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간 5조원씩 향후 4년간 최대 20조원 재정 지원, 서울특별시에 준하는 위상과 지위 부여 등등.
정부가 행정통합하는 광역자치단체에 이 같은 인센티브안을 내놓자 전국에 ‘통합특별시’ 바람이 불고 있다. 가장 뒤늦게 뛰어든 광주와 전남이 올 7월 전남·광주특별시 행정통합 출범을 목표로 속도전을 펼치고 있다. 전임 윤석열정부 당시 전국에서 가장 먼저 행정통합의 깃발을 올린 대구와 경북은 다시 통합 논의에 불을 붙이고 있다. 대전·충남 역시 정부의 잇단 ‘당근’에 통합 가속 페달을 밟고 있다. 반면 부산·울산·경남 ‘메가시티’ 논의를 주도했던 부산과 경남은 6·3 지방선거 전 통합하지는 않겠다는 분위기다. 중앙정부의 재정지원 등 실질적 성과 대신 지속가능한 행정체제 개편 같은 내실을 다지겠다는 의지가 엿보인다.
◆정부 인센티브 파격… 행정통합 가속도
27일 각 광역·기초자치단체에 따르면 이 같은 중앙정부 행정통합 속도전에 반발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지역재정 목줄을 쥐고 있는 중앙정부가 행·재정 특혜를 내걸고 통합 쪽으로 유도한다는 주장이다. 그동안 지자체가 요구한 재정분권의 본질을 외면한 채 ‘사탕발림’만 한다는 볼멘소리가 나오고 있다. 행정통합이 지금처럼 6·3 지방선거 때 통합시장 선출을 목표로 강행할 경우 통합 이후 지자체 간 갈등은 ‘산 넘어 산’이 되지 않겠느냐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김민석 국무총리는 16일 광역 지방정부 간 행정통합시 부여하는 인센티브안을 내놓았다. 가장 눈길을 끈 대목은 파격적인 재정지원이다. 통합특별시에 연간 최대 5조원씩 4년간 최대 20조원 수준의 재정지원을 약속했다. 웬만한 자자체의 연간 예산에 버금가는 재정규모다. 여기에 행정통합 교부세와 행정통합 지원금을 신설해 국가 재원을 나눠주겠다는 재정분권도 시사했다.
정부는 말로만 그치지 않고 실행에 옮기기 위해 20일 관계부처 합동으로 통합정부 재정지원 태스크포스(TF)를 구성했다. TF는 대규모 재정을 어떻게 지원할지 등 세분화된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김용범 청와대 정책실장이 단장을 맡아 총괄한다.
통합특별시의 또 다른 당근은 공공기관 이전이다. 내년도 본격 추진되는 2차 공공기관 이전 시 통합특별시에 우선 고려한다는 점을 명문화했다. 통합특별시는 서울시에 준하는 위상과 지위는 물론 4명의 차관급 부단체장을 둘 수 있다.
이 같은 정부 발표에 이번 기회가 아니면 지역의 숙원사업과 미래 개척은 물론 다른 지역에 뒤처질 수 있다는 우려감이 제기되면서 그동안 주춤했던 광역 지자체 간의 행정통합 논의가 급물살을 타고 있다. 대구·경북은 꺼졌던 행정통합의 불씨를 다시 살려내고 있다.
이철우 경북지사는 “대구·경북의 최대현안인 신공항 조기 건설을 해결할 절회의 기회가 왔다”며 대구에 손을 내밀었다. 대구도 대구·경북이 가장 먼저 통합의 설계도를 그리고 초안까지 만들었는데, 정작 밥상은 다른 사람들이 먼저 먹게 생겼다며 경북과 손을 맞잡았다. 대구시장 출마를 선언한 국민의힘 주호영 의원은 “6·3 지방선거 전에 통합하지 못하면 알짜 공기업과 국책사업은 모두 호남으로 가버린다”며 지역 정치권 결단을 촉구했다.
