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차 산업혁명’의 핵심인 인공지능(AI)이 일상 곳곳에 스며들면서 세계적으로 AI에 대한 긍정적 인식이 증가 추세다. 구글이 글로벌 여론조사기관 입소스와 올 초 21개국을 상대로 진행한 조사에서 AI를 긍정적으로 인식하는 비율은 전년 대비 7%포인트 늘어난 49%였다. AI가 5년 안에 직업 양상과 산업을 긍정적인 방향으로 변화시킬 것이라는 평균 응답률도 같은 기간 52%에서 58%로 늘었다.
구글·입소스는 나라별로 국민의 AI 사용 정도가 AI에 대한 호감 수준을 결정한다고 분석했다. 긍정률이 높게 나타난 한국, 인도, 아랍에미리트(UAE) 등은 인구 대비 AI 사용률이 높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챗GPT 개발사 오픈AI의 제이슨 권 최고전략책임자(CSO)는 지난 10일 오픈AI 한국 지사 출범식에서 “한국은 아시아태평양 지역 챗GPT 유료 구독자 수 1위 국가”라고 밝힌 바 있다.

국가 경제 규모도 연관이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구글·입소스 조사에서 AI 긍정률은 아시아와 글로벌 사우스(주로 남반구에 있는 신흥국과 개발도상국)에서 50% 이상이었지만 미국, 캐나다, 프랑스, 영국 등 소위 선진국에선 35∼40%대에 머물렀다. 아시아, 글로벌 사우스 국가들이 AI를 단순한 신기술을 넘어 경제 성장을 가속하고 선진국을 따라잡을 ‘도약대’로 인식하면서 AI의 잠재력에 대한 기대감이 긍정적 시선으로 이어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특히, 세계일보와 비영리 공공조사네트워크 ‘공공의창’이 여론조사기관 ‘디오피니언’에 의뢰한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AI를 바라보는 한국인들의 인식은 구글·입소스 조사보다 훨씬 더 긍정적이다.
AI 기술의 긍정적 영향 여부에 대해 응답자 35.5%가 ‘매우 그렇다’, 52.4%가 ‘대체로 그렇다’고 답하며 긍정 비율이 87.9%에 달했다. AI 추론 신뢰성 조사에선 ‘전적으로 신뢰한다’(11.4%)와 ‘어느 정도 신뢰한다’(75.5%)는 응답이 86.9%를, ‘AI가 연령·성별·학력·사회적 지위와 관계없이 누구에게나 공정하고 포용적으로 작동한다고 보느냐’는 질문엔 ‘그렇다’(매우+대체로)는 응답이 64.3%를 차지했다.

한국인의 ‘AI 긍정론’이 상대적으로 AI 시대와 친숙한 청년층보다 중장년층에서 두드러진 것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AI가 사회에 긍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확신(매우 그렇다)한 응답은 40대가 53.2%, 60대가 49.6%다. 만 18∼29세(35.7%) 응답자보다 최소 13%포인트 이상 높다. AI 추론 결과에 대한 신뢰도 역시 60대(92.6%)에서 가장 높았고, AI 포용성에 대한 긍정 비율은 40대와 70대에서만 70%를 넘었다.
이 같은 결과는 AI를 바라보는 시각 차이에서 비롯된 것으로 분석된다. 중장년층은 PC, 인터넷, 스마트폰 등 과거의 기술 혁명이 사회 발전에 기여하고 새로운 기회를 창출한 과정을 목격했다. 같은 맥락에서 AI도 삶이 질 향상이나 생산성 확대 등에 도움이 될 것이란 기대감을 품을 수 있다. 반면 취업난에 시달리거나 어렵게 취업에 성공한 뒤 AI가 콘텐츠 생성, 데이터 분석, 디자인, 코딩 등 실무를 대체하는 것을 본 청년층은 AI 세상에 더 부정적일 수밖에 없다. AI가 각 사업장 내 무인 자동화 업무 환경을 가속화하는 등 자신들의 일자리를 위협하고, 어렵게 습득한 지식과 기술도 금세 무력화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요컨대 이번 여론조사 결과는 중장년층일수록 AI를 ‘조력자’로, 청년층일수록 ‘경쟁자’로 보는 쪽이 더 많다는 점을 시사한다.
세계일보·공공의창 공동기획
공공의창은 2016년 문을 연 비영리 공공조사 네트워크다. 리얼미터·리서치뷰·우리리서치·조원씨앤아이·코리아스픽스·한국사회여론연구소·서던포스트·시그널앤펄스·디오피니언·소상공인연구소·지방자치데이터연구소 11개 여론조사 및 데이터 분석 기관이 우리 사회를 투명하게 반영하고 공동체에 보탬이 되는 조사가 필요하다는 뜻을 모아 출범시켰다. 정부나 기업의 의뢰를 받지 않고, 매달 ‘의뢰자 없는’ 조사와 분석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