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메뉴보기메뉴 보기 검색

‘전파로 싸우는 전자전기’ 만든다…北 방공망 뚫을 신무기 개발 착수 [박수찬의 軍]

입력 : 2025-08-31 09:00:00
수정 : 2025-08-31 10:39:02
폰트 크게 폰트 작게

한반도 유사시 공군 전투기의 활동을 돕고, 적 방공망을 교란할 전자전기 개발이 본격화하고 있다.

 

군 당국과 방산업계에 따르면 방위사업청은 다음 달 2일까지 전자전기를 국내에서 개발하기 위한 전자전기 블록(Block)-Ⅰ 입찰 제안서를 받고 10월쯤 사업자를 선정할 계획이다.

 

미 공군이 운용하는 EC-37B 전자전기가 기술 검증을 위한 시험비행을 앞두고 활주로에서 이동하고 있다. 미 공군 제공

약 1조8000억원을 투입해 중형 비즈니스 여객기인 캐나다 봄바르디어 G6500를 개조, 국산 전자전 관련 임무장비를 탑재하는 방식으로 개발이 진행된다. 

 

미 공군에서 쓰이고 있는 최신 전자전기인 EA-37B과 동일한 개념이다. 2대를 확보한 뒤 인공지능(AI) 등을 적용해 성능을 높인 블록-Ⅱ 2대를 추가 도입할 예정이다.

 

올해 하반기에 진행하는 전력증강사업 중 가장 큰 규모로 꼽히는 전자전기 블록-Ⅰ 사업을 수주하면, 향후 블록-Ⅱ 입찰에서도 유리한 위치에 설 수 있다. 국내 방위산업체의 경쟁이 치열해질 수밖에 없다.

 

이번 사업은 전자전 임무 관련 기술을 앞세운 LIG넥스원, 장비와 기체의 통합 경험이 풍부한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의 경쟁 구도로 치뤄질 전망이다.

 

고정익 기체 사업의 절대 강자인 KAI가 특수목적항공기 시장 수성에 성공할 지, 핵심 임무인 전자전 분야의 경험을 갖춘 LIG넥스원의 시장 진입이 이뤄질 지 관심이 쏠리는 대목이다.

 

◆전자전기는 ‘보이지 않는 방패’

 

전자전기는 기체에 부착된 전자장비들로 적의 레이더·통신망을 마비시키는 역할을 한다.

 

레이더와 통신체계가 무력화되면 공중에서 공격에 무방비상태가 된다.

 

그만큼 아군은 항공 공격이 쉬워지고, 조종사의 생존도 보장할 수 있다. 미국 등 선진국 공군에서 전자전기를 필수적으로 운용하는 이유다. 

 

미 공군 요원들이 전자전 기술과 전술을 적용하는 것과 관련, 시뮬레이션을 하고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과거에는 C-130 수송기처럼 프로펠러 항공기를 플랫폼으로 썼지만, 최근엔 비즈니스 제트기를 활용하는 추세다.

 

전자전 기술이 발달하면서 장비의 크기는 작아지고 성능은 우수해졌다. 장비 탑재 공간이 수송기보다 작은 비즈니스 제트기에도 충분히 쓰일 수 있을 정도다.

 

전장이 넓어지면서 프로펠러 항공기보다 더 빠른 속도로 비행하는 것이 중시되는 기조도 이같은 추세를 촉진하고 있다. 

 

미 공군 EC-37B 외에도 튀르키예의 차세대 전자전기인 하바(HAVA)와 독일 전자정찰기 페가수스(Pegasus)도 봄바디어의 비즈니스 제트기인 글로벌 6000을 플랫폼으로 쓴다. 

 

한국도 전자전기 수요가 예전부터 있었지만, 전투기 도입 등이 먼저 이뤄지면서 전자전기 도입이 늦어졌다.

 

전자전기가 유사시 사용할 핵심 전자전 기술은 미국 등 일부 국가가 보유하고 있고 동맹국에도 공개하지 않고 있어서 국내에서 자체적으로 개발해야 한다.

 

이를 위해선 송·수신 안테나 설계와 격리 기술이 요구된다.

 

전자전기는 강력한 신호를 송출하는 동시에 적군의 전자신호를 수신해야 한다.

 

송·수신 안테나를 함께 사용하는 과정에서 전파 간섭을 최소화하고, 제트기의 빠른 속도와 낮은 기온 등 극한 환경을 견딜 첨단 레이돔(레이더 덮개) 설계가 필요하다.

 

전파 교란을 위한 출력을 높은 수준으로 유지하는 기술도 갖춰야 한다. 전파 교란의 성패는 전자신호의 출력에 달려 있다.

 

오랜 시간 출력을 낼 수 있는 내구성, 제한된 전력으로 전파 교란 출력을 끌어올리는 효율성 등을 발휘할 수 있는 증폭기를 설계하는 것이 중요하다. 

 

주한미군 RC-12X 신호정보 수집 정찰기가 착륙을 위해 활주로에 접근하고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단순한 전파 방해를 넘어서서 적군을 기만할 수 있는 수준의 고급 전자전 기법도 필요하다.

 

한국 공군은 북한은 물론 중국과 러시아 공군의 움직임도 견제해야 하는데, 중·러는 세계적으로도 매우 우수한 전자전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그런 만큼 고도의 전자전 기법을 확보할 필요가 있다.

 

적군의 레이더 화면에 가상의 기동 표적을 생성하거나, 통신망에 허위 정보를 유포하는 등의 지능형 기술이 거론된다.

 

이를 위해서는 인공지능(AI) 기반 패턴 분석과 적군 레이더·통신망 특성에 맞게 전자전 기법을 빠르게 전환하는 능력이 요구된다. 

