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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산, 자체 터빈 키우고 지멘스와 15㎿급 동맹 ‘투트랙’ [심층기획-韓 해상풍력 ‘트릴레마’]

<중> 15MW 벽 앞에 선 K-터빈

국내 첫 10㎿급 국제 형식인증 취득
‘저풍속 특화설계’ 앞세워 공급 확대
15㎿ 기술 부재 대응 협력생산 나서
年 72기 조립·시험 가능한 설비 갖춰
사업 규모·풍속 따라 맞춤 적용 검토
수주 실적 향상 과제… 공공시장 기대
‘싸게, 많이, 국산화’로 요약되는 우리나라 해상풍력 정책의 세 가지 목표는 한꺼번에 달성하기 어렵다. 해상풍력 트릴레마(3중 딜레마)다. 세 목표가 가장 첨예하게 부딪치는 게 터빈이다. ‘싸게, 많이’ 보급하기 위해서는 해외 시장 주류인 15㎿급 터빈을 쓰는 게 유리하지만 국내 기업이 자체 개발한 터빈은 아직 10㎿급이 최대다. 이런 트릴레마 상황에서 특정 규모의 터빈에 집중하는 식으로 ‘하나의 길’만 가서는 생존이 어렵다. 현 시점 낙찰 사업에 참여하고 있는 국내 터빈 기업 두산에너빌리티와 유니슨은 두 가지 혹은 세 가지 길을 동시에 가려고 하고 있다. 결코 만만찮은 과제다. 경남 창원 두산에너빌리티 풍력공장과 사천 유니슨 공장을 찾아 ‘15㎿ 벽’ 앞에 선 국산 터빈의 현주소를 살펴봤다.

 

 

“10㎿(메가와트)급 터빈이 당분간 시장에서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을 겁니다.”

지난 20일 경남 창원 두산에너빌리티 풍력공장 현장. 박지웅 풍력영업1팀장은 “글로벌 대형화 추세에 따라 15㎿급으로 전환돼 가겠지만 국내 공급망과 기반시설 여건상 급속도로 전환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길이 207m, 폭 70m 공장 한가운데에 거대한 나셀 1기가 놓여 있었다. 작업자 3명이 나셀 옆면에 덮개를 붙이고 있었다. 나셀은 발전기와 각종 기계장치가 들어가는 터빈 기계실이다.

이 나셀은 전남 영광 야월해상풍력(104㎿)에 공급될 DS205 터빈 8㎿ 모델 13기 중 1호기였다. 나셀은 운반 차량에 실려 공정을 옮긴다닌다는 게 두산 측 설명이었다. 1호기 나셀을 실은 운반 차량이 멈춰 서 있는 바닥에는 안전 구역을 표시하는 붉은 레이저 불빛이 비쳤다. 1호기 나셀 뒤편으로 2호기, 3호기 등이 차례로 줄지어 있었고 직원들이 오가며 작업을 이어가고 있었다. 이 공장의 연간 터빈 생산 가능 규모는 22기다.

지난 20일 경남 창원 두산에너빌리티 풍력공장에서 DS205 터빈 8㎿ 모델이 제작 중인 모습. 이는 전남 영광 야월해상풍력(104㎿)에 공급될 터빈으로 두산에너빌리티가 국내 기술로 자체 개발한 모델이다.  두산에너빌리티 제공
지난 20일 경남 창원 두산에너빌리티 풍력공장에서 DS205 터빈 8㎿ 모델이 제작 중인 모습. 이는 전남 영광 야월해상풍력(104㎿)에 공급될 터빈으로 두산에너빌리티가 국내 기술로 자체 개발한 모델이다.  두산에너빌리티 제공

우리나라 ‘풍력 터빈 맏형’ 두산은 자체 10㎿급 터빈으로 국내 시장 물량을 최대한 받아내면서 현 시점 기술이 확보되지 않은 15㎿급 터빈 시장엔 유럽 기업인 지멘스가메사와 손잡고 물량을 확보하는 전략을 택했다.

박 팀장은 “국내 시장은 유럽, 대만 등 해상풍력이 잘 성숙된 시장과 비교할 때 상대적으로 성숙도가 낮은 시장이다. 공급망·기반시설 등에서 아직 많이 부족한 게 현실”이라며 “사업 규모 측면에서 100㎿ 이하 소규모, 100∼400㎿ 중규모, 500㎿ 이상 대규모 등 다양한 사업이 계획되고 추진 중”이라고 말했다. 두산은 중·소규모 사업과 풍속이 낮은 단지의 경우 10㎿ 터빈을, 대규모 사업과 풍속이 높은 단지에 대해서는 15㎿급 터빈 적용을 우선 검토하고 있다고 했다.

두산은 야월해상풍력에 공급하는 DS205 터빈 8㎿ 모델을 개량해 이미 지난해 국내 최초로 10㎿ 터빈의 국제 형식인증을 취득했다. 현재는 DS205 터빈 10㎿ 모델을 기반으로 국산화율을 70% 이상으로 끌어올린 한국형 10㎿ 터빈인 ‘케이윈드’(K-Wind)를 개발 중이다. 내년 실증·인증 완료가 목표다.

