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일 서울 종로구 보쌈골목에서 20여년째 보쌈집을 운영하고 있다는 이모(72)씨가 텅 빈 가게를 둘러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예전 같으면 점심 식사하는 손님들로 인산인해를 이뤘을 시간이지만 테이블 40석 중 손님은 단 한 테이블에 불과했다. 지난주 한낮에도 영하 11도, 체감 영하 18도의 한파가 몰아치면서 손님이 뚝 끊긴 영향이 이날까지 미치고 있는 것이다. 이날 기온은 영하 4도였다. 이씨는 “우리 같은 족발·보쌈 장사는 겨울에 바짝 벌어서 여름을 버텨야 하는데 1월부터 마이너스 통장을 쓰고 있다”며 “거의 4년째 손님이 줄어드는 추세여서 사실상 앉아서 돈을 까먹고 있다”고 토로했다.
종로 보쌈골목은 이씨의 식당 내부와 마찬가지로 한산했다.
두꺼운 패딩에 털모자까지 눌러 쓴 시민 두 명만 갈 길을 재촉하고 있었다. 서울 종로구 소재 회사에 다닌다는 직장인 김모(38)씨는 “날이 너무 추우면 굳이 멀리 안 가고 구내식당에서 해결하거나 메뉴가 마음에 안 들면 배달시켜 먹는 게 보통”이라고 말했다.
28일 KB국민카드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이달 가장 추웠던 18∼22일 서울 내 음식점·주점 신용카드 결제액은 상대적으로 덜 추웠던 4∼8일에 비해 2.6% 줄었다. 특히 기온이 가장 많이 떨어지는 저녁시간 영업 비중이 높은 주점의 경우 3.9%나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혹한의 추위에 골목 상권이 얼어붙는 이유로는 배달 애플리케이션(앱) 활성화가 지목된다.
지금처럼 배달앱이 활성화되기 전에는 추워도 끼니를 해결하기 위해 식당을 찾아야 했지만 이제는 그럴 필요가 없어졌다는 것이다. 이를 반영하듯 같은 기간 배달앱 결제액은 3.2% 증가했다. 배달전문 찌개 전문점을 운영 중인 변모(38)씨는 “평소에 하루 평균 100건 정도의 주문을 받는데 지난주에는 120건 정도로 주문량이 늘었다”며 “날씨가 추운 영향 같다”고 했다.
자영업자 연령층이 높은 골목상권의 경우 배달플랫폼 이용률이 낮은 경향이 있어 강추위에 직격타를 맞을 수 있다는 우려가 있다.
생계를 위해 일은 계속해야 하지만 새로운 직업을 찾기도 어려운 고령 자영업자에게 배달앱 활성화에 혹한까지 겹치면 ‘외통수’나 다름없다는 것이다. 다른 보쌈가게 주인 송모(62)씨는 “이 골목에서 장사하시는 분들 거의 다 배달플랫폼에 가입하지 않았다”며 “복잡하고 우리처럼 마진 적게 남기는 가게들은 수수료를 감당하기가 어렵다”고 했다.
한파에 따른 자영업자 간 희비가 더욱 두드러지는 건 결국 장기화하는 내수 부진과 무관치 않다.
실제 지난해 11월 소매판매액 지수는 전월 대비 3.3% 급락해 작년 2월 이후 21개월 만에 최대 감소 폭을 기록했다. 신세돈 숙명여대 명예교수는 “내수경기 진작을 위해선 정부가 건설경기 회복과 일부 생활 품목에 대한 부가세 인하를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자영업자를 울거나 웃게 하는 강추위는 당분간 이어질 전망이다.
기상청은 북쪽에서 내려온 찬 공기 영향으로 29일 중부지방 아침 최저기온이 -15∼3도, 낮 최고기온은 -3∼7일 것으로 예보했다. 이는 평년보다 3∼4도 낮은 수준이다. 서울에는 이날 오후 9시를 기점으로 동북·서남·서북권에 한파특보가 다시 발효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