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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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뭄 때 기부받은 생수 84만병 야외 방치한 강릉시

입력 : 2025-10-31 06:00:00
수정 : 2025-10-31 02:2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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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악가뭄 때 각계각층서 기부
해갈 이후 남은 생수 처치 곤란
한 달 가까이 주차장에 쌓아놔

땡볕 페트병서 발암물질 우려
市 “연내 시설 등에 전량 배부”

최악의 가뭄으로 사상 첫 단수사태까지 벌어진 강원 강릉시에 기부된 생수가 한 달 가까이 야외에 방치된 것으로 나타났다. 시 행정의 무관심이 전국에서 보내온 온정을 무색하게 만들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생수 페트병이 직사광선과 고온에 장시간 노출될 경우 발암물질이 생성될 수 있다는 점에서 우려도 나온다.

30일 강원 강릉시 한 야외 주차장에 지난 8~9월 극한 가뭄 사태 당시 전국 각계각층에서 보내온 생수병들이 햇볕 등에 노출된 채 방치돼 있다. 강릉=연합뉴스

30일 강릉시에 따르면 이날 기준 강릉시가 전국 각계각층에서 기부받은 생수는 2ℓ짜리와 0.5ℓ짜리를 포함해 총 1066만3081병이다.

 

강릉은 지난 8~9월 극심한 가뭄으로 주요 상수원인 오봉저수지 저수율이 사상 최저치인 11.6%까지 떨어졌다.

 

이 때문에 상수도 계량기를 75%까지 잠그고 시간제 급수를 시행하는 등 강릉시민들은 물 부족으로 극심한 어려움을 겪었다.

 

당시 전국에서 생수를 보내는 등 온정이 이어졌다. 강릉시는 두 차례에 걸쳐 시민들에게 생수를 배부했다. 지난달 초 시는 모든 시민들에게 1인당 2ℓ짜리 생수 6병을 지급했다. 며칠 후에는 아파트 주민 1명당 2ℓ짜리 생수 18병, 아파트에 살지 않는 이들에게는 12병을 나눠줬다. 이어 외국인 주민과 사회복지시설, 병원, 어린이집, 소상공인 등에게도 다량의 생수를 풀었다.

 

이렇게 배부된 생수는 959만3965병. 강릉시 인구가 20만명이 넘는다는 점을 감안하면 1인당 48병 정도를 받은 셈이다. 0.5ℓ짜리 생수는 모두 소진됐고 2ℓ짜리 106만9116병이 남았다.

 

문제는 단비로 물 걱정이 없어지자 시가 기부받은 생수 대부분을 야외 주차장에 방치하다시피 쌓아놓고 있다는 점이다. 이곳에 팽개쳐진 생수는 84만병으로 추정된다. 해당 생수는 지난달 초까지 강릉아레나 주차장에 보관됐다가 한 달 전쯤 이곳으로 옮겨졌다.

시민 정모(45)씨는 “우리가 어려울 때 보내준 생수를 방치하는 것은 예의가 아니다”며 “생수가 얼어 터지거나 햇볕에 장기간 노출돼 버려지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생수 페트병이 장기간 직사광선에 노출되면 유해물질이 생성될 수 있다는 사실도 우려되는 지점이다. 2022년 감사원이 직사광선에 노출됐을 때 페트병에 담긴 생수 안전성을 검사한 결과에 따르면 생수가 3.9개월 노출됐을 때 1군 발암물질인 포름알데히드 등이 생성될 수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생수 야외방치는 보존방법 기준 고시에도 위배된다. 여기에는 ‘먹는 샘물 등은 가급적 차고 어두운 곳에 위생적으로 보관해야 한다’고 명시돼 있다.

 

강릉시는 연내 남은 생수를 배부할 방침이다. 시 관계자는 “사회복지시설 등 취약계층에 30만병, 군부대에 5만병 등 연내 배부를 완료할 것”이라며 “일부는 비상용으로 비축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직사광선 노출에 따른 발암물질 생성 가능성과 관련해선 “한 달간 비가 왔고 유통기한도 넉넉하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고 본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