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순방 중인 이재명 대통령이 더불어민주당을 향해 “신념의 언어보다 책임의 언어에 더 집중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내면서 당내 파장이 이어지고 있다. 이 대통령이 특정인을 지목하지는 않았지만, 당 안팎에서는 차기 전당대회 연임 가능성이 거론되는 정청래 대표의 강성 노선을 염두에 둔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왔다.
이 대통령이 유럽 순방 도중 국내 정치, 특히 여당을 겨냥한 장문의 메시지를 낸 것은 6·3 지방선거 이후 여권 전반에 켜진 경고등과 맞물려 있다. 선거 결과와 최근 국정 지지율 하락세를 두고 이 대통령이 직접 “죄송하다”고 공개 반성한 상황에서, 집권 여당 역시 진영 논리와 선명성 경쟁보다 포용적이고 책임 있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는 주문을 담은 것으로 풀이된다.
①李대통령 “여당은 능력과 실적, 포용과 통합이 중요”
이 대통령은 13일(현지시간) 이탈리아 현지에서 엑스(X)에 ‘여당과 야당 그리고 정치적 책임’이라는 제목의 글을 올려 “야당은 여당과 정부에 대한 감시·견제·공격이 중요하지만 여당은 주어진 권력으로 책임을 지는 능력과 실적, 포용과 통합이 중요하다”며 “야당이 군대나 창과 가깝다면 여당은 농사와 그릇에 가깝다는 게 제 생각”이라고 했다.
이 대통령은 “여당의 열정은 ‘우리 진영’이 아니라 ‘국민 전체’를 향해야 한다”면서 “대결과 배제보다 끊임없는 대화 소통을 통해 갈등을 조정하고 반발을 최소화하는 ‘큰 그릇’ 역할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이 대통령은 “지금 당장 우리 손에 이 나라의 운명과 5200만 국민의 삶이 달려 있다. 더 크게, 더 넓게, 더 멀리 보며 더 많은 국민과 함께 가자”고 덧붙였다.
이 대통령은 철학자 막스 베버의 말을 인용해 정치인이 지녀야 할 세 가지 자질로 ‘사익이 아닌 대의에 대한 열정’, ‘자신의 행위가 초래할 결과에 대한 무한한 책임감’, ‘현실과 이상 간의 균형감각’을 들었다. 이어 “이상이 없는 현실주의자는 눈앞의 이익만 좇는 기회주의자가 되고 현실이 없는 이상주의자는 해결책 없이 편 가르기에 집중하는 무능한 선동가가 된다”며 “정치가 현실의 제약과 인간의 한계를 무시하고 이상만 고집하면 독선과 진영에 빠지게 되고, 이상을 잃어버리면 단순한 권력 유지로 전락하기 때문에 현실을 바꾸려면 가치와 지향을 잊지 않되 역설적으로 현실을 냉정하게 바라보는 균형감각이 필수적”이라고 덧붙였다.
②李 “신념의 언어보다 책임의 언어에 더 집중해야”
이 대통령이 특정 인물이나 세력을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8월 전당대회를 앞두고 당내 계파 갈등이 심화하는 가운데 정 대표가 ‘보완수사권 전면 폐지’ 등을 다시 내걸며 강성 지지층에 소구하는 메시지를 낸 직후 나온 글이라는 점에서 주목된다. 이 대통령이 “신념의 언어보다 책임의 언어에 더 집중해야 한다”고 밝힌 것은 집권 여당의 무게중심을 투쟁과 진영 논리에서 성과와 책임으로 옮기라는 뜻으로 읽힌다.
이 대통령은 엑스 글에서 ‘능력과 실적’, ‘포용과 통합’, ‘대화와 소통’을 키워드로 내세우며 수차례 여당으로서의 역할과 책임을 당부했다. 계속되는 해외 일정 속에서도 지난 10일 엑스에 지지율 하락에 대한 반성 메시지를 낸 데 이어 여당을 향한 장문의 글까지 게시한 건 이례적이다. 그만큼 지방선거 이후 여권의 흐름을 바라보는 이 대통령의 인식이 엄중하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이번 메시지가 나온 시점도 예사롭지 않다. 이 대통령은 이미 지난 8일 취임 1주년 기자회견에서 여당에 변화를 주문했다. 당시 이 대통령은 “여당은 포용·통합의 역할을 잘해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후에도 민주당 안팎에서는 전당대회를 앞둔 계파 간 긴장과 강성 지지층을 의식한 메시지가 이어졌다. 이에 이 대통령이 일주일도 채 지나지 않아 다시 “여당의 열정은 ‘우리 진영’이 아니라 ‘국민 전체’를 향해야 한다”고 밝히며 여당의 진영 논리를 거듭 경계한 셈이다.
③李 “불가피한 돌파 시에는 깨지는 이들에 대한 배려·공감도 잊지 말아야”
정 대표가 지난 11일과 12일 ‘1인 1표제’, ‘보완수사권 전면 폐지’ 등 강성 지지층을 겨냥하는 듯한 페이스북 글을 연이어 게시한 직후 이 대통령의 메시지가 나왔다는 점도 주목받는 대목이다. 여당 지도부는 해당 메시지가 정 대표를 향한 것이 아니라는 입장이지만, 정 대표가 이 대통령 서울공항 환송 행사에 참석하지 못했던 점 등과 맞물리며 정치권에서는 사실상 정 대표를 겨냥한 것 아니냐는 해석이 잇따랐다. 이 대통령은 “강한 힘이라면 모든 것을 휩쓰는 격류보다는 모든 것을 담아 정화하는 큰 바다가 더 좋겠다”며 “불가피하게 깨고 나가야(돌파)한다면 깨지는 이들에 대한 배려, 공감도 잊지 말아야 한다”고 적었는데, 강한 추진력만큼이나 포용과 책임을 갖춰야 한다는 주문으로도 읽힌다. 강성 일변도의 목소리를 내는 여당 지도부를 염두에 둔 우회적 비판인 셈이다.
이 대통령 입장에서는 선거 이후 뚝 떨어진 국정 지지율을 다시 끌어올려야 하는데 여당에선 별다른 변화가 감지되지 않고, 권력 투쟁과 지지층 내 갈등만 갈수록 부각되는 게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는 점 역시 이번 메시지의 배경으로 꼽힌다. 청와대 내부에선 정 대표의 ‘국민은 영원하고, 정권은 짧다’는 발언을 두고 격앙된 기류도 감지되는 가운데 대외적으로는 관련 언급을 자제하며 상황을 지켜보는 분위기다.
민주당 지도부는 대통령 메시지에 대한 확대해석을 경계했다. 조승래 사무총장은 14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여당이 지방선거 이후에 어떤 자세를 갖고 국정 운영을 해야 될 것인지에 대해 책임성을 강조하기 위한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며 “그걸 특정 인사나 지도부로 좁혀서 접근하는 것은 대통령의 뜻을 왜곡하는 거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조 총장은 그러면서도 “선거 국면 속에서 있었던 여러 현안에 대한 당과 정부 인사들의 메시지가 있었다”며 “그런 메시지가 실제 여론에 어떤 영향을 줬는지를 당연히 평가해야 한다”고 말했다. 조 총장은 ‘공소취소 특검’, ‘스타벅스 탱크 논란’ 등을 현안 예시로 들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