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 1월 노태우 대통령, 김영삼(YS) 민주당 총재, 김종필(JP) 공화당 총재가 청와대에 모여 3당 합당을 선언했다. 새로운 당 이름으로는 가칭 ‘민주자유당’을 제안했다. 일본의 보수 진영을 대표하는 정당으로 오랜 기간 집권 여당 자리를 지킨 자유민주당(자민당)과 비슷한데, 단어 순서만 살짝 바꿨다. 약칭 민자당에서 ‘민자’가 꼭 여자 이름 같다는 데 착안한 익살스러운 풍자가 한때 정가에서 유행했다. 애초 ‘통일한국당’도 유력한 후보였으나 작명가에게 문의했더니 “운이 나빠 단명할 것”이란 답변이 돌아와 포기했다는 후문이다. 노 대통령은 ‘민주화합당’을 선호했는데 그 또한 이런저런 이유로 막판에 제외된 것으로 전해진다.
통일한국당을 제치고 낙점을 받은 민자당은 그래서 장수했을까. YS가 대통령이던 1994년 12월 민자당에선 느닷없이 ‘당명 개정’이 화두로 떠올랐다. 이 과정에서 당 대표인 JP는 철저히 소외됐다. 일각에선 ‘YS가 JP와 그 측근들을 내쫓기 위한 수순’이란 관측까지 제기됐다. 하루는 고위 당직자 회의에서 JP가 참석자들에게 “당명 개정을 준비하고 있느냐”고 물은 뒤 “일본에선 ‘개혁하면서 진보하자’는 취지로 개진당(改進黨)이란 이름이 나오기도 했다”고 내뱉었다. 개진당은 누가 들어도 ‘개가 짖는다’라는 의미로 던진 독설이었다. 이듬해인 1995년 초 JP는 결국 민자당을 탈당해 자유민주연합(자민련)을 창당했다. 민자당은 3당 합당 직후의 외피를 완전히 벗고 YS 직할 체제로 거듭났다. 얼마 뒤 당명도 신한국당으로 바뀌었다.
“우리는 민주·복지·정의 사회를 구현하고 조국 통일의 꿈을 이루는 데 주도적 역할을 다하기 위하여 새로운 정당을 발족시키기로 했다.” 제5공화국 출범이 임박한 1980년 11월 민주정의당(민정당) 창당에 앞장선 이들이 발표한 글의 일부다. 1979년 12·12 군사 반란으로 군권을 잡은 데 이어 유신 헌법에 따른 대통령이 되며 정권까지 틀어쥔 전두환 장군과 신군부를 위한 정당이 출현한 것이다. 이후 5공 내내 그리고 6공 초반까지 여당 노릇을 한 민정당은 당명에서 보듯 ‘정의’를 유난히도 강조했다. 하지만 훗날 검찰의 5공 비리 수사를 통해 사회 정의 구현과는 거리가 아주 먼, 되레 불의에 가까운 정치 세력이었음이 여실히 드러났다.
제1야당인 국민의힘이 당명 개정을 공식화했다. 2020년 9월 이후 5년여 만에 국민의힘 간판이 내려지는 것이다. 브랜드 전문가 김수민 전 의원을 단장으로 하는 태스크포스(TF)가 꾸려져 당의 새 이름을 찾는 중이다. 보수 정당인 만큼 ‘자유’나 ‘공화’ 같은 가치를 강조하고 싶은데 자유당은 시민들의 저항 운동으로 무너진 이승만정부, 공화당은 대통령의 암살과 더불어 끝난 박정희정부 시절의 여당을 각각 떠올리게 만드니 대략 난감한 모양이다. 최근 언론 인터뷰에서 “당명을 꼭 바꿔야 하느냐”는 물음에 김 전 의원은 “생존을 위한 정체성 재정립으로 이해한다”고 답했다. 지금 국민의힘에 가장 시급한 것은 12·3 비상계엄 사태로 덧씌워진 ‘반(反)민주’ 이미지를 불식하는 것인데, 그렇다고 ‘민주’라는 단어를 쓰긴 어려우니 딜레마가 아닌가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