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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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빛·바람, 염부의 손길… 기다림이 빚은 순백의 결정 [밀착취재]

입력 : 2025-07-12 15:00:00
수정 : 2025-07-12 14:0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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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의 걸작 ‘천일염’ 생산기지… 신안군 도초도 염전

항의 선착장을 지나 좁고 구불구불한 길을 따라 10여 분 달리자, 바다와 맞닿은 평원 한가운데 염전이 모습을 드러냈다. 마치 바둑판을 연상케 하는 정갈한 네모 칸마다 바닷물이 잔잔히 담겨 있고, 그 위로 햇살이 부서지듯 반짝였다. 사방은 고요했고, 고무장화를 신은 염부의 발자국 소리만이 고요를 깨우고 있었다.

 

염부 전동길씨가 전라남도 신안 도초도 염전에서 커다란 밀대를 들고, 반짝이는 결정지 위를 천천히 걸으며 소금을 긁어모으고 있다. 염전에서 채염 시간은 오후 3~4시쯤에 수확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 시간대는 소금 결정이 충분히 굳고 수분이 가장 적은 상태여서 수확하기에 가장 적절하다.

전국 천일염의 85% 이상이 생산되는 전남 신안군의 중심 도초도. 물안개가 자욱이 깔린 아침, 염전마다 기계 대신 해와 바람, 그리고 사람에 의해 도초도의 하루가 열리고 있었다. 자연의 섭리에 순응하며 빚어내는 이곳 천일염은 정제염과는 비교할 수 없는 가치를 지닌다.

 

염부 전동길씨가 수확한 소금을 소금창고로 옮기고 있다.
염부 전동길 씨가 신안 도초도 염전에서 소금을 긁어모으고 있다.
염부 전동길 씨가 신안 도초도 염전에서 소금을 긁어모으고 있다.
염부 전동길 씨가 신안 도초도 염전에서 소금을 긁어모으고 있다.
신안 도초도 염전에서 염부들이 소금을 긁어모으고 있다.
신안 도초도 염전에서 염부들이 소금을 긁어모으고 있다.
염부 전동길 씨가 신안 도초도 염전에서 소금을 긁어모으고 있다.
드론으로 바라본 도초도 염전의 모습이다. 하얀 소금 결정이 맺혀 있는 모습이 보이고 있다.

14년 전, 도초도에 약초를 캐러 왔다가 눌러앉게 된 염부 전동길(61)씨는 이제 1만 평 규모의 염전을 운영하고 있다. 처음엔 하수오, 함초를 채취하며 살아가던 중, 마을 어르신들로부터 염전을 넘겨받아 염부의 삶을 시작하게 됐다. 손때 묻은 염전, 그리고 매일 마주하는 바다와 하늘은 이제 그의 삶이 되었다.

“염전 일이요? 해와 바람만 믿고 사는 일이죠. 조급한 사람은 못해요.” 그가 손으로 염전의 한 칸을 가리켰다. 손끝이 머문 바닥에는 눈송이처럼 흩뿌려진 하얀 소금 결정이 고르고 단단하게 맺혀 있었다. “이 결정 하나하나가 바닷물이 태양과 바람을 견디며 일곱 날 동안 만들어낸 작품이에요. 아무리 기술이 좋아도 흉내 낼 수 없는 시간이 만든 결과죠.”

 

신안 도초도 염전에서 염부들이 소금을 긁어모으고 있다.
염부 전동길 씨가 신안 도초도 염전에서 소금을 긁어모으고 있다.
염부 전동길 씨가 신안 도초도 염전에서 소금을 긁어모으고 있다.
염부 전동길씨가 소금열차에 천일염을 싣고 있다.
도초도 염전에서 한 염부가 자동화 기계로 소금을 채취하고 있다.
염전 바닥 위에 천일염 결정들이 맺혀 있다. 눈송이처럼 생긴 결정은 바닷물이 태양과 바람을 견디며 일곱 날 동안 빚어낸 작품이다.
염전 바닥 위에 천일염 결정들이 맺혀 있다. 눈송이처럼 생긴 결정은 바닷물이 태양과 바람을 견디며 일곱 날 동안 빚어낸 작품이다.
염전 뚝방위에 소금열차가 다닐수 있는 레일이 설치되어 있다.
염부 전동길 씨가 수확한 소금이 소금열차에 가득 실려 있다.
드론으로 바라본 도초도 염전의 모습이다. 바다와 맞닿은 염전은 마치 평야 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다.

