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재명정부가 지역·필수의료 공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의료개혁 방안으로 지역의사제·공공의대 등을 추진하는 데 대해 김택우 대한의사협회(의협) 회장은 “사회적 합의와 실현 가능성 검토가 결여된 상태에서의 정책 추진은 또 다른 갈등만 불러올 것”이라고 직격했다. 대통령실과 보건복지부, 더불어민주당은 지난 4일 국회에서 첫 보건복지 분야 당정대 협의를 열고 의료개혁 쟁점으로 꼽혀 온 필수의료 강화 및 지역의료 격차 해소를 위한 특별법과 지역의사 양성법을 올해 말까지 열리는 정기국회 회기 내 처리할 방침을 밝혔다. 지역의사 양성법은 의대 정원의 일정 비율을 지역의사 선발 전형으로 뽑도록 한다. 이 전형으로 선발된 학생에게는 의사 면허 취득 후 공공의료기관 등에서 10년간 의무 복무하는 내용이 담겼다.
이에 대해 김 회장은 5일 세계일보 사옥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명확한 설계도조차 없이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 무엇보다 의료계와의 충분한 논의 과정이 반드시 선행돼야 한다”며 “그렇지 않다면 지난 정부가 무리하게 추진했던 의대 증원 정책과 본질적으로 다를 바가 없으며 의료시스템에 또 다른 충격을 안겨줄 것”이라고 밝혔다.
김 회장은 ‘지역·필수·공공의료’(지·필·공)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저수가, 과도한 업무 강도, 사법 리스크’를 해결하는 것이 필요하다”며 “의료사고안전망도 구축해 불가항력적 의료사고에 대한 국가 보상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지역의료 붕괴는 지역 소멸 문제와 맞닿아 있는 만큼 지역에 의료진이 갈 수 있는 정주 여건을 개선하는 것이 시급하다는 게 김 회장의 설명이다.
지난해 2월 의·정 갈등으로 병원을 떠났던 사직 전공의 중 상당수가 최근 수련병원으로 복귀하면서 갈등 이전과 비교해 76.2% 수준으로 회복했다. 그러나 소아청소년과는 모집 인원 대비 13.4%만 복귀하는 등 필수과목과 비수도권 병원의 복귀율은 저조했다. 이와 관련해 김 회장은 “의료계와 정부 간 갈등이 봉합 국면으로 접어들 수 있는 중요한 전환점이다. 무엇보다 수련의 이해당사자들이 모여 직접 논의한 점을 긍정적으로 평가한다”면서도 “여전히 문제점들은 남아 있다. 이번 전공의들의 복귀로 한국의 의료제도가 새로운 틀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전공의들은 1년6개월 만에 각 수련병원에 복귀한 첫날인 지난 1일 전국 단위 조합인 대한전공의노동조합(전공의노조)을 공식 설립했다. 전공의노조는 14일 의협에서 발대식을 열 예정이다. 김 회장은 이에 대해 “제도권 내에서 목소리를 내기 위해 노조를 조직할 필요성을 느낀 듯하다”며 “의협은 이를 존중하고 충분히 지원하겠다”고 전했다. 다음은 김 회장과의 일문일답.

