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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운동의 유산 [종교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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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제107주년 3·1절이었다. 3월 1일은 단순한 기념일이 아니다. 그것은 나라가 가장 어두운 시간을 통과하던 순간, 누가 먼저 일어섰는가를 묻는 날이다. 1919년 3월 1일, 서울과 평양, 선천과 정주의 거리와 장터에서 울려 퍼진 “대한독립 만세”의 함성은 무장한 군대가 아니라 신념을 가진 사람들로부터 시작되었다.

 

3·1운동의 도화선은 고종의 갑작스러운 서거였다. 독살설이 번지며 일제의 압제에 신음하던 민심은 격렬히 요동쳤다. 제1차 세계대전 이후 확산된 민족자결주의의 바람은 식민 지배의 사슬을 끊어내고자 했던 지식인과 종교인들 사이에서 독립의 열망을 깨웠다. 고종의 국장을 계기로 전국의 인파가 서울로 모여들었고, 식민 통치에 대한 응축된 분노와 염원이 3월 1일 독립선언으로 폭발했다.

 

우리는 흔히 3·1운동의 주역으로 민족대표 33인을 떠올린다. 그들은 천도교·기독교·불교 지도자들이었다. 당시 교회와 교당, 사찰은 거룩한 신앙의 장인 동시에 전국적인 조직망이자 두터운 신뢰의 공동체였다. 천도교 교주였던 손병희가 중심에 섰고, 기독교계에서는 장로와 목회자들이 참여해 교회 조직망을 통해 만세운동을 확산시켰다. 불교계에서는 시인이자 승려였던 한용운이 함께했다. 선언서 기초에는 지식인도 참여했지만, 그 조직적 기반은 종교였다.

 

중요한 것은 그들이 선언만 하고 물러난 사람들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민족대표 33인은 전원 체포되어 재판에 회부되었고, 모두 실형을 선고받아 옥고를 치렀다. 형량은 1년 6개월에서 3년 사이였지만, 그 의미는 숫자로 환산될 수 없다. 그들은 독립선언의 상징이었고, 감옥은 그 상징에 대한 대가였다. 사형을 당하지는 않았으나, 스스로 책임을 감당한 결단이었다.

 

그러나 3·1운동은 33인의 사건으로 끝나지 않았다. 전국에서 2천 회가 넘는 만세시위가 이어졌고, 일제의 무력 진압으로 수천 명이 목숨을 잃거나 체포되었다. 교회 마당과 장터, 산골 마을까지 만세의 물결이 번졌다. 학생과 상인, 농민과 종교인이 함께 거리로 나섰다. 종교인의 선언은 민중의 피와 눈물을 통해 시대의 외침이 되었다. 평안북도 정주에서 만세운동을 주도하다 징역 2년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른 문윤국 목사도 그 한 사람이다. 그는 출옥 후 자신의 재산을 처분해 상해 임시정부에 군자금을 전달했다. 신앙은 그의 내면에 머물지 않았고, 나라의 운명 앞에서 행동으로 나타났다. 훗날 정부가 그에게 건국훈장을 추서한 것은 개인의 신앙이 공적 책임으로 이어진 사례를 국가가 인정한 것이었다.

 

3·1운동은 종교가 정치 권력을 탐한 사건이 아니었다. 오히려 국가가 주권을 상실한 자리에서 종교가 공동체의 마지막 버팀목이 되었던 역사였다. 종교는 인간의 삶 전체를 관통한다. 정의와 자유, 존엄이 유린될 때 침묵하는 종교는 존재 이유를 잃는다. 그래서 위기의 시대마다 종교인은 누구보다 먼저 거리로 나섰다. 그것은 정교일치의 야망이 아니라 양심의 명령이었다.

 

정성수 종교전문기자
정성수 종교전문기자

오늘날 우리는 다시 묻는다. 종교와 정치는 완전히 분리될 수 있는가. 근대는 정교분리를 선언했지만, 그것은 종교를 침묵시키라는 명령이 아니었다. 오히려 국가 권력이 신앙을 지배하지 못하도록 하는 안전장치였다. 종교 역시 법의 테두리 안에서 시민적 책임을 다해야 한다. 문제는 종교라는 이름이 아니라 구체적 행위의 합법성이다.

 

그럼에도 특정 종교를 둘러싼 논란이 일어날 때마다, 우리는 역사적 기억을 너무 쉽게 지운다. 종교의 정치적 영향력 자체를 문제 삼는 단정적 언어는 위험하다. 3·1운동을 돌아보면, 종교는 나라가 위기에 처했을 때 가장 먼저 일어섰던 공동체였다. 믿음은 총칼 앞에서도 꺾이지 않았고, 감옥 안에서도 사라지지 않았다.

 

국가는 종교를 감시할 수 있다. 그러나 동시에 존중해야 한다. 위법 행위는 법으로 다스리되, 종교의 존재 자체를 의심하거나 단시안적 비난으로 몰아가는 태도는 신중하지 못하다. 3·1운동의 기억은 우리에게 말한다. 나라가 무너질 때 믿음은 침묵하지 않았다. 종교를 무분별한 비판이나 단편적인 잣대로만 재단해서는 안 될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해마다 3·1절이면 종교계가 성명을 통해 3·1 정신을 되새기고 자유와 정의의 가치를 환기하는 것은, 위기의 시대마다 국가 공동체를 위해 책임을 감당해 온 역사를 기억하며 앞으로도 그 소명을 다하겠다는 약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