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인도의 관계가 흔들리고 있다. 서로를 ‘전략적 동반자’로 부르며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의 핵심 파트너로 자리매김했던 인도가 최근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고율 관세 부과와 에너지 제재 압박을 두고 정면 충돌하면서 균열 위기에 놓인 것이다. 조지 W 부시 행정부 이래 공화당과 민주당 정부 가리지 않고 인도가 인도양과 남아시아에서 중국의 영향력을 견제할 적극적 행위자로 부상하도록 지원해 온 미국으로선 전체 인도태평양 전략을 뒤흔들 중대한 변화라는 지적이 제기된다. 워싱턴의 정책 집단에서는 트럼프 행정부의 대(對)인도 정책이 가져올 파장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트럼프 시대 미국 외교 정책의 혼란을 엿볼 수 있는 또 하나의 장면이다.
◆50% 관세로 양국 긴장 최고조

지난달 27일(현지시간) 미국은 몇 달을 끌어온 인도와의 무역 협상 끝에 대부분의 인도산 제품에 50%의 관세를 발효했다. 이는 트럼프 행정부가 중국에 100%가 넘는 고율관세를 부과하다가 유예한 뒤 전 세계에 부과하는 관세율 중 가장 높은 수준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인도와의 거래는 지나치게 일방적이며, 더 용납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가을 인도에서 열리는 쿼드(Quad·미국, 일본, 인도, 호주 4자협의체) 정상회의에 불참한다는 보도도 나왔다.
트럼프 대통령은 특히 인도의 러시아산 원유 수입을 문제 삼고 있다. 인도는 세계 최대 정유시설을 가동하는 에너지 대국이다. 하지만 미국의 대이란·베네수엘라 제재로 공급원이 줄자 러시아산 중질유에 점점 더 의존하게 됐다.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러시아산 원유가 서방의 가격 상한제 아래 할인된 가격에 대량 공급되면서 인도의 선택은 점점 더 러시아산 원유로 기울었다.
하지만 인도는 러시아산 원유를 수입하면서도 G7 가격 상한제를 준수해 온 바 있다. 역시 러시아산 에너지를 대규모로 구매하는 중국에 대해 미국은 이 같은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다. 러시아산 원유 수입은 표면적 이유고, 고율 관세 강행은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가 트럼프 대통령의 인도·파키스탄 긴장 완화의 공을 인정하지 않은 데 대한 징벌적인 성격이 있다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인도에 대한 50% 관세 발효 이후 인도 정부는 “불공정하고, 부당하며, 납득할 수 없는 조치”라며 “국가 이익을 지키기 위해 필요한 모든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밝혔다. 정가와 여론은 반미 정서로 들끓고 있다. 인도 민간 뉴스네트워크인 NDTV에 따르면 모디 총리가 직접 나서 ‘스와데시’, 즉 인도산 구매 독려에 나섰다. 지난주부터 대중에 영향력이 높은 요가 지도자, 야당 지도자 등이 모두 나서 미국산 구매 반대 운동을 벌이고 있다. 더 나아가 인도 정가 전반에서 ‘자립 경제’, ‘로컬(local)을 위한 보컬(vocal)’, 무역 다변화가 슬로건처럼 등장했다.
데이비드 골드윈은 애틀랜틱카운슬 에너지 자문그룹 의장, 제프리 파이 애틀랜틱카운슬 석좌는 지난달 30일 공동 기고에서 “일본이나 유럽연합(EU)처럼 인도도 미국의 압박 속에서 민감한 국내 이해집단을 희생하면서까지 주요부분에서 양보를 할 것이라는 잘못된 계산은 값비싼 대가를 초래했다”고 지적했다. 제재를 포함한 경제적 강압은 인도처럼 비동맹을 지향하는 국가도 미국의 노선을 따르게 할 수 있다는 미국의 오래된 가정이 틀렸다는 것이다.
◆미국 인도태평양 정책 어디로
워싱턴 조야는 고율관세로 인한 미국과 인도의 갈등이 미국의 핵심 외교 정책인 인도태평양 전략의 앞날에 가져올 부정적 영향을 우려하고 있다. 인도는 전통적으로 독립 외교 노선을 추구하는 비동맹 국가이지만, 미국은 중국 견제를 위해 쿼드 등 지정학적 다자협의체에 인도를 꾸준히 관여시키면서 인도와의 관계에 공을 들여왔다. 트럼프 1기 행정부에서 처음 쿼드가 결성되기 이전에도 부시 대통령 시절부터 미국은 중국 견제를 위해 인도 부상을 지원해왔는데, 2008년 미국은 당시 인도와 거의 없던 국방 교역 규모를 2020년 기준 200억달러(약 28조원) 이상 확대한 바 있다. 특히 조 바이든 전 대통령은 쿼드를 군사안보뿐 아니라 경제안보 측면에서도 대폭 확대시켜 인도와의 광물 공급망, 기술·방산 파트너십을 적극 부각시켰다.