 

전자전기 사업에서도 블록-Ⅱ에 AI 기반 지능형 전자전 기술이 적용될 예정이다. 다양한 전자신호를 학습한 뒤 실전 상황에서 전파방해 기법을 스스로 찾아내고 변경해서 적군에 대한 전자전 효과를 지속할 수 있게 한다.

 

적군의 레이더·통신망을 마비시키면서 아군은 통신체계를 보호하는 정밀 교란 기술도 필수다.

 

적군의 전자체계를 정밀타격하면서 아군 통신망을 보호한다면, 전쟁에서 아군의 피해는 크게 줄어든다.

 

전자전기가 완성되면 휴전선 이남에서 평양 등 북한 내륙 주요 지역을 대상으로 전파 교란 등의 작전이 가능해진다. 북한군 방공망 위협으로부터 공군 전투기들을 안전하게 보호할 수 있는 셈이다.

 

◆기체 못지않게 전자전 기술도 중요

 

이번 사업은 기체 통합과 전자장비 개발을 함께 진행하는 형태라 국내 업체들이 컨소시엄을 구성해 입찰에 참여할 예정이다.

 

한국항공우주산업(KAI)과 한화시스템, 대한항공과 LIG넥스원이 각각 팀을 이루게 된다. UH-60 성능개량 사업에서 맞붙었던 구도가 재현된 셈이다.

 

미 공군 EA-37B 전자전기가 이륙하고 있다. 미 공군 제공

수주 경쟁에서 승리하는 측은 첨단기술을 통합하는 경험을 축적, 국내외에 기술력을 과시할 수 있다. 그만큼 경쟁이 치열해질 수밖에 없다.

 

전자전기가 하늘을 비행하는 항공기라는 점에서 KAI의 기체 통합 역량에 중점을 두는 시각도 있다.

 

KAI는 KF-21, FA-50, 수리온 헬기 등의 다양한 항공 플랫폼을 개발하며 감항인증 경험과 통합 운용 기술을 축적했다. 이를 통해 국내에서 항공기 개조와 체계통합, 감항인증, 시험평가를 모두 진행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KAI는 신형 전자정찰기를 개발하는 백두체계능력보강 2차 사업에서도 프랑스 닷소 팰콘 2000LXS 비즈니스 제트기에 국산 전자전 장비를 탑재하는 식으로 체계통합을 진행중이다.

 

전자전기의 핵심 임무가 전파방해로 적군 방공망을 교란하고 아군 전투기를 보호하는 것이라는 점에서 임무수행능력이 더욱 중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대한항공과 LIG넥스원이 구상하는 한국군 전자전기 상상도. 대한항공 제공

국내에서 개발한 수송기나 비즈니스 제트기가 있다면 플랫폼과 전자전 장비의 통합이 중요하지만, 해외에서 항공기를 들여와 개조하는 것이므로 전자전 능력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주장이다.

 

미국 EC-37B나 독일 페가수스 전자전기 등에서도 항공기보다는 기체에 탑재할 전자전 핵심 기술 개발과 통합이 핵심적 요소였다는 것이다. 

 

방산업계 관계자는 “전자전기 개발은 해외 민항기 기체에 국내 기술로 개발한 전자기전 임무장비를 통합·운용하는 방식”이라며 “단순 플랫폼 중심의 개발방식은 전략적으로도 비효율적일 수 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국내에서 전자전 관련 기술과 경험은 LIG넥스원에 쏠려 있다.

 

LIG넥스원은 신호정보(각종 전파신호 수집·감청 정보) 정찰기를 만드는 백두체계능력보강 1·2차 사업에 신호정보 수집장비를 납품했다.

 

당시 1차 사업은 대한항공, 2차 사업은 KAI가 체계통합을 맡았다. 체계통합 주체의 변화에 관계없이 장비를 납품한 셈이다.

 

한국 공군 백두정찰기가 비행을 하고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그 외에도 함정용 전자전 장비, KF-21 전자전체계 등의 개발에 참여했다. 전자전 관련 다수의 기술과제에도 참여해 전자전 분야 핵심기술을 축적하는 작업도 지속해 왔다. 

 

전자전기 블록-Ⅰ 사업 구도가 형성되자, 일각에선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개발 리스크를 줄이고 성공 가능성을 높이려면,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 분야에서 기술과 경험이 가장 많은 기업들을 한데 모아야 한다. 

 

따라서 정부가 국내에서 전자전 임무수행체계 기술을 꾸준히 축적한 LIG넥스원과 항공기 체계통합과 시험평가 경험이 많은 KAI가 함께 개발 프로그램을 진행하도록 유도했어야 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전자전기 블록-Ⅰ 사업에선 이들 두 업체가 따로 경쟁하는 상황이 됐다. 시너지 효과가 줄어들 수밖에 없다. 기업의 경쟁력 강화를 위한 정책이 과열 경쟁 등을 초래해 시너지를 약화하는 결과가 되는 셈이다.

 

독일이 만든 페가수스 전자정찰기가 이륙하고 있다. 헨솔트 제공

기업간 경쟁이 사업비 절감 등의 효과는 있지만, 기술 개발 리스크를 줄이고 시너지를 극대화하는 것에도 도움이 되는지는 미지수다. 전자전기 사업 전개와 관련해 우려의 시각이 제기되는 대목이다.

 

이와 관련해 군 소식통은 “전자전기 개발은 ‘무엇을 싣고 날릴 것인가’에 대한 본질적 질문에서 출발해야 한다”며 “전자기전 임무장비를 독자적으로 개발하고, 그것을 유기적으로 통합할 수 있는 기술적 생태계를 갖추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