◆시·도지사 소속 정당 따라 대정부 요구 달라
광주와 전남은 다음달 말 전남광주특별시 설치를 위한 특별법의 국회 통과를 목표로 법안 마련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강기정 광주시장과 김영록 전남지사, 지역 국회의원들은 이날 행정통합 관련 4차 간담회를 갖고 통합 자치단체 명칭을 전남광주특별시로 하고 약칭은 광주특별시를 사용하기로 합의했다.
통합 청사는 현재의 광주광역시 광주시청과 전남 무안군 전남도청, 전남 순천의 전남도청 동부청사 등 3곳을 균형 있게 운영하고, 일단 주청사는 따로 정하지 않기로 했다. 주사무소를 놓고 광주시와 전남도 간 파열음이 일자 통합시장에게 위임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강기정 광주시장은 “주사무소를 정하는 것 자체가 통합의 걸림돌로 작용해 7월 1일 출범하는 특별시장의 권한으로 두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광주·전남지역 국회의원 18명은 이달 중 행정통합을 위한 특별법을 공동 발의한다. 정치권의 합의와 주민공감대가 이뤄진 만큼 6개월 뒤 지방선거에서 전남광주특별시장을 선출하는 데 큰 장애물은 없는 셈이다. 올 7월 특별시가 출범하면 광주·전남은 분리된 지 40년 만에 다시 한뿌리가 된다.
부산·경남은 행정통합에 다소 느긋한 분위다. 2024년 행정통합 상생 합의 이후 공론화위원회 구성과 주민설명회, 여론조사 등을 거치며 비교적 긴 호흡으로 절차를 밟고 있다. 지방선거 통합시장이라는 시간표에 구애받지 않겠다는 얘기다.
5극의 통합 움직임에 3특 지자체는 불이익을 우려하며 공동 대응에 나서는 분위기다. 강원·전북·제주 등 기존 특별자치도와 세종시는 정부의 통합 인센티브 정책이 통합 특별시에 쏠리면서 기존 특별자치 체제가 상대적으로 소외될 수 있다는 점을 부각하고 있다.
◆재정분권·자치권한 미흡… “실질적 권한 달라”
정부의 최근 통합시 인센티브 발표안을 두고 지방에 실질적인 권한이양을 하지 못한다고 평가절하하는 목소리가 크다. 이미 지난해 10월 국회에 행정통합 법안을 제출한 대전과 충남의 반응은 싸늘하다. 국민의힘 성일종 의원이 대표 발의한 법안은 민주당의 비협조로 현재까지 국회 상임위원회에 계류 중이다. 정부와 국회의 도움을 얻지 못해 행정통합이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고 판단한 대전과 충남은 이번 정부 인센티브안이 자신들이 낸 법안보다 더 후퇴했다는 지적이다.
대전과 충남은 정부안이 한시적인 지원을 담아 재정분권이 어렵다는 점을 강조했다. 정부가 내놓은 20조원은 4년 한시적인 소모성 예산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국세와 지방세의 비대칭적인 구조의 벽이 지방분권을 가로막고 있는데, 부가가치세와 소득세·법인세 등 국세항목을 지방세로 넘겨 재정 독립의 발판을 마련해 줘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점을 의식한 때문인지 이재명 대통령은 21일 신년 기자회견에서 지방자체 재원 규모가 현재 28%인데, 40%는 돼야 한다며 한발 물러섰다.
김태흠 충남지사는 정부 발표안을 ‘사탕발림’이라며 직격탄을 날렸다. 김 지사는 20일 충남도의회 임시회에서 “정부가 발표한 행정통합 인센티브는 속 빈 강정과 같이 실질적인 내용이 부족해 항구적인 발전 대책이 될 수 있을지 의문”이라며 “중앙에 집중된 재정과 권한을 지방으로 과감하게 이양하는 것이 필수적”이라고 강조했다.
조직권과 인사권, 인허가권 등 핵심권한을 여전히 중앙부처에 두고 통합시가 어떤 자치역할을 할 수 있겠느냐고 반문하는 지적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이장우 대전시장은 “통합의 본질은 미국 주 정부의 실질적 권한 확보에 있다”며 “지자체 스스로 지역 특색에 맞는 조직과 사업을 설계하고 중앙정부의 간섭없이 처리할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