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부 기자로 있다 보면 전세계 다양한 정치체제를 보게 된다.
사우디아라비아는 국왕이 국가원수다. 국왕직은 세습된다. 총리와 장관 등 정부 조직은 국왕이 임명한다. 선거제도가 없는 몇 안 되는 나라 중 하나다. 브루나이도 21세기에 술탄이 실권을 쥐고 있는 전제군주국이다. 중국은 국가주석 체제다. 간접선거를 통해 구성된 전국인민대표대회에서 국가주석이 결정된다. 5년 임기지만, 연임 제한은 없다.
영국이나 일본은 국왕이 있으나 통치하지 않는다. 대신 의원내각제를 도입, 국민이 의원을 뽑고, 다수당이 총리를 포함해 정부를 구성한다.
대통령이 있고, 국민이 선거로 선출한다고 해서 다 같은 것도 아니다. 종교지도자가 국가 최고 권력을 갖는 신정체제의 이란도 대통령이 있고, 대통령 선거를 한다. 이란 대통령은 경제·사회 실무를 총괄하지만, 실권은 최고지도자에 있다. 한때 반정부 시위가 발생했으나 민주주의를 주장하진 않았다. 러시아, 코트디부아르, 카메룬 등도 모두 대통령제를 내세우고 있지만,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알라산 우아타라 코트디부아르 대통령은 10년 넘게, 폴 비야 카메룬 대통령은 무려 40년 넘게 대통령직을 차지하고 있다.
각국이 나름의 역사를 거쳐 확립한 체제이고, 옳고 그름을 판단할 사안은 아니다. 완벽한 제도도 없다. 다만, 선거를 통해 민의를 정부에 전달하는 것이 결코 당연한 일이 아님을 느끼게 된다.
한국은 피를 흘려 민주주의를 쟁취했다. 1987년 6월 항쟁으로 대통령 직선제 개헌을 이끌어 냈다. 제13대 대통령 선거를 시작으로 1991년 지방자치제가 부활해 지방의회의원 선거를 치렀고, 1995년 지방자치단체장 직접선거도 도입됐다. 길다면 긴, 짧다면 짧은 정치사지만, 한국은 비교적 국민의 의사가 선거를 통해 잘 반영되고 있다.
부족한 점도 분명하다. 영국 정치경제분석기관 이코노미스트인텔리전스유닛(EIU)은 매년 ‘민주주의 지수(Democracy Index)’를 발표한다. EIU는 각국을 △가장 민주주의 수준이 높은 ‘완전한 민주주의’ △선거와 민주주의 제도는 존재하지만 문제가 있는 ‘결함 있는 민주주의’ △민주주의와 권위주의가 섞여 있는 ‘혼합 체제’ △민주주의가 작동하지 않는 ‘권위주의’로 분류한다.
올해 발표된 ‘민주주의 지수 2025’를 보면 한국은 결함 있는 민주주의 그룹에 속한다. 미국, 일본, 인도, 이탈리아 등도 있다. 한국은 2020년 이후 완전한 민주주의를 유지해왔으나 2024년 비상계엄 선포와 해제 과정에서 정치적 불안정성이 부각되며 등급이 하락했고, 2025년에도 회복되지 않았다.
결함 있는 민주주의 그룹에서 공통으로 지적되는 특징은 정치 양극화와 정부 비효율, 낮은 정치 신뢰 등이다. 한국은 이렇지 않다고 부인할 수 없는 게 사실이다.
상대를 설득하기보다 적으로 규정하고 비판하는 데 익숙하다. 정치권에서는 정책 대결보단 진영 대결이 앞선다. 상대 후보를 향한 네거티브 공세는 선거기간 빠지지 않는 레퍼토리다. 국회는 대화와 타협, 합의의 모습보다는 대립과 충돌의 모습으로 비칠 때가 많다. 온라인상에서는 특정 사안을 두고 건강한 토론이 벌어지지 않고 찬반으로 나뉘어 상대를 비방하는 것을 쉽게 볼 수 있다. 부정선거론도 사라지지 않는다.
한국 사회가 안고 있는 이런 고민을 개선할 방안을 찾다 보면 결국 다시 선거로 되돌아올 수밖에 없다. 선거는 갈등과 의견 충돌을 제도 안에서 해결할 수 있는 수단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는 투표권의 가치는 결코 작지 않다. 지난해 정치적 혼란 수습도 헌정 절차와 선거를 통해서였다.
3일은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일이다. 내 삶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내가 사는 지역의 경제와 교육, 복지, 환경을 책임지는 일꾼을 뽑는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지지 정당이 더 큰 선택의 기준이 될 수 있고, “누가 돼도 똑같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여러 번의 선거가 쌓이며 지방자치가 발전한 만큼 이번 선거를 통해 또 나아갈 것이다. 세상을 바꾸는 모든 변화는 한 표에서 시작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