―사직 전공의들이 최근 상당수 복귀했다.
“이번 전공의들의 복귀는 의료계와 정부 간의 갈등이 봉합 국면으로 접어들 수 있는 중요한 전환점이다. 무엇보다 수련의 이해당사자들이 모여 직접 논의하고 결론을 도출한 과정을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그간 의협이 강조해 온 것처럼 의료사태 해결을 위해 전문가들이 머리를 맞대어 협의하는 방식이어야 한다는 점을 잘 보여준 사례다. 그러나 그들이 왜 자리를 떠날 수밖에 없었는가를 절대 잊어서는 안 된다. 여전히 문제점들은 남아 있고, 필수의료나 지역의료의 처참한 실태가 속속 드러나고 있다. 이번 복귀가 한국의 의료제도가 새로운 틀을 마련하는 시발점이 되기를 바란다.”
―비수도권 병원과 필수과목의 복귀율이 저조하다.
“우리 의료가 이전부터 안고 있던 구조적인 문제가 누적돼 표면으로 드러난 것이다. 수도권 대형병원은 상대적으로 진료환경과 교육·연구 인프라가 의료사태 이전 수준으로 회복하고 있어 전공의들이 선호한다. 비수도권은 전공의들이 복귀해도 과중한 업무 부담을 맡게 될 것이 자명하다. 시설과 장비 등도 턱없이 부족하다. 모든 분야에서 수도권 쏠림 현상이 나타나는 것과 같은 문제다. 산부인과·소아청소년과 등 필수의료 분야는 응급상황과 당직 부담이 많고 노동 강도 및 사법 리스크가 높지만, 보상 체계는 충분하지 않다. 결국 이런 불균형이 해소되지 않는다면 미래 젊은 의사들의 전공과 지역 선택에도 지속해서 영향을 끼쳐 의료의 왜곡을 불러올 것이다.”
―박단 전 대한전공의협의회 비상대책위원장은 수련병원 복귀에 실패했는데.
“사직 전공의 복귀 논의를 했던 수련협의체에서 전공의가 수련병원에 재응시를 했을 때 조건 없이 받자는 방침이 있었지만, 복귀가 이뤄지지 못해 안타깝다. 전공의가 기존에 수련하던 병원으로 복귀 의사를 밝히면 수용하자는 게 의협의 요구였다. 아무래도 상징적인 인물이다 보니 더 화제가 된 듯하다.”

―전공의 노조가 설립됐다.
“의·정 갈등이 촉발했을 때 전공의들이 목소리를 내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제도권 밖에서 투쟁하자, 정부는 여러 행정명령으로 탄압했다. 전공의들이 어떻게 목소리를 낼 수 있을지 고민 끝에 노조를 결성했다. 전공의들의 의견을 더 수렴할 수 있을 것이다. 의협도 이를 존중하고 도울 부분은 지원하겠다.”
―새 정부가 의료개혁 방안으로 지역의사제·공공의대를 꺼내 들었다.
“해당 정책들은 과거 정부에서도 여러 차례 논의됐지만, 실효성과 사회적 공감대 부족으로 실행되지 못했다. 지역의사제는 헌법 제14조 거주·이전의 자유와 제15조 직업 선택의 자유를 침해할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 10년 이상 의무복무를 하라는데, 명확한 법적 근거가 부족하다. 실제로 의무복무 기간이 끝난 뒤 대부분의 의사가 수도권 등으로 이탈할 가능성도 높다. 장기적인 지역의료 불균형 해소에 기여하지 못한다. 공공의대도 지역에 짓는다고 하지만, 현재 지방 국립대 병원조차 인프라와 인력이 부족한 문제를 오래 겪었다. 기존 지역 병원·의료원도 개선하지 못하고 공공의대를 설립한다고 운영이 되겠는가. 접점을 찾지 못한다면 불가피한 마찰도 일어날 수밖에 없다.”
―‘지·필·공’의 해결 방안은 무엇인가.
“근본적으로 저수가, 과도한 업무 강도, 사법 리스크를 해결하는 것이 필요하다. 필수의료 영역의 열악한 처우로 종사 인력은 고된 업무에 비해 적절한 보상을 받지 못한다. 중증환자 진료로 사망사고를 포함한 모든 진료에 대해 처벌 부담을 의사가 가진 상황에서 이를 완화하는 대책 마련도 강구돼야 한다. 또 ‘의료사고안전망’ 구축을 통해 불가항력의 의료사고에 대한 국가 보상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

