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일 강원 춘천남부노인복지관. 한쪽에서는 바둑돌 놓는 소리가 다른 쪽에서는 탁구공 튀는 소리가 들려왔다. 여느 노인복지관과 다를 것 없는 풍경이었다. 그런데 복도 끝 한 강의실에서는 묵직한 힙합 비트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나는 작살 왜냐 간지작살 / 늦게 시작해도 랩으로 박살”
문을 열자 선글라스에 볼캡을 눌러쓴 어르신들이 헐렁한 힙합 티셔츠에 체인을 걸친 채 비트에 몸을 맡기고 있었다. 자신의 인생을 랩으로 풀어내는 일흔 넘은 시니어 래퍼들이었다.
트로트가 익숙한 세대. 하지만 이들의 ‘최애’는 임영웅이 아니었다. 래퍼 박재범이다.
‘작살’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는 배은옥씨(68)는 지난해 랩 교실 수강생들과 함께 힙합 오디션 프로그램 ‘쇼미더머니’에 도전했다.
“그 거대한 데 갔다 왔다는 자체가 자부심이 대단하죠. 그것만 해도 영광이에요.”
‘숙디’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는 신명숙씨(74)도 가장 좋아하는 가수로 박재범을 꼽았다.
“‘쇼미더머니’에 나오는 박재범 같은 래퍼들, 너무 좋아하고 우상이고 그래요. 이 나이에도 도전해보면 건강도 찾고 즐거움도 찾고 일거양득이겠다 싶었죠.”
어르신들의 랩 사랑은 복지관 풍경까지 바꿔놨다. 지난해 동아리로 시작한 시니어 랩 활동은 큰 호응을 얻으며 올해 정규 강좌가 됐다. 수강 신청이 시작되면 정원이 금세 차고 길게는 6개월을 기다려 수업에 들어온 이도 있다.
그렇다면 어르신들은 왜 이토록 랩에 빠졌을까. 이유는 의외로 단순했다. 랩은 자신의 이야기를 가장 솔직하게 털어놓을 수 있는 장르였기 때문이다.
자식을 키우며 버텨온 시간, 가족을 향한 마음, 지나온 세월의 기쁨과 후회까지. 평범했던 삶은 한 줄 한 줄 가사가 됐고 비트 위에서 새로운 노래가 됐다.
신씨에게 랩은 특히 각별하다. 십수 년간 남편과 어머니를 잇따라 간병하며 견뎌온 세월. 그 아픔이 고스란히 가사가 됐다. 힘들었던 마음을 꾹꾹 눌러 담아 랩으로 뱉어내자 오히려 후련해졌다.
“여기서는 그 모든 걸 잊고 맨날 웃어요. 딴 세계인 줄 알았는데 발을 디뎌놓으니 좋은 세상이 펼쳐지더라고요. 앞으로도 뭐든 도전하려고요.”
가족들도 달라진 모습을 보며 놀랐다. 배씨는 손녀의 말을 떠올리며 웃었다.
“BTS를 제일 좋아하는 손녀가 그러더라고요. ‘BTS보다 우리 할머니가 더 멋있고 랩도 더 잘한다’고.”
평균 연령 70대. 힙합으로 인생의 새 페이지를 써 내려가는 춘천 시니어 래퍼들의 이야기는 세계일보 유튜브 <요즘으른들> 6화에서 만나볼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