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덜란드는 1959년 북해에서 천연가스 유전을 발굴하는 잭팟을 터뜨렸다. 이후 천연가스 수출에 매진하면서 호황을 누렸으나 석유제품 외 제조업의 경쟁력은 후퇴했다. 수출로 유입된 막대한 외화가 네덜란드의 통화가치를 밀어 올렸고, 이는 제조업의 가격 경쟁력을 갉아먹는 결과를 초래한 것이다. 시중에 돈이 넘치면서 물가는 급등했고, 임금도 가파르게 올랐다. 여기에 1970년대 두 차례에 걸친 석유파동으로 임금은 더욱 뛰었다. 게다가 정부가 수출로 수입이 늘자 복지예산을 앞다퉈 증액했고, 실업률은 한때 12%를 넘기도 했다. 결국 세금과 사회보장 부담금까지 떠안은 기업이 비용 상승에 견디지 못해 정리해고에 나서면서 노사 분쟁이 끊이질 않았다. 영국 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이를 ‘네덜란드병’이라 이름 지었다. 네덜란드는 1982년 노·사·정 대타협의 세계적인 모델이 된 바세나르 협약을 계기로 비로소 경제 회복에 성공했다.
1960년대 말 북해 유전을 발견한 노르웨이는 다른 길을 걸었다. 국가가 운영하는 석유공사 수익을 재원으로 1990년 국부펀드를 조성해 오늘날 약 2조달러에 달하는 세계 최대의 연기금으로 성장시켰다. 정부가 사회적 합의를 통해 복지확대의 속도 조절에 나선 덕에 연기금 예상 수익률(연 3%) 범위 안에서만 국가 예산의 부족분을 메운다는 원칙도 철저히 지켜졌다.
한국은행이 최근 보고서에서 “반도체 호조가 장기간 지속할 경우 특정 부문의 높은 임금과 투자 수익률이 여타 부문의 인력·투자를 흡수해 성장 기반을 잠식하는 ‘네덜란드병’ 가능성에도 유의해야 한다”고 했다. ‘반도체 착시’에 빠져 내수·고용 부진 등 경고음을 무시해선 안 된다는 호소로 읽힌다. 호황에 취해 미래세대의 몫을 앞당겨 써버리는 우를 범하지 말라는 지적으로도 들린다.
내년 예산을 역대 최대인 ‘800조원+α’ 규모로 편성할 방침인 정부는 장기 추세를 웃도는 추가 세수를 미래대응기금으로 적립해 청년과 성장동력, 지방, 인재 등 4대 분야에 집중 투자하기로 했다. 수출로 벌어들인 수익을 미래세대의 부로 전환하는 데 성공한 노르웨이의 길을 따를 것인지, 방만한 사회보장제도에 쏟아부었던 네덜란드의 전철을 밟을 것인지 답은 자명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