두산 10㎿ 터빈이 강점으로 내세우는 건 저풍속에 특화한 설계다. 동급 모델보다 로터(회전부) 지름을 늘려 약한 바람에도 발전량이 충분히 나오도록 했다는 설명이다.

15㎿급 터빈 시장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창원 공장 부지 내 지멘스가메사 협력 공장을 설치해놓은 상태다. 여기서 지멘스가메사 14㎿ 나셀과 허브를 조립·시험한다. 연간 72기 조립·시험이 가능하도록 준비를 해놨다. 두산 측은 “지멘스가메사와의 기술이전 협력은 상호 성실히 협상을 진행하고 있다”고 했다. 올해 상반기 해상풍력 경쟁입찰 시장에서 낙찰된 해송3(504㎿)·해울이2(532㎿)는 이 공장에서 나올 14㎿ 터빈을 쓰겠다는 계획으로 낙찰된 사업이다.

 

두산이 이렇게 채비를 갖췄지만 아직까지 수주가 충분한 상황은 아니다.

두산은 2005년 풍력사업에 착수했다. 지난해 12월 기준 국내에 공급한 풍력 설비는 347.5㎿다. 이 중 해상풍력이 199.0㎿다. 탐라(30㎿), 서남해 1단계(60㎿), 제주 한림(100㎿) 등 국내 해상풍력 단지 대부분에 터빈을 댔다.

그러나 해상풍력 수주는 2020년 한림해상풍력 이후 지난해 12월 공급 계약을 맺은 야월해상풍력이 처음이다. 현재 한창 생산 중인 터빈이 야월해상풍력에 실제 납품되는 건 2028년쯤으로 예상된다. 야월해상풍력 외 다른 사업의 경우 구체적인 납품 일정이 미정인 상태다.

두산 측은 최근 2∼3년 사이 국내 시장에 대해 “다양한 제도가 새로 만들어지거나 바뀌면서 일종의 혼란기”라며 “해상풍력에서 가격 인하 압력이 상당히 증가하고 있다. 모든 공급망에 대한 가격 인하 압박이 증가한다는 게 큰 변화”라고 말했다. 실제 일부 단지는 사업성 악화로 지연되고 있다고 했다.

고객인 개발사 요구를 충족하기 위해 터빈 기업은 적정 투자를 해야만 한다. 불확실성은 이 투자를 위축시킬 수밖에 없다. 두산 측은 “민간 개발사는 실적과 품질로 검증된 동시에 초대형 터빈을 원하고, 여기에 가격경쟁력까지 갖추길 요구하고 있다. 이 중에서 가장 중요하게 보는 건 실적과 품질”이라며 “국내에서 취약한 기반시설을 제조사가 얼마나 부담할 수 있는지도 중요하게 본다”고 했다. 구체적으로 건설·유지보수 기간 중 해상풍력설치선(WTIV) 등 선박·장비 조달 책임까지 부담하게 한다는 것이다.

두산이 기대를 거는 건 민간과 구분돼 운영되는 공공 주도 시장이다. 정부는 지난해 해상풍력 경쟁입찰 시장에 ‘공공주도형 트랙’을 처음 도입했다. 공공기관과 지방공기업이 참여하는 해상풍력 사업을 일반 입찰과 따로 뽑는 방식이다.

첫해 공고물량은 500㎿ 내외였고, 최종적으로 4개 사업(689㎿)이 선정됐다. 올해 상반기엔 400㎿ 내외가 공고됐지만 금오도해상풍력(160㎿) 1건만 낙찰됐다. 이들 사업 모두 국내 기업 터빈이 적용된 것으로 알려졌다. 공공주도형 트랙 사업은 기본 우대가격 ㎾h당 3.66원이 붙고 정부 연구개발(R&D) 실증 터빈을 쓰면 ㎾h당 27.84원을 더 쳐준다.

민간 시장에선 가격 경쟁을 유도하지만, 공공 주도 시장에서는 국내 공급망 보호에 초점을 맞춘 것이다.

김범석 제주대 전기에너지공학과 교수(해상풍력발전위원회 공동위원장)는 이와 관련해 “민간에서는 입찰 경쟁률을 높이면서 가격을 떨어뜨리고, 공공에 들어오는 건 비싼 가격을 들이더라도 국산 기자재를 더 가지고 오는 사업자에게 기회를 줘 우리 산업을 보호하겠다는 취지”라고 했다. 우리나라 해상풍력 정책 목표 중 ‘국산화’를 지키려면 ‘싸게’는 일정 부분 내려놓아야 하는 셈이다. 두산 측은 “공공주도형 트랙이 터빈 수주에 매우 크게 도움이 되고 있다”며 “시장을 일정 부분 구분해 계속 운영해 국내 기업 터빈과 공급망 실적을 확보하게 하고 품질을 증명할 기회를 줘야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