―‘응급실 뺑뺑이(재이송)’ 문제가 여전하다.
“응급실 위기 문제는 결국 ‘응급환자를 수용할 수 있냐’가 관건이다. 수용이 가능해지려면 ‘배후진료과’ 역량이 어느 정도인지, 경증 환자가 응급실을 차지하는 문제는 왜 발생하는지를 따져야 한다. 또 현재 응급환자 이송 시스템의 컨트롤타워가 없다. 매번 119구급대가 여러 병원에 전화해야 하는 후진국적 체계는 바뀌어야 한다. 구급대원이 병원을 지정할 수 있도록 하는 법안이 현재 발의 중인데, 현실성이 없다. 응급실 의료진의 법적 책임도 완화할 필요가 있다. 의료사고에 대한 사법리스크가 있는 상황에서 의료진은 환자를 받지 않고 책임에서 벗어나고 싶게 된다. 이런 부분을 해결하지 않는다면 결국 필수과목 지원도 계속 줄고, 응급실 재이송 문제도 반복된다.”
―의·정 갈등으로 다시 국민이 피해를 입지 않기 위한 방안은.
“이번 갈등 사태의 본질은 지난 정부의 강압적이고 독단적으로 추진된 의대정원 2000명 증원 발표 때문에 반발한 것이다. 이런 갈등을 막기 위해서는 의료전문가이자, 의료공급자의 역할을 수행하는 의사의 입장을 정책에 충분히 반영해야 한다. 의료정책 초기 설립부터 추진에 있어 의료전문가 단체와 충분한 논의를 거쳐 정책을 개발하고, 이를 공론화하는 과정이 우선시돼야 한다.”
―의·정 갈등 당시 어린 의대생과 전공의들을 투쟁에 앞세웠다는 비판이 있다.
“안타까움이 크다. 의료계 전체가 거세게 저항했지만, 이번 사태의 당사자이자 가장 큰 피해자는 의대생들과 전공의들이었다. 미래를 준비할 시기에 학업과 수련을 중단할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몰린 것 자체가 매우 가슴 아픈 일이었다. 그러나 의대생과 전공의가 어리다 해도 모두 독립적, 주체적으로 판단하는 성인들이었다. 전면에 나선 것에 대한 존중 또한 필요했다. 이제는 학생들은 조속히 학업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지원하고, 전공의들이 수련 과정에서 공백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제도적 보완책을 마련하는 것이 최우선이다. 앞으로는 의료계 기성세대가 더 큰 책임을 지고 나서며, 젊은 의료인들이 희생되지 않도록 하는 게 저와 의협의 책무라고 생각한다.”

―의료계가 다시 국민 신뢰를 얻기 위해 노력할 부분이 있다면.
“지난 의료사태는 전 정부의 독단적 결정과 정책 실패가 초래한 사회적 재난 상황이었다. 오랜 시간 고난을 함께 감내해준 국민께 송구하며 감사하단 말씀을 전하고 싶다. 국민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의료계가 무엇보다 ‘국민의 건강과 안전이 최우선’이라는 원칙을 분명히 하며, 국민이 몸소 느낄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국가적 재난 시 보건의료 대응방안을 위해 협력하고 사회적 책무를 다하겠다. 국민 건강을 위한 법 제도 마련, 의료계 자정 노력 등 의료인 스스로도 윤리성과 전문성을 더 확립해 나가겠다.”
―회장으로 취임한 지 8개월이 지났다.
“지난 8개월은 의료계와 국민 모두에게 큰 고비의 시간이었다. 의사로서, 또 의협 회장으로서 국민의 건강권을 지키기 위해 앞장서야 한다는 무거운 책임감을 절실히 느꼈다. 갈등의 과정에서 국민께 심려를 끼쳐드린 부분, 특히 젊은 의료인들이 감내해야 했던 희생을 막지 못한 점은 회장으로서 가장 마음에 남는 부분이다. 의료계 상황이 점차 회복 중이지만, 의료 정상화까지는 갈 길이 멀다고 생각한다. 앞으로는 정부와의 협의 과정에서 전문가의 의견이 더 반영되기를 바란다. 주요 보건 이슈들에 대해 국민 건강과 안전을 최우선으로 현안을 해결해 나가겠다.”

김택우 대한의사협회 회장…
●1964년 경남 진주 출생 ●경상의대 졸업 ●춘천시의사회장 ●강원도의사회장 ●대한의사협회 의대증원 저지 비상대책위원장 ●전국광역시도의사회장협의회 회장 ●대한의사협회 회장(2025년 1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