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하이닉스가 23일 미국 낸드플래시 메모리 자회사 솔리다임의 프리 IPO와 기업공개(IPO) 검토를 중단한다고 밝혔다. 상장설이 처음 보도된 지 두 달여 만이다. 회사 측은 최근 자본시장 여건과 주가 흐름을 고려하면 지금의 IPO가 SK하이닉스와 기존 주주들에게 가장 유리한 선택인지 다시 따져볼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회사 측은 솔리다임은 이번 결정이 회사의 성장 가능성이나 투자 필요성이 달라졌기 때문은 아니라고 강조했다. SK하이닉스와 솔리다임의 사업 실적은 견조하지만, 최근 금융시장 변동성이 커지면서 반도체 기업 주가가 전반적으로 조정을 받고 있다는 점을 종합적으로 고려했다는 것이다.
◆AI 메모리 수요 대응 위한 美 신규 팹 재원 마련이 목적
앞서 솔리다임이 IPO를 검토한 배경에는 인공지능(AI) 시대 메모리 수요 급증이 있다. 기존 생산시설만으로는 늘어나는 수요에 대응하기 어려워 미국에 근거를 둔 솔리다임은 미국 내 신규 생산시설 확보가 필요한 상황이다.
이에 SK하이닉스는 솔리다임 성장에 필요한 투자 재원 확보와 효율적인 자본 배분을 위해 모회사의 직접 투자와 IPO를 통한 외부 자본 조달 등 여러 방안을 비교·검토해 왔다. 회사는 IPO로 외부 자본을 유치하면 SK하이닉스의 연결 현금흐름이 늘어 시설 투자와 배당, 자사주 매입·소각 등 주주환원 여력을 동시에 확보할 수 있다고 봤다. 또 상장 과정에서 적정 기업가치를 인정받으면, 현재 SK하이닉스 기업가치에 충분히 반영되지 않은 솔리다임의 성장 잠재력을 시장에서 새롭게 평가받을 수 있다는 계산도 깔려 있었다.
시장 일각에서도 이 같은 논리에 힘을 싣는 목소리가 있었다. 마사히로 와카스기 블룸버그인텔리전스(BI) 선임 산업 애널리스트는 지난 15일 보고서에서 솔리다임 상장의 이점이 SK하이닉스 지배구조에 대한 우려를 넘어설 수 있다고 평가했다. SK하이닉스가 고대역폭메모리(HBM)와 서버용 D램에 막대한 투자를 이어가는 상황에서 솔리다임이 eSSD 증설과 연구개발 자금을 스스로 조달하면 모회사의 투자 여력이 커진다는 분석이다.
◆“5단 중복상장” 비판에 정치권까지 가세
하지만 상장설이 불거진 이후 SK하이닉스 주주들의 반발은 거셌다. 솔리다임이 신주를 발행해 외부 투자자에게 팔면 지금은 고스란히 SK하이닉스 몫인 솔리다임의 이익을 나눠야 하고, SK하이닉스 주가에 담겨 있던 솔리다임의 가치가 빠져나갈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실제 상장설이 처음 보도된 직후인 지난 8월 6일 SK하이닉스 주가는 하루 만에 10% 넘게 떨어졌다.
지배구조 문제도 논란을 키웠다. 솔리다임 위로는 미국 중간법인 AI컴퍼니와 SK하이닉스, SK스퀘어, SK㈜가 차례로 있으며, 이 가운데 세 곳이 이미 국내 상장사다.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은 이를 "전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5단 중복상장 시도"라고 비판하며, 오히려 기존 3단 중복상장 해소를 고민해야 할 때라고 지적했다.
정치권과 관가에서도 목소리를 냈다. 더불어민주당 K-자본시장특위 위원장인 오기형 의원은 지난 15일 해외 중복상장에도 모회사 주주 보호 원칙이 적용돼야 한다고 밝혔다. 금융당국 역시 국감 기간 동안 솔리다임 상장에 대해 부정적인 태도를 유지했다.
◆ IPO는 멈췄지만 성장 투자 과제는 그대로
여론 반발이 거세지고, 상장으로 인한 실익도 적은 상황이 되면서 IPO 검토는 중단됐다. 다만, 솔리다임의 생산능력 확충과 경쟁력 강화는 여전히 풀어야 할 과제로 남았다. SK하이닉스는 앞서 상장설과 관련해 확정된 사항은 없으며 장기적 주주가치를 기준으로 판단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SK하이닉스 관계자는 “앞으로 투자 시기와 규모, 재원 조달 방식 등을 검토하며 솔리다임의 성장과 기존 주주들의 이익을 함께 높일 수 있는 방안을 지속적으로 모색하겠다”고 밝혔다.

