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의 거리가 달라지고 있다. 부산은 지난해 7월 세계디자인기구(WDO)로부터 ‘2028 세계디자인수도(WDC)’로 선정됐다. 인구 1300만명의 중국 항저우와 경쟁해 얻은 성과다. ‘모두를 포용하는 도시, 함께 만들어 가는 디자인’을 주제로 시민 참여형 공공디자인을 추진하며 디자인을 도시의 불편을 줄이고 일상을 바꾸는 도구로 확장하고 있다. 이 같은 변화의 현장에서 부산의 이야기와 사람을 디자인으로 연결해 온 기업이 있다. ㈜디자인부산은 30년 가까이 쌓은 현장 경험을 바탕으로 시각·제품·웹·서비스 디자인부터 관광·캐릭터 상품, 의료·생활용품 연구개발(R&D)까지 사업 영역을 넓히며 동남권 종합디자인 산업을 이끌고 있다
◆인쇄물서 디자인 융합 전문기업으로
디자인부산의 뿌리는 1996년 문을 연 디자인회사 ‘디자인글꼴’이다. 인쇄·출판 디자인으로 경험을 쌓은 뒤 2009년 디자인부산을 설립했다. 두 회사는 별도 법인으로 각자의 전문 분야를 맡으면서 필요한 사업에서 협력하고 있다. 출범 당시 5명이던 직원은 현재 두 회사를 합쳐 디자이너와 연구원 25명, 포토그래퍼와 기획 인력 4명을 포함해 약 50명으로 늘었다.
성장의 바탕은 기획과 시각디자인이다. 자료 조사와 콘셉트 기획부터 촬영·디자인·제작까지 연결하는 통합 프로세스를 구축하고, 이를 브랜드 개발과 홍보물, 웹·디지털 콘텐츠로 확장했다. 제품과 시각디자인을 결합한 R&D 지원 역량도 갖췄다. 15년 이상 경험을 쌓은 분야별 리더들이 프로젝트 완성도를 높이고 서비스디자인을 기반으로 제품과 공간, 디지털 서비스 전반을 설계한다.
지역 디자인 시장의 한계 속에서도 특정 분야에 의존하기보다 제품·브랜드·공공·디지털 디자인 역량을 고루 키웠다. 산업디자인전문회사 등록과 기술벤처·이노비즈 인증, 기업부설연구소 운영을 통해 전문성도 강화했다. iF와 레드닷 디자인 어워드 수상은 국제적인 경쟁력을 보여 준다.
특히 디자인을 개별 결과물을 만드는 작업에 한정하지 않고 기획부터 제작, 활용까지 연결하는 데 주력한다. 다양한 산업과 공공 영역의 요구에 대응할 수 있는 융합 역량이 사업 확장의 기반이 됐다.
지역사회와의 상생도 이어 가고 있다. 디자인글꼴은 장애인표준사업장으로 장애인에게 안정적인 일자리를 제공하고 복지기관 기부를 지속하며 디자인으로 얻은 성과를 사회에 환원하고 있다.
◆고등어 캐릭터부터 의료용품 R&D까지
디자인부산의 대표 콘텐츠는 부산의 시어인 고등어를 부산 사투리 ‘꼬등어’로 재해석한 캐릭터 ‘발달린꼬등어’다. 2015년 산업통상자원부 우수디자인 사례로 선정됐고, 이듬해 3D 애니메이션으로 영역을 넓혔다. 문구·피규어·생활용품 등으로 상품을 확장하며 부산 관광기념품으로도 이름을 알렸다.
기장 미역에서 출발한 ‘만다꼬친구들’과 부산의 상징물을 담은 ‘그래픽부산’, 문구 브랜드 ‘디자인아이비’도 자체 브랜드다. 디자인글꼴이 개발하는 가덕도신공항 캐릭터 ‘가비’ 굿즈 역시 지역의 이야기를 상품으로 연결하는 사례다.
바다를 중심으로 한 디자인도 강점이다. 해양자원을 활용한 캐릭터와 관광기념품을 넘어 어촌·항포구 공간 개선, 특산물 브랜드, 해양관광 콘텐츠로 사업을 확장하고 있다. 지역 자원에 디자인을 더해 관광과 산업의 경쟁력을 높이겠다는 구상이다.
공공디자인과 서비스디자인에서는 현장 중심의 접근이 두드러진다. 전통시장 사업에서 간판과 안내사인을 새로 설치하는 데 그치지 않고 손님의 이동 동선과 주차·결제·휴식 과정에서 발생하는 불편을 찾아 개선한다. 이용자의 관점에서 문제를 발견하고 실제 운영 여건을 반영해 개선안을 만드는 것이 핵심이다.
이 같은 경험은 의료·생활용품 개발에도 적용된다. 환자와 보호자, 간호 인력이 제품을 사용하는 모습을 관찰하고 시제품을 반복적으로 개선하는 방식이다. 착좌형 링거거치대와 목욕의자, 목발 등이 대표적이다. 디자인융합개발연구소를 중심으로 정보통신기술(ICT)과 사물인터넷(IoT)을 접목한 R&D를 수행하며 기획·디자인에서 엔지니어링, 시제품 제작과 실용화까지 연결하는 역량을 키웠다.
