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2월 9일 평창 동계올림픽 개막식 때의 일이다. 가장 먼저 그리스 선수단이 입장하고 가나 선수단이 뒤를 이었다. ‘선수단’이란 표현이 무색하게 스켈레톤 선수 1명이 전부였다. 어느 공영방송의 개막식 생중계에 해설자로 나선 모 개그맨이 “아프리카 선수들은 눈이라곤 구경도 못 해봤을 것 같은데”라고 말했다가 구설에 올랐다. ‘특정 대륙 및 국가를 비하한 것 아니냐’는 논란에 휩싸인 이 개그맨은 결국 시청자들에게 사과해야 했다. 꼭 30년 전인 1988년 서울 하계올림픽 때에도 그리스가 첫번째, 가나가 두 번째였다. 고대 올림픽의 발상지인 그리스는 세계 어느 도시에서 올림픽이 열리든 1등으로 입장하는 특권을 누린다. 2등부터는 개최국이 재량으로 순서를 정하는데, 한국의 경우 한글 가나다순을 적용하면 가나가 제일 빠르다. 한국이 주최하는 올림픽은 늘 ‘그리스 1번, 가나 2번’일 수밖에 없는 이유다.
가나는 초콜릿의 원료인 코코아 생산국으로 유명하다. 1975년 국내에 출시돼 올해로 50주년을 맞은 모 제과회사의 초콜릿 제품에 ‘가나’란 이름이 붙은 것도 가나에서 수입한 코코아를 쓰기 때문이다. 가나 초콜릿을 홍보하는 텔레비전 광고에 등장한 ‘가나와 함께라면 고독마저 감미롭다’라는 카피 문구는 못 들어본 국민이 없을 정도다. 덕분에 1957년 영국 식민지에서 독립하고 한국과는 1977년에야 국교를 맺은 가나가 국내에서 아주 낯익은 나라로 자리를 잡았다.
2022년 카타르 월드컵 당시 한국은 조별 리그 H조에 속했다. 1차전에서 우루과이와 0-0으로 비기고 2차전에선 가나에게 2-3으로 패배한 한국 대표팀은 절체절명의 위기에 내몰렸다. 3차전에서 강호 포르투갈을 잡더라도 가나가 우루과이에 3골 차 이상으로 지는 경우 한국은 조 3위로 탈락할 처지였다. 그런데 한국이 포르투갈을 2-1로, 또 우루과이가 가나를 2-0으로 각각 이기며 운명의 여신이 한국을 향해 웃었다. 한국은 포르투갈에 이은 조 2위로 16강행 티켓을 거머쥔 반면 우루과이는 단 한 골이 모자라 조 3위로 처지며 분루를 삼켰다. 국내에서 초조하게 경기 결과를 기다린 축구 팬들은 일제히 “가나, 고마워요”를 외쳤다. 시합이 끝나고 보은(報恩)의 의미로 전국 편의점에서 가나 초콜렛이 불티나게 팔렸다는 후문이다.
최근 부임한 최고조(Kojo Choi·한국명 최승업) 주(駐)한국 가나 대사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 한국계 가나인이다. 춘천에서 태어나 중학교 2학년까지 마치고 선교사인 부모를 따라 가나로 건너갔다고 하니 사실상 100% 한국인인 셈이다. 가나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기업인으로 크게 성공한 그는 한국에 관심이 많은 가나 대통령으로부터 “가나·한국 두 나라 사이에서 교두보 역할을 해달라”는 특명을 받고 모국에 돌아왔다. 그간 외국의 주한 대사로 성 김(미국), 제임스 최(호주) 등 한국계 인사들이 더러 있었으나 아프리카 국가는 최 대사가 처음이다. “한국 젊은 세대가 더욱 적극적으로 가나 등 아프리카에 진출해 사업을 하고 시장을 개척했으면 좋겠다”는 최 대사의 바람이 꼭 이뤄지길 소망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