비동맹 국가로서 자율성을 외교정책의 중심에 두면서도 부시 행정부 이후 미국과 전략적 협력 관계를 발전시켜 온 인도가 미국과 균열이 생기고 더 나아가 중국·러시아 쪽으로 돌아서면 미국은 인도태평양 전략을 위해 공들여온 큰 축을 잃게 되는 셈이다. 일각에선 미국이 인도를 홀대하는 것이 결국 인도를 중국·러시아와 나머지 브릭스(BRICS) 신흥 경제국 쪽으로 밀어붙일 가능성까지 우려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 취임 이래 고관세 정책이 안보 동맹의 틀을 흔들 수 있다는 우려가 꾸준히 제기됐는데, 인도와의 갈등은 진정한 의미에서 그 첫 사례가 된 것으로 보인다. 인도는 미국에 전통적 의미의 동맹은 아니지만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신냉전 구도에서 미국이 반드시 포섭해야 하는 국가이기 때문이다. 골드윈 의장과 파이 석좌는 “트럼프 행정부는 파트너십을 지렛대로 오인하고 단기적 효과를 장기적 정렬보다 우선시함으로써 그 성과를 허물 위험에 놓고 있다”며 “워싱턴의 목표가 아시아에서 신뢰할 파트너를 확보하고, 회복력 있는 공급망을 구축하며, 중국의 영향력을 견제할 전략적 연합을 유지하는 것이라면 현재 접근은 지속 가능하지 않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미국은 회복력 있는 공급망 구축, 핵심 광물 접근, 인도태평양의 규범 기반 질서 유지 모두에서 큰 난관에 직면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美 내 영향력 행사 ‘인도계 인사’들도 동요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와 인도의 관계 균열에 미국 내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인도계 인사들도 동요하고 있다. 2023년 기준 인도계 미국인은 약 480만명으로 아시아계 중 중국, 필리핀에 이어 3위였다.
특히 기술계와 의료계, 금융권 등 전문직 종사자가 많아 미국 사회 내 영향력이 적지 않다. 공화당과 민주당 모두에 인도계들이 포진해 있다.
민주당 소속인 로 칸나(사진) 캘리포니아주 하원의원은 지난달 31일(현지시간) X(엑스)에 올린 글에서 “해리스 대신 트럼프를 선택해 투표한 모든 인도계 미국인들에게 묻는다. 여러분이 누군지 알게 됐을 것”이라며 “트럼프가 중국보다 더 가혹한 전면 관세로 인도와의 파트너십을 훼손하고 있는 상황에 대해 목소리를 낼 사람은 없는가”라고 따져물었다.
지난 대선에서 민주당 후보였던 카멀라 해리스 전 부통령과 공화당 경선 후보였던 니키 헤일리 전 유엔대사, 비벡 라마스와미 전 정부효율부(DOGE) 공동대표 등이 인도계여서 인도계 내부에서도 분열이 있었다. J D 밴스 부통령의 부인인 우샤 밴스도 인도계다. 미국 이민사회에서 고소득 전문직 비중이 높은 인도계는 특히 본국과의 강한 결속을 갖는다는 평가가 많다.
반대편인 공화당계에선 현실적인 해결책을 모색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앞서 실리콘밸리의 주요 트럼프 대통령 지지자이자 정치자금 기부자인 인도계 벤처캐피털리스트 아샤 자데자 모트와니는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가 트럼프 대통령에게 우호적인 제스처를 보이면 관세 철회를 이끌어낼 수 있다고 주장했다.
직접적으로 대인도 관세를 비판한 것은 아니지만 트럼프 행정부 상호관세의 위법성을 주장하는 소송을 이끈 인도계 변호사가 주목받기도 했다. 버락 오바마 행정부 시절 연방 대변인 대행을 지낸 닐 카튤 변호사는 이번 소송에 참여해 대통령의 긴급경제권한(IEEPA)은 관세 부과 권한을 대통령에게 부여하지 않는다는 주장을 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