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6년 몬트리올 올림픽은 동서 냉전이 극에 달한 시기에 열렸다. 공산주의 동독이 금메달 40개로 종합 순위 2위에 올랐고, 자유 진영의 서독도 금메달 10개를 수확하며 스포츠 강국의 존재감을 과시했다. 눈길을 끄는 숫자는 대회 우승에 빛나는 소련(현 러시아)과 동독의 격차다. 소련이 금메달 49개를 휩쓸었다고는 해도 동독과 서독을 더한 50개보다는 한 개 적었다. 뒤집어 말하면 동·서독이 분단되지 않은 한 나라였다면 1위 자리는 소련이 아닌 독일에게 넘어갔을 것이란 점이다.

당시에 이미 미국, 일본 다음가는 세계 3위 경제 대국이던 서독이야 그렇다 쳐도 가난한 공산주의 국가 동독이 어떻게 그토록 놀라운 성적을 거뒀을까. 사실 독일은 1945년 분단 후에도 1964년 도쿄 올림픽까진 단일팀을 내보냈다. 그러다가 1968년 멕시코시티 올림픽 때부터 동·서독이 제각각 대표팀을 꾸렸다. 이는 서독을 라이벌로 여겨 온 동독의 뿌리깊은 ‘체제 경쟁’ 의식과 관계가 깊다. ‘올림픽 등 각종 국제 스포츠 경기에서 서독보다 잘해야 한다’는 강박에 사로잡힌 나머지 동독 정부는 나라 형편에 안 맞는 엄청난 비용을 엘리트 체육에 쏟아부었다. 동독만큼은 아니지만 서독도 각종 체육 대회의 성적, 그러니까 메달 수에 무척 신경을 썼다. 그러다가 1990년 동·서독 통일과 더불어 스포츠 분야에서의 체제 경쟁은 자취를 감췄다.
남북한도 예외는 아니었다. 1970년대 들어 한국이 경제력 면에서 북한을 압도하면서 싱겁게 끝나긴 했으나, 스포츠를 통해 국위를 선양하려는 양측의 경쟁은 집요한 데가 있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유행 기간 얼어붙은 북한 스포츠가 엔데믹(감염병 유행 종식)과 더불어 다시 기지개를 켠 2024년 봄의 일이다. 파리 올림픽을 4개월가량 앞두고 소집된 북한 올림픽위원회 총회 참석자들은 이구동성으로 “올림픽 등 주요 국제 경기에서 우리 국가의 존엄과 위용을 높이 떨치고 온 나라에 체육 열기를 더욱 고조시킴으로써 국가 부흥의 새 시대를 열어 나가는 우리 인민들에게 커다란 용기와 고무를 안겨줘야 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그래서 결과는 어땠나. 한국이 금메달 13개로 종합 8위에 오른 반면 북한은 금메달 한 개도 없이 은메달 2개, 동메달 4개에 그쳐 순서를 매기기도 민망한 최하위권으로 밀려났다.

대만 정부가 9일 운동부(스포츠부)를 신설하고 초대 부장(장관)에 젊은 배드민턴 선수 리양(李洋·30)을 내정했다. 리양은 2020년 도쿄, 2024년 파리 올림픽 남자 복식 결승전에서 잇따라 중국 선수들과 겨뤄 2연패를 달성하고 금메달을 두 개나 목에 건 스포츠 영웅 출신이다. 운동부 창설은 반중(反中) 성향이 강한 라이칭더(賴淸德) 현 총통이 이끄는 민진당 정권이 주도했다. 엘리트 체육인을 체계적으로 키우고 이들이 올림픽 등 각종 국제 대회에 출전해 중국 아닌 대만을 널리 알림으로써 국위를 떨치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한국은 더는 스포츠 분야에서 북한과 이런 소모적인 체제 경쟁을 벌이지 않아도 되니 그저 다행스러울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