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하다고 해서 고기 맛을 모르겠는가. 가난하다고 해서 왜 모르겠는가.
지난 7일 개봉한 영화 ‘사람과 고기’(감독 양종현)는 한국 영화에서 좀처럼 보기 힘든 ‘노인 3인 주연’ 체제로 관객을 맞이한다. 박근형(85), 장용(80), 예수정(70). 도합 150년을 넘긴 이들의 연기 내공은 스크린에 묵직한 존재감을 드리운다.

◆고깃국 한 그릇에서 피어난 우정
영화는 폐지를 주워 하루를 연명하는 형준(박근형)과 우식(장용), 길에서 채소를 팔며 생계를 꾸리는 화진(예수정), 세 노인의 우연한 만남으로 시작된다. 삶의 끝자락에서 우연히 만난 세 노인은 고깃국을 나눠 먹으며 어느새 친구가 된다.
우식은 돌연 제안한다. “제대로 고기 한 번 먹어보자.” 돈이 없어 고기를 못 먹은 지 오래인 형준과 화진은 한턱을 내겠다는 우식의 호언장담에 순순히 따라나선다. 실컷 웃고 떠들며 고기를 포식한 이들은, 우식의 폭탄선언을 듣는다. “나, 돈 없어. 그냥 나가. 담배 피우는 척하고, 화장실 가는 척하면서.”
무전취식이다. 의도치 않게 죄를 저지른 형준과 화진은 분노하지만, 우식은 태연하다. 장사 잘 되는 가게고, 소고기도 아닌 돼지고기였으니 그쯤은 괜찮다는 식이다.

갈등은 잠시, 세 사람은 이내 무전취식의 스릴에 빠져든다. 고기의 육즙은 더없이 달고, 죄의식은 점차 짜릿함으로 바뀐다. 처음엔 머뭇거리던 행동은 점점 대담해진다. 도주 경로를 짜고, 연기로 주인을 속이는 데도 능숙해진다. 세 사람은 서울 곳곳을 돌며 공짜 고기를 먹는다.
그러나 스마트폰이 없는 이들은 몰랐다. 자신들이 ‘먹튀 노인 3인조’라는 이름으로 온라인상에서 화제가 되고 있다는 사실을. 이들의 행적은 결국 덜미가 잡히고, 셋은 법의 심판대에 선다.
판사는 세 노인의 삶에는 눈길을 주지 않은 채, 법률의 잣대로 그들을 질타한다. “70년이 훌쩍 넘는 세월을 살아온 만큼 삶의 지혜와 인격이 응답 꽃을 피워야 함에도 사회 구성원들을 경악하게 하는 추태를 보였다”며 무거운 판결을 내린다.

◆가난하다고 해서, 왜 사람답게 살고 싶지 않겠는가
하지만 영화는 묻는다. “가난하다고 해서, 왜 고기 맛을 몰라야 하는가.”
형준과 우식은 하루 종일 폐지를 주워도 손에 쥐는 돈은 고작 몇천 원. 고물상에선 박스 하나에 60원을 쳐준다. 노동을 마친 우식은 마트 고기 코너 앞에서 돼지고기를 한참 바라보다 결국 우유 한 팩만 사서 돌아선다. 가난에 찌든 형준의 친구는 곡기를 끊고 스스로 삶을 마감한다. 가난은 소리 지르지 않는다. 그저 삶을 조금씩 잠식한다.
가난한 세 노인 곁에는 기댈 이도 없다. 형준은 자식이 있지만 연락은 끊긴 지 오래고, 우식은 고양이 한 마리와 셋방에 산다. 화진은 젊어 사고로 세상을 떠난 딸 부부를 대신해 손자를 길렀지만, 대학생이 된 손자는 돈이 필요할 때만 할머니를 찾는다. 이들에게 남은 공동체는 셋이 둘러 앉은 밥상 뿐이다.

이들의 죄는 단 하나, ‘고기를 탐했다’는 것이다. 영화는 도덕적 일탈에 대한 응징보다는, 공공의 실패에 대한 성찰을 요구한다. 굶지 않는 삶만으로 충분한가. 존엄을 지키며 사람답게 사는 삶이 더 중요한 건 아닌가. 영화가 끝난 뒤에도 그 질문은 오래도록 자리에 남는다.
영화는 이처럼 묵직한 주제를 다루면서도 유쾌한 리듬을 잃지 않는다. 세 배우의 노련한 연기와 위트 있는 대사는 시종일관 따뜻한 웃음을 건넨다. 특히 연기 인생 54년 만에 처음 영화 주연을 맡은 장용은 깊은 인상을 남긴다. 세 배우는 ‘베테랑’이라는 단어의 무게를 몸소 증명한다.
가난하다고 해서, 왜 사람답게 살고 싶지 않겠는가. 영화 ‘사람과 고기’는 이 물음 하나를 끝까지 놓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