◆부산 지역 디자인 생태계 키운다
디자인부산의 성장은 지역의 지원과 협력 속에서 이뤄졌다. 부산시와 부산디자인진흥원의 디자인 개발·사업화, 전시·마케팅 지원이 성장의 밑거름이 됐다. 2014년 부산 기업 최초로 ‘대한민국 우수디자인전문회사’에 지정된 데 이어, 대한민국디자인대상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상과 부산국제디자인어워드 대상 등도 받았다.
디자인부산은 부산디자인진흥원의 ‘부산어린이대공원 어린이 복합문화공간 조성 디자인 용역’을 수행 중이며, 디자인글꼴은 부산지식재산센터의 지원사업을 통해 남구 용호골목시장 공동브랜드 개발을 진행하고 있다.
2028 세계디자인수도 부산은 지역 디자인업계에 새로운 기회이자 책임이다. 디자인부산은 시민참여형 공공디자인과 전통시장·골목상권, 어촌·항포구의 공간 개선, 지역 캐릭터를 활용한 홍보 등에 힘을 보탤 계획이다. 지역 제조기업과의 협력을 강화하고 청년 디자이너들이 부산에서 일하며 성장할 수 있는 기반을 넓히는 데도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세계디자인수도 사업이 일회성 행사나 시설 정비에 그치지 않으려면 시민이 변화를 체감하고 지역 기업이 지속적으로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 디자인부산은 그동안 쌓은 공공·산업 분야의 경험을 바탕으로 지역 자원을 발굴하고, 이를 실제 사업과 일자리로 이어 가는 데 핵심 역할을 수행할 계획이다.
서무성 대표는 “부산에는 디자인으로 꺼내지 못한 이야기가 아직 많다. 좋은 디자인 일자리가 부산에 있어야 청년들이 지역을 떠나지 않는다”며 “부산에서 받은 도움을 지역에 돌려주고, 디자인 기업들이 함께 성장하는 생태계를 만드는 데 힘을 보태겠다”고 말했다.
◆서무성 (주)디자인부산 대표 “디자인은 사람 이해하는 일 이야기·불편을 가치로 바꿔”
“디자인은 결과물을 예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지역의 이야기와 사람들의 불편을 가치로 바꾸는 일입니다.”
서무성 ㈜디자인부산 대표는 30년 가까이 디자인 현장을 지켜 온 경험을 이렇게 요약했다. 화면과 종이 위에서 완성도를 고민하던 시절을 지나 시장 상인과 주민을 만나고 실제 사용자의 불편을 살피면서 디자인의 본질을 깨달았다는 것이다.
서 대표는 22일 세계일보와 인터뷰에서 “처음에는 좋은 디자인의 답을 화면과 종이 위에서만 찾으려 했지만, 시장 골목에서 상인들과 이야기하고 병원에서 환자들의 불편을 지켜보며 디자인은 결국 사람을 이해하는 일이라는 것을 배웠다”고 말했다. 그는 “화려하지 않아도 사람의 불편을 덜어 주고 오래 쓰이는 디자인을 하고 싶다”고 했다.
서 대표는 지역사회와 직원들에 대한 감사도 전했다. 그는 “어려운 순간마다 부산시와 부산디자인진흥원, 지역 기업과 상인, 주민들이 곁에 있었다”며 “작은 사무실에서 시작해 20~30년 가까이 함께해 준 직원들이 있었기에 지금의 회사가 있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부산에서 받은 것을 부산에 돌려주는 것이 지역에서 성장한 기업의 역할”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인공지능(AI)이 디자인 작업의 속도와 방식을 바꾸는 시대에도 경쟁력은 소통에 있다고 본다. AI를 활용해 시안을 빠르게 만드는 능력은 중요하지만 고객의 요구와 실제 사용자의 불편을 파악하는 일은 디자이너의 몫이라는 설명이다.
서 대표는 “AI는 손을 빠르게 해 주지만 거래처와 마주 앉아 고민을 나누는 일은 여전히 디자이너의 몫”이라며 “디자인의 완성도를 결정하는 것은 결국 도구가 아니라 소통”이라고 강조했다.
그에겐 부산의 지역 자원과 산업을 디자인으로 연결하는 일도 중요한 과제이다. 바다와 산, 골목과 시장 등 지역의 이야기를 발굴해 기업과 소상공인의 경쟁력을 높이고 청년들이 부산에서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는 소신에서다.
서 대표는 ‘2028 세계디자인수도 부산’에 대한 기대도 나타냈다. 그는 “세계디자인수도는 어느 한 기관이나 회사의 행사가 아니라 부산 디자인업계 모두의 일”이라며 “지역 디자인 기업으로서 현장에서 맡은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고, 부산에서 성장한 청년 디자이너들이 지역에 머물며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데 기여하겠다”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