염전은 크게 입수지, 증발지, 결정지로 나뉜다. 입수지는 바닷물을 들이는 구역, 증발지는 수분을 날려 농도를 높이는 곳, 결정지는 말 그대로 소금이 맺히는 마지막 단계다. 전씨는 새벽 조수 간만의 타이밍을 계산해 입수지로 바닷물을 끌어들인다. 이후 2~3일 동안 증발지에서 농도를 확인하며 결정 시점을 기다린다. 햇볕만으론 부족하다. 바람이 불어야 수분이 날아가고, 흐린 날 없이 맑은 날이 최소 나흘은 이어져야 질 좋은 소금이 얻어진다. 도초도 천일염이 더욱 특별한 이유는 그 바닥 재질에 있다. 이곳의 염전은 대부분 ‘토판(土板)’ 방식으로 조성돼 있다. 콘크리트가 아닌 황토와 점토를 깔아 만든 바닥은 천연 필터 역할을 하며 소금 속에 칼슘, 마그네슘, 칼륨 등 풍부한 미네랄을 스며들게 한다. 이는 오랜 숙성을 필요로 하는 전통 발효식품에 탁월한 궁합을 보인다.

“정제염은 99%가 염화나트륨이지만, 도초도 소금은 미네랄 덩어리라니까요.” 그가 자랑스럽게 웃으며 덧붙였다. “간장 담그는 집에서는 이 소금 말고는 못 써요. 맛이 달라요.”

 

염부 전동길 씨가 신안 도초도 염전에서 소금을 긁어모으고 있다.
염부 전동길 씨가 신안 도초도 염전에서 소금을 긁어모으고 있다.
증발지의 바닷물을 결정지로 옮기고 있다. 결정지에 물이 들어가고 나면 며칠 사이 수면 위에 서서히 결정이 맺힌다.
소금열차 밑으로 간수(소금물)가 빠지고 있다.
염부 전동길 씨가 수확한 소금을 소금창고로 옮기고 있다.
염부 전동길 씨가 수확한 소금을 소금창고로 옮기고 있다.
소금 열차 위에 막 수학한 천일염이 쌓여 가고 있다.
염부 전동길 씨가 수확한 소금을 소금창고로 옮기고 있다.
염전 소금창고에 올해 수확한 소금이 쌓여 가고 있다.
염부 전동길 씨가 소금창고에서 수확한 소금을 들어보이고 있다.
도초도 소금 포대의 모습이다.

오전 염전 일을 마치고 나면 그는 ‘용항정’이라 불리는 도초도의 국궁장으로 향한다. 섬에 정착하고 난 후 새롭게 얻은 취미다. “처음에는 마을 형님들 따라다니다가 활 쏘는 걸 배우게 됐어요. 지금은 대회도 나가고, 형님들이랑 점심도 같이 먹고 그래요. 진짜 이 섬 주민이 된 기분이랄까.”

 

염부 전동길 씨가 신안 도초도 염전에서 소금을 긁어모으고 있다.
염부 전동길 씨가 결정지에서 소금삽을 들고 소금을 긁어모으고 있다. 사진은 결정지에 반영된 전동길씨 모습이다.
염전 바닥 위에 천일염 결정들이 맺혀 있다. 눈송이처럼 생긴 결정은 바닷물이 태양과 바람을 견디며 일곱 날 동안 빚어낸 작품이다.
염부 전동길 씨가 결정지에서 소금삽을 들고 소금을 긁어모으고 있다. 사진은 결정지에 반영된 전동길씨 모습이다.
염부 전동길 씨가 소금열차에 천일염을 싣고 있다.
염부 전동길 씨가 증발지를 돌며 염도계로 물의 염도를 체크 하고 있다.
염전 바닥 위에 천일염 결정들이 맺혀 있다. 눈송이처럼 생긴 결정은 바닷물이 태양과 바람을 견디며 일곱 날 동안 빚어낸 작품이다.
염부 전동길 씨가 도초도 용황정 국궁장에서 활을 쏘고 있다.
신안군 도초도 염전 위로 해가 저물고 있다.

그는 염전 한가운데에 서 한참을 하늘을 바라보다 말했다. “내가 죽어도 이 염전은 그대로일 거요. 바람 불고 해가 뜨면 소금은 또 만들어질 테니.”

바람과 해, 그리고 사람의 손이 어우러져 만든 소금은 단순한 조미료가 아니었다. 그것은 이 섬과 사람, 자연과 시간이 한데 어우러져 빚어낸, 느리지만 견고한 생의 결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