가 공습은 없다고 분명하게 밝혔다. 한 번의 공격을 끝내고 이란의 반응을 본 뒤 어차피 협상으로 마무리 지을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고 보면 된다.”
―트럼프의 기습공격과 정권교체 압박이 이란에 먹혔다고 봐야 하나.
“그것보다는 이스라엘의 선제공격이 이란의 방공망을 무력화해 미국의 기습을 가능하게 만들었다. 트럼프가 이란의 ‘레짐 체인지’까지 고려했다는 것은 압박 수단이다. 중동의 주요 미군 기지들은 이란의 테러 공격 시 허점이 노출될 수 있다. 가령 이란 최고지도자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가 암살됐다고 치자. 아무리 국민적 인기가 없어도 최고지도자인데 그럼 이란이 가만있을까. 트럼프가 이슬람 원리주의 상징인 지하드(성전)의 위험성과 1979년 이란 혁명 당시 테헤란 미 대사관 인질 점거 사태의 악몽을 모를 리 없다. 자칫 끝없는 전쟁의 수렁에 빠질 수 있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트럼프의 최종 목표는 뭐였다고 보나.
“이란의 약화다. 이번 전쟁의 원인은 두 가지다. 첫 번째가 이란 핵 개발을 무력화하는 것이다. 이란이 핵을 가지게 되면 이스라엘은 지구상에서 사라진다고 봐야 한다. 두 번째는 트럼프의 ‘빅 픽처’로 이란 중심의 ‘시아파 벨트’를 제거해 이스라엘 중심 친미 수니파 연대를 통한 항구적 중동 평화를 꾀했다고 볼 수 있다. 트럼프 1기 때인 2020년 체결했던 아랍에미리트와 바레인, 이스라엘 간 평화협정인 ‘아브라함 협정’(Abraham Accord)의 시즌Ⅱ를 원하는 거다.”

―호르무즈해협 봉쇄 카드까지 꺼내 들었던 이란의 결사항전은 허울에 그쳤다.
“사실 저항 수단이 없었다. 이란 항공전력은 이미 이스라엘에 의해 초토화됐다. 정권 존립 기반마저 흔들리는 상황에서 일단 전술적 후퇴를 한 것이다. 장기적으로는 실추된 입지 회복을 위해 고민할 것이다.”
―미국의 이란 핵 시설 공습으로 과연 이란 핵 프로그램이 완전 폐기됐을까.
“트럼프는 미군이 이란의 나탄즈, 포르도, 이스파한을 공습해 핵시설을 완전히 제거했다고 그랬다. 그의 말대로 일부 핵시설은 파괴됐을 것이다. 하지만 핵 프로그램은 생존해 있다고 본다.”(라파엘 그로시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무총장은 지난달 28일 미 CBS 인터뷰에서 “이란 핵시설 피해는 심각하지만, 완전히 파괴된 건 아니다. 수개월 안에 충분히 농축 우라늄을 생산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이란이 농축 우라늄을 미리 빼돌렸다는 관측도 있는데.
“지난달 13일 이스라엘 공습 이전에 이미 농축 우라늄은 숨겼다고 본다. 이란은 준무기급 농축 우라늄을 미군 폭격 전에 미리 옮겨 놨다고 주장해 왔고, 공습 이전에 촬영된 위성사진에서 포르도 핵시설 주변에 다수의 트럭이 포착돼 이란이 농축 우라늄을 사전에 다른 곳으로 이전했을 가능성이 제기됐다. 물론 트럼프는 아무것도 옮겨지지 않았다고 부인하지만….”
―차후에 이란이 핵무기 개발을 재개할 가능성은.
“이란 지도부가 핵 개발에 더 집착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핵무기만 있었어도 이렇게 당하진 않았을 거라고 땅을 쳤을 것이다. 지금까지는 IAEA 사찰을 받았지만, 이제는 이를 거부할 거다.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 시나리오도 짤 수 있다. 북한의 핵 개발 모델을 따를 가능성도 점쳐진다. 이스라엘 정보기관 모사드의 이란 내부 침투를 확인한 만큼 이들의 눈을 피해 더욱 은밀하게 움직일 가능성이 높다. 이란이 이번 전쟁을 통해 얻은 교훈이다.”

―그렇다면 이란 핵 문제 해결은 더 어려워진 건가.
“오히려 악화했다고 봐야 한다. 물론 외교적 해법을 추구했다고 답이 있는 건 아니지만….”
―향후 중동지역 국제질서는 어떻게 변모할 것으로 보나.
“당장은 아니지만, 중장기적으로는 불확실성이 상당하다. 시아파 종주국인 이란 지도부를 대체할 세력이 없는 것도 변수지만 하메네이 정권이 무너지면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의 통제가 더 어려워진다. 알카에다와 같은 테러 조직들이 출몰할 거고, 혼돈 상황을 맞을 수 있다. 이란 주변 수니파 왕정 국가들 권력기반은 대부분 취약하다. 파장이 없을 수 없다.”
―북한은 이번 사태를 어떻게 봤을까.
“우선 미국의 이란 공습에 화들짝 놀라 핵무기 보유 필요성을 더 느꼈을 것 같다. 김정은의 공포감도 작지 않았을 것이다. 미국이 하메네이를 암살할 수도 있다고 했고, 이후 실제로 핵 시설 타격이 이뤄진 것은 말 그대로 ‘화염과 공포’다. 미국의 공습 이후 북한의 절제된 반응이 이를 대변한다.”
―이란 핵과 북한 핵 차이는.
“핵물질 확보 단계에 있는 나라와 핵실험을 6번이나 한 나라를 비교하는 것 자체가 무리다. 북한은 핵 보복 능력까지 있다. 공격을 받을 경우 동맹인 중국과 러시아도 뒷배를 자처할 것이다. 미국이 이란처럼 함부로 대하기는 어렵다.”
―이번 전쟁이 한반도 안보 지형에 미칠 영향은.
“노벨평화상을 원하는 트럼프가 바라보는 대외 시각을 명확히 판단해야 한다. 그는 러·우 전쟁은 24시간 내 해결을 천명했다. 누가 이기든 내 돈만 안 들어가면 된다는 논리 전개다. 반면 중동 문제는 항구적 해결을 원한다. ‘아브라함 협정Ⅱ’로 귀결된다. 퇴짜를 맞았지만, 북한 김정은에겐 얼마 전까지도 친서를 전달했다고 한다. ‘러브 레터’라는 표현을 썼다. 그건 협상을 하겠다는 의미다. 트럼프 1기 때처럼 핵군축, 핵동결 등 이른바 ‘스몰딜’ 기조를 이어갈 것이다. 이 과정에서 코리아 패싱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점은 우려스럽다.”
―향후 어떻게 대응해야 하나.
“한반도 주변만 바라보던 시각을 확대해 한국형 세계전략을 만들어야 한다. 친미, 친북 소아병적 시각에서도 벗어나야 한다. 국익 중심 전략적 명확성을 분명히 해야 할 것이다. 이를 새 정부 실용외교에 담아야 한다. ‘코리아(K) 이니셔티브’가 어느 때보다 필요한 시점이다. 북·미 대화가 열리더라도 우리가 소